▲ 지난 12월30일 아시아 지진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는 이해찬 국무총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먼저 현재의 총리실은 역대 어느 총리실보다 직제상 규모가 강화됐다. 이해찬 총리 밑에 1명의 장관급 인사와 3명의 차관급, 그리고 13명의 1급 고위공무원이 일하고 있다. 또한 총리비서실 신임 인사들 중 상당수가 이 총리와 코드가 맞는 정치권 인사들로 구성돼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총리실은 청와대로 가는 웬만한 고급 정보도 공유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지난 번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주미대사 내정 때 노 대통령이 이 총리에게 미리 의견을 구한 것도 인사권 협의 차원에서 총리실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노 대통령도 이 총리 중심의 국정 운영에 상당한 만족감을 표시하면서 한층 총리실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전해진다. 제2의 권부로 급부상하고 있는 총리실을 해부해봤다.
이해찬 총리는 지난해 6월30일 취임한 뒤 두 달여 만인 8월 말 전격적인 직제 개편을 단행했다. 이 총리는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등에 업고 총리실 입성 뒤 첫 작품을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로 장식했다. 국무조정실과 총리비서실에서 근무하는 1급 이상 고위직 가운데 이해찬 총리가 새로 임명한 인사는 60%(13명 중 7명)에 이른다. 이들 7명 가운데 이기우 총리 비서실장(거제), 박철곤 심사평가조정관(부산), 이정환 정책상황실장(합천), 남영주 민정수석비서관(경북), 이강진 공보수석비서관(부산) 등 5명이 영남 출신 인사들이다. 총리실 인사에서도 참여정부의 영남 인사 약진 현상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총리비서실 인사에서는 이 총리 측근들이 대거 진출했다. 이 총리는 총리비서실장에 1998년 교육부 장관 시절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공무원”이라고 극찬했던 이기우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임명했다. 또 공보수석에 1993년부터 11년간 자신을 보좌했던 이강진 전 서울시 의원을, 정무수석에는 1995년 서울시 정무부시장 시절 기획과장으로 호흡을 맞췄던 임재오 서울시 문화국장을 임명하는 등 주변에 ‘친위그룹’을 포진시켰다.
또한 민정2비서관을 맡은 정윤재씨는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지난 총선 때 부산에서 출마했다. 정무2비서관을 맡은 황창화씨는 이 총리와 절친한 임채정 열린우리당 의원의 ‘오른팔’을 담당했다. 정무1비서관으로 임명된 송선태씨는 5·18재단 이사로 활약했고, 시민사회비서관을 맡은 홍영표씨는 열린우리당 선거대책본부 조직부본부장 출신으로 현장 노동운동에 오랫동안 투신했다. 메시지기획비서관(3급)은 김희갑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이 기용됐다.
또한 이 총리는 최근 민정수석비서관(1급)에 남영주 청와대 사회조정2비서관(47)을 내정했다. 남 내정자는 경북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국민참여운동본부 대구·경북 사무처장과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 등을 지냈으며, 지난 5월 사회조정2비서관으로 발탁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 총리 ‘친위그룹’의 대거 기용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의 대권 행보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총리 비서실 인사들을 보면 마치 선거를 위한 캠프라고 생각될 정도로 여권 출신 정치인들로 꽉 들어찼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3급 이상 총리 비서진들은 대부분 보좌관, 지부장 등 이른바 선거에 능한 인물들로 물갈이됐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총리가 비서실의 인적 구성을 대폭 교체하면서 대권용으로 비서진을 개편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노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인물들이 별정직으로 임명돼 청와대측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물갈이에도 불구하고 총리실 전체 인원은 대폭 늘었다. 당초 5개 과로 구성된 복권위원회를 3개 과로 축소, 인력을 감축했다고 하지만 정책상황실 신설과 조정업무 강화에 따른 조정관실 인력 증원으로 정원이 16명이나 늘었다. 규제개혁기획단에 2년 간 파견되는 공무원을 포함하면 정원이 총 41명 늘어나는 셈이다. 총리실이 ‘비대화’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 때문에 나온다.
