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뒤흔들 로비 ‘몰카’일 수도…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3월 26일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이 숨겨 놓은 각종 사업 관련 비밀 자료를 무더기로 발견했다. 일요신문db
이규태 회장 자택과 일광공영 본사 사무실 등에 대해 첫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은 지난 3월 11일이다. 이 회장은 공군 전자전 훈련 장비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대금을 부풀려 정부 예산 500억 원가량을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합수단은 검사 2명, 수사관 50여 명을 동원해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당초 기대했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합수단 관계자는 “의미 있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의심이 갔다”고 귀띔했다. 검찰 수사를 여러 번 받아 본 경험이 있는 이 회장 측이 압수수색을 대비해 자료들을 어딘가에 은닉했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합수단은 이 회장 사무실에 있던 컴퓨터 등이 외부로 급하게 옮겨진 듯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 회장 ‘집사’이자 일광공영 재무를 맡았던 김 아무개 씨 노트북 역시 사라진 채였다. 이 회장 측근들을 추궁한 끝에 성북구 삼선동 한 교회 안에 이 회장 집무실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곳 장로이기도 한 이 회장은 교회 3층 집무실 안에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들어 놓고 민감한 자료들을 숨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버튼을 누르면 집무실 벽에 세워져 있는 책장이 돌아가는데 그 안엔 금고, 책상, 침대, 도주로, 샤워시설, CCTV가 설치돼 있었다.
이 회장은 교회 내 비밀방도 조만간 발각될 것으로 내다봤던 모양이다. 합수단은 3월 25일 2차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금고 안은 이미 비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합수단은 이 회장 최측근들 휴대폰이 경기도 의정부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사용됐다는 것에 주목했다. 제3의 장소가 있을 것으로 보고 확인 작업에 나선 합수단은 3월 26일 의정부의 한 컨테이너 야적장을 압수수색했다. 이 회장은 합수단이 수사에 착수한 2004년 11월경부터 꾸준히 자료들을 컨테이너로 옮겼다고 한다. 이 회장 집사 김 아무개 씨 컴퓨터 역시 이곳에 보관되고 있었다. 합수단은 컨테이너에 있던 1.5t 규모 자료들을 이송해 와 현재 분석 중이다.
방위산업 관련 서류가 숨겨져 있던 서울 도봉구의 한 컨테이너 야적장. 연합뉴스
합수단은 컨테이너 압수수색을 통해 일광공영 무기중개 자료, 컴퓨터 하드디스크, 이동식저장장치(USB) 등 지난 10여 년 동안 이 회장이 직접 관리했다는 서류와 파일을 대거 확보했다. 이 회장이 사업 파트너였던 몇몇 대기업과 맺은 이면 계약서도 발견했다. 이 회장에 대한 수사가 향후 또 다른 대기업으로 번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또 컨테이너 안엔 일광공영 직원들 명의로 개설된 통장도 쏟아졌다. 앞서의 합수단 관계자는 “이 회장이 차명으로 통장을 만들어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통장 자금 흐름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컨테이너 안에서 발견된 서류들 중 2·3급 군사 기밀이 포함돼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무기 중개업자에 불과한 이 회장이 군사 기밀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에 대한 수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합수단 관계자 역시 “군 내부에서 기밀문서를 사진 형태 파일로 이 회장에게 넘겨준 것으로 보인다. 군 내부의 이 회장 조력자를 찾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합수단에 따르면 이 회장은 특정 무기사업과 관련해 사전에 가격 정보까지 빼냈다고 한다.
이 회장이 무기업계에서 거물로 통할 수 있었던 것도, 또 일광공영이 업계 5위권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 모두 군과의 ‘커넥션’을 통한 정보력 때문일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기업체의 한 고위 임원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 회장이 마당발로 소문 나 있지만 그렇게 사교적인 사람은 아닌 듯했다. 말수도 적고 술이나 담배도 전혀 안 한다. 그런데 군 내부 정보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웬만한 장성급보다 군 소식을 잘 알고 있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일광공영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합수단은 이 회장이 군은 물론 정·관계 인사를 상대로도 광범위한 로비를 펼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이 남겨 놓은 장부 및 ‘녹취록’을 통해서다. 이 회장은 평소 중요한 대화를 할 때 녹음을 한 뒤, 이를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녹취록엔 대화를 나눈 시점과 장소 등이 꼼꼼하게 적혀있다고 한다. 이 회장은 과거 한 군사 장비업체 임원을 사기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서도 해당 임원 관련 녹취록과 영상을 증거로 제출한 바 있다. 합수단은 이 회장 음성 파일을 정·관계 로비를 풀어 줄 핵심 열쇠로 판단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남녀 성관계 장면이 담긴 영상 파일이 발견된 것이다. 합수단 및 복수의 사정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이러한 영상만 대략 20여 개가 존재한다고 한다. 사정당국 고위인사는 “압수수색 당시엔 그냥 야동인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찍힌 장소가 거의 동일했고, 몰래 카메라 형식인 것으로 들었다. 누군가 별장 같은 곳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찍었다는 얘기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이라는 점도 석연치 않았다. 전직 법무부 차관까지 연루됐던 ‘별장 성접대’ 사건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석 결과에 따라 엄청난 파장이 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정당국과 군 주변에선 이 회장이 유력 인사들에게 향응 제공 및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정작 이 회장 본인은 유흥을 즐기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로비 차원에서 접대를 했을 것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평소 로비 흔적을 기록으로 남겨놓곤 했던 이 회장이 동영상을 찍었을 것으로도 추측해 볼 수 있다. 앞서의 무기업체 고위 임원은 “무기업계에서 이 회장이 연예기획사를 설립한 것을 놓고 해석이 분분한 적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연예인 성접대 의혹이었다”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합수단 관계자는 “아직 분석 작업이 진행 중이라 섣불리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세 차례 압수수색을 통해 결정적인 물증을 대거 확보한 합수단의 칼날은 이 회장 뒤를 봐준 ‘몸통’을 겨누고 있다. 최종 타깃이 어디로 향할지에 대해선 검찰 내부에서조차 견해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이 회장이 DJ 정권, 노무현 정권, MB 정권을 거치며 작성했던 파일들이 합수단 손에 들어온 까닭에서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꽃놀이 패’를 쥔 셈이다. 청와대 민정라인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DJ 정권에서 무기 사업에 발을 들였고, 노무현 정부 때 승승장구했다. 지난 정권에선 구속되는 등 어려움도 겪었지만 결국 부활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세 정권 모두 사정라인에 걸려든 것”이라면서 “합수단이 어디까지 수사할지는 결국 여권 핵심부 의중에 달려있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