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옷은 각종 쇼나 드라마에 자주 협찬되고 있으며, 그녀 자신이 패션가에 알려진 명사이다. 내가 아는 지인들 중에도 그녀의 단골 고객이 많다. 그녀의 옷은 원피스 한 벌이 평균 1백50만원 수준. 웨딩드레스나 턱시도는 상당한 고가라는데 상류층 자제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그녀의 신고액이 정직했다면 지난해 내내 웨딩드레스 2∼3벌 판 것이 고작이었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청담동의 비싼 임대료와 직원 월급, 각종 패션쇼와 방송협찬비 홍보비 등은 모두 ‘땅파서 했다’고밖에 유추할 수 없다.
어떻게 그녀의 소득 신고를 알았느냐고? 그녀는 자신의 숍 옆에 고급 레스토랑을 내기 위해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를 만난 은행장의 입에서 나온 얘기다.
“정말 놀랐습니다. 지난해 매출 신고액과 소유 부동산 등을 기준으로 대출액을 정해야 하는데, 매출 신고액이 면세점 이하이지 않습니까? 세무서는 무얼 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같은 ‘유리지갑’들 약간만 과장하자면 그 디자이너의 연매출액만큼 세금 냅니다. 그것도 물론 원천징수죠.”
당연히 대출을 거절했단다. 그리고 그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정말 부도덕하기 짝이 없어요. 그런 사람에게 대출해 줄 수는 없습니다.”
물론 A씨 한 사례를 갖고 전체 디자이너를 매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또한 백화점 매장이나 대리점 등을 갖고 있는 디자이너들은 매출액을 속이려고 해도 속일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A씨가 매출신고액을 누락했다 해도 그건 디자이너들 전체의 자질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병폐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요는 특정 직업인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상류층의 자질론을 얘기해 보자는 것이다.
A씨는 고객 모두가 상류층이고 본인 자신도 상류층이다. 그런 그녀가 연매출이 2천만원이라고 신고했을 때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단어를 한번쯤이라도 떠올렸을까. 그보다 더 큰 의문점. 옷값을 지불하는 상류층 고객들은 옷값의 지불수단이 무엇이었을까. 신용카드? 아니었을 것이다. 신용카드였으면 매출액에 잡히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다면 고액권 수표로 옷값을 지불했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얼마 전 고관대작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마침 그날은 그댁의 경사 날이어서, 사회 각계에서 온 어림잡아 2백여 개의 난(蘭)화분으로 집안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집에 나설 때 알뜰살뜰하기로 정평이 난 그 댁 사모님이 선물로 들어온 난을 다시 선물로 주었다. 어차피 골고루 나눠줄 생각이었다며.
난에 무식한 필자는 고맙게 받아들고 다음날 사무실로 가져갔다. 그때 직원 중 한 사람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아니 사장님 이 난 어디서 나셨어요, 한난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오봉(한 촉마다 5송이의 꽃이 핀다고 해서)이에요. 1백만원은 족히 넘죠. 이거 꽃이 활짝 핀 것으로 보니 최고의 가격을 받을 수 있을 때 판 것인데, 이 정도면 뇌물입니다, 뇌물”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겁이 덜컥 났다. 1백만원짜리 난화분이라. 그날 그댁에 그 난을 보낸 곳은 청담동의 유명한 한복집이었다.
(주)서령창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