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비스그룹의 양진석 사장은 미스코리아 시상식 장에서 ‘이튼 스타일’을 연출했다. | ||
특히 이번 대회부터 미스코리아 ‘미’는 1년간 미스 로뎀으로 활약하기로 되어 있어, 그는 시상까지 해야 했다. 세계적으로 미인대회에 대한 거부운동이 거칠게 몰아치고 있는 상황에서, 게비스그룹과 양 사장은 후원사로 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기까지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여하튼 냉철한 사업적 계산 끝에 내린 결정은 ‘참석’.
이후 그는 더욱 바빠졌다. 참가 미인 전체를 대상으로 ‘피부미용과 화장품’에 대한 강의도 했고 미인들의 내면적 아름다움까지 파악하기 위한 다양한 인터뷰 내용도 구상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턱시도’ 맞추는 일이었다. 약 20년에 걸친 외국생활 덕에 다양한 스타일의 턱시도를 갖고 있었지만, 마침 한국에는 준비해 놓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본선 당일, 그는 투 버튼의 감색 양복에 붉은 색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실크 넥타이와 행거칩으로 이튼 스타일을 연출했다. 그리고 턱시도는 시상식 시작 직전에 갈아입기 위해 잘 포장해 들고 갔다. 한국 최고의 미의 제전에 빛을 더하기 위한 최소한의 격식을 갖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본선장에 들어가 보니 분위기가 ‘영 딴판이었다’. 진·선·미 등 7명의 미인에게 상을 수여키로 한 사람들이나 심사위원 모두 회사 출퇴근 때 입는 평상복차림이었다. 양 사장은 차마 자기 혼자 튀는 것 같아 턱시도를 입을 수가 없었다.
“참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명색이 미의 제전이고 엔터테인먼트 아닙니까. 철학이 달라 참여하지 않았다면 몰라요. 기왕에 시상자나 심사위원이 되었다면 당연히 턱시도를 입어야죠.
아니 꼭 턱시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평상복에선 벗어나야죠. 출근할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와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미인들에게 상을 준다는 것은 상식 밖입니다. 수영복이나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미인대회에 나온 미인들이 문제가 아니라 출근복으로 상을 준다고 나선 남자들이 더 문젭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패션의 기본인 T.O.P(때와 행사와 장소)를 맞춘 ‘제대로 옷입기’에 서툰 것이다. 캐주얼을 입고 국민선서를 시도한 초선 국회의원, 가슴이 깊게 파인 블라우스를 입고 출근하는 여직원, 러닝셔츠만 입고 아파트 단지 내를 돌아다니는 동네 아저씨들, 프릴 달린 스커트에 모자까지 쓴 애완견들….
얼마 전 한 홈쇼핑업체의 부사장에게 들은 얘기. 작년 겨울에 밍크 반코트를 하루 수천 벌씩 팔아 대박을 터뜨렸는데 그 비결인즉, 남자 쇼핑호스트의 말 한마디였단다.
“사모님들, 밍크코트 사서 1년에 몇 번 입냐구요. 그런 걱정 마세요. 그냥 시장 갈 때 입으셔요. 시청자 여러분들 같은 수준 높은 사모님들이 왜 시장 갈 때 궁색하게 갑니까. 장사하는 분들이 대하는 태도부터가 달라집니다. 밍크코트를 입는 순간, ‘아줌마’가 아닌 ‘사모님’이 되는 것이지요. 대량생산이라 가격도 저렴합니다.”
순식간에 홈쇼핑업체의 전화통은 불통이 됐고, 밍크 반코트는 매진사례를 기록했단다. 밍크가 불쌍하다. (주)서령창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