▲ 국무회의장으로 들어서며 담소하는 이해찬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 노 대통령은 이 총리에 대해 “매우 만족”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
하지만 총리실 관계자는 “당초 1급인 복권위원회 사무처장 직급을 2~3급으로 조정하고, 규제개혁기획단장을 규제개혁조정관이 겸임하기 때문에 고위직 증원은 없다”며 “역할이 늘어났기 때문에 과장급 이하의 증원은 불가피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총리실 직제가 대폭 보강된 것 외에 청와대의 직간접적인 지원도 이 총리의 행보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사실 지난해 11월경부터 정동영 김근태 두 장관을 위시한 열린우리당의 당권파에서 “총리실의 힘이 너무 넘친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 뒤부터 총리실이 신중한 행보를 보인다는 얘기들이 나오기도 했다.
총리실은 정치권 일각에서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정원과 기무사로부터도 업무협조차원에서 매주 한 차례씩 해당부분(행정부)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는다’는 소문이 나돌자 이것이 열린우리당 내 일부 인사들이 총리실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이야기들을 흘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대책마련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한 총리실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총리실은 청와대 비서실에 보고되는 사항 중 국정운영에 대한 부분은 보고받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분권형 국정운영 도입 이후 계속되어온 일이다. 따라서 총리가 대통령 직속기구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일은 없다”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총리는 과거 총리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정보를 직접 접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미 노 대통령의 지시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국가정보원으로부터도 수시로 보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총리실이 고급 정보에 쉽게 접근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도 강화되고 있다. 이 총리는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무회의를 사실상 이끌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11월1일과 9월14일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기도 했다. 이때는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인 것도 아니고 다른 공식 일정이 많은 상황도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이 총리 중심의 국정 운영에 대해 ‘성공적’이라며 매우 만족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이 총리는 각종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내각을 지휘해 이를 해결하고 여야 정치권과의 조율에도 직접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1월 중순 경 <한국일보>는 당·정·청 실세 8인이 여권의 ‘컨트롤 타워’로서 매주 현안에 대한 막후 조율을 해온 것으로 보도했다.
이해찬 총리 등 여권 최고위 인사 8명이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2~3시간씩 총리공관에서 회의를 열고 있다는 것이다. 참석자는 이 총리를 비롯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청와대의 문재인 시민사회수석과 이병완 홍보수석, 열린우리당의 이부영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 등인데 간혹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이 참여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이 회동은 7월 중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문제를 둘러싸고 여권 내 불협화음이 나온 이후 이 총리의 제안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당정간의 국정 운영이 이 총리를 중심으로 논의, 해결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총리 체제 출범 초기 정치권에서는 이 총리가 내각의 인사권도 실질적으로 상당부분 위임받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예상에 부합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지난해 12월27일 저녁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가진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인사 문제 등 각종 건의에 ‘총리와 상의하라’며 저에게 힘을 실어준다”고 말해 분권형 국정 운영에서의 높아진 총리 위상을 은근히 과시한 바 있다.
특히 이 총리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주미대사로 내정한 단계에서 노 대통령과 협의한 것으로 드러나 ‘실세 총리’ 면모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총리는 간담회에서 “홍 회장 내정이 발표되기 20일 전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나를 찾아와 ‘노 대통령께서 이 총리와 상의하라 하셨다’면서 홍 회장 인선을 알려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리실의 이러한 ‘약진’에도 불구하고 총리실이 제2의 권부로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19년 공직 생활 중 15년 간을 총리실에서 근무했을 정도로 ‘총리실 통’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 의원은 총리실 권한 강화와 관련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인사권이다. 청와대에서 인사권을 꼭 쥐고 있으면 고급 정보가 모두 청와대로 모이지 총리실로는 가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대통령이 책임총리제에 진정한 뜻을 두고 있다면 총리에게 실질적인 인사권을 주어야 한다. 공무원들이 눈치가 빠른데 말로만 실세총리라고 떠드는 것보다 개각 때 총리가 지명한 인사가 얼마나 장관에 임명되는지에 따라서 총리실의 실질적인 권한이 강화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