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콤비로 나오는 송강호와 김상경. | ||
<살인의 추억>은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부녀자 10명이 숨진 ‘화성연쇄 살인사건’이라는 실화를 소재로 했다. 영화는 잊혀져가던 엽기적인 범죄를 일깨워 긴장감을 고조시켰다가 적절한 순간 유머로 풀어주는 뛰어난 연출력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송강호 김상경 등 주·조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실제 사건이 떠들썩했던 당시를 기억하는 30∼40대 관객을 극장에 불러모아 흥행에 더욱 탄력을 받았다.
반면 <와일드카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진 않았지만 실제 형사들의 일상을 ‘퍽치기’라는 범죄와 연결시켜 보여준다. 언제 어느 때든 길을 가다가도 부닥칠 수 있는 범죄라는 소재를 끌어들여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맨 것. 영화의 생생한 현장감은 관객들에게 두려움마저 심어주지만 결국 범죄를 소탕하는 경찰의 활약상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정진영 양동근 형사 콤비의 호흡과 강력반 형사들의 애환, 호쾌한 액션이 일품. 소극적인 마케팅에 비해 관객의 입소문이 큰 홍보효과를 가져왔다.
[범행수법 - 강간치사 VS 강도살인]
두 영화 모두 이른바 ‘엽기’와 ‘잔혹’이라는 공통된 코드를 지닌 범죄를 다루고 있다. <살인의 추억>은 범인이 강간 후 피해자가 입었던 옷으로 교살을 한 유례 없는 극악무도한 범죄였고 영화는 대부분 사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충격을 던졌다. <와일드카드>는 보통의 ‘퍽치기’보다 훨씬 강도 높은 잔혹한 수법으로, 쇠구슬로 머리를 쳐 ‘한방’에 죽여 아예 증거와 증인을 소멸하는 간악함을 보여준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 소리 한번 못 지르고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범행을 보고 관객들은 “영화 보고 나오니 더 무섭다”고 몸서리치기도 했다.
[수사 방식 - 가학 수사 VS 과학 수사]
두 영화는 시대적 배경에서 20여년의 시차가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1980년대라는 암울했던 시대를 상징하듯 ‘자백’을 가장 확실한 범인 검거 방법으로 삼고 무작정 폭력부터 남용하는 수사방식이 등장한다. 반면 <와일드카드>에선 ‘증거’가 우선시되는 21세기에 걸맞은 과학 수사가 동원된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나도 정보원을 동원하고 범인을 설득해서 자백을 받아내고 급기야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전형적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한마디로 ‘미치도록 잡고 싶어서’ 어떤 수단방법도 가리지 않는다는 게 공통점.
▲ <와일드 카드>에선 정진영(왼쪽)과 양동근이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줬다. | ||
<살인의 추억>에서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언덕여인’의 증언을 통해 ‘손이 부드러운’ 용의자 박현규(박해일 분)를 찾아낸다. 원래 초판 시나리오에서는 박현규가 순한 외모와 고운 손에 대비되는 잔혹한 범인으로 확실히 등장하는 구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미궁에 빠진 사건처럼 영화에선 끝까지 범인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
<와일드카드>는 4인조 퍽치기 일당과 두목 노재봉(이동규 분)을 끝내 검거한다. 배우 이동규는 무대인사에서 박수를 안 치는 관객에게 “밤길 조심하세요”는 ‘협박성 멘트’를 날렸다고 한다. 다른 사람은 웃었지만 영화가 끝난 뒤 그 관객은 뒤통수가 서늘했을지도.
[튀는 조연 - 백광호 VS 도상춘]
<살인의 추억>에서 용의자 중 한사람으로 등장했던 백광호 역의 박노식. 영화 속 그의 트레이닝복장과 ‘나야 잘 모르지∼’라는 말투가 요즘 유행이다. <와일드카드>의 상춘(이도경 분)도 그에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다. 이도경의 번쩍이는 의상과 코사지(꽃무늬 장식), 방정맞은 말투 덕분에 이 영화가 더욱 흥미로웠다는 평. 이 반짝이는 조연들은 올해 상반기 영화판 ‘최대 발견’으로 꼽힌다
[영향력 - 재수사 여론 VS 경찰 위상 정립]
<살인의 추억> 이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90년 9차 사건과 91년 10차 사건에 대해서라도 다시 수사하자는 것. <와일드카드>의 경우는 일단 일선 경찰들이 “제대로 보여줬다”며 반기고, 특히 경찰 가족들이 남편과 아버지에 대해 새삼 어려움을 헤아리게 됐노라는 얘기들이 많았다고. 두 영화 모두 실사적 수법을 구사했기에 ‘설득력’을 지녔던 셈이다. 김민정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