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거덜나도 회장님들은 돈방석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낸 기업에서 5억 원 이상의 고액 보수를 받아간 경영자는 무려 119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 상당수가 재벌총수 일가와 관련된 사람들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항공이 2000억 원대의 순손실을 냈지만, 보수로만 26억 원을 챙겨갔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기소된 조 회장의 딸, 조현아 전 부사장도 퇴직금을 합쳐 14억 7000만 원의 보수를 받아갔다. 조 회장의 제수씨인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은 4000억 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낸 한진해운 등에서 69억 원을 수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최대 1조 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한 동부메탈과 동부제철에서 20억 원을 넘게 받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도 적자를 본 계열사에서 각각 23억 원과 7억 원을 받아갔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적자기업인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로지스틱스에서 총 17억 원을 받았고, 횡령과 탈세 혐의를 받는 장세주 동국제강그룹 회장은 2000억 원대의 순손실을 기록한 회사에서 14억 원의 보수를 챙겼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소비는 날로 위축되고 기업들은 투자를 꺼리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경제도 침체 일로를 걷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등기임원들의 연봉잔치 뉴스를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물론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날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중산층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일한 만큼 받아가는 데 무슨 문제가 되느냐’ 식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 경제에 희망은 없다. 기업과 정부의 문제의식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또한 기업 등기임원들의 천문학적인 퇴직금도 눈길을 끌고 있다. 얼마 전 SK텔레콤에서 80개월치 희망퇴직위로금을 책정하며 ‘억대 퇴직금’을 부러워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지만, 등기임원 퇴직금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초라해 보일 정도다.
전문경영인들의 퇴직금도 오너 일가 못지 않은 경우가 수두룩했다. LG화학 김반석 회장은 42억 원, 포스코 정준양 전 회장은 32억 원, LG상사 하영봉 사장이 28억 원, 현대중공업 이재성 전 대표가 24억 원, LG유플러스 신용삼 전 사장과 GS칼텍스 전상호 전 사장이 각각 22억 원이 넘는 퇴직금을 받은 이들이다. 10억 원대 퇴직금을 받은 임원들도 11명이나 됐다.
하지만 진정한 퇴직금 왕을 예약한 사람은 따로 있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다. 지난달 말 대한항공 주총에서는 회장에 대한 퇴직금 적립기준을 50% 상향하는 안건이 통과됐다. 기존 재임기간 1년에 4개월분이었던 퇴직금을 1년에 6개월분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1980년부터 35년간 임원으로 재직중인 조 회장의 퇴직금을 이 기준으로 계산하면 1년당 16억 원으로 총 560억 원이 된다. 올 퇴직금 왕을 배출한 한화의 퇴직금 산정 기준이 재임기간 매 1년당 3개월치 기본보수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후한 기준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퇴직금 규정은 결의 사항이지만 일부 기업은 퇴직소득금액을 한도를 넘어설 경우 기타근로소득 명목으로 실질적인 퇴직금을 더 챙겨주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현대제철에서 퇴직소득초과금액 13억 원을 기타근로소득으로 받았다. 현대하이스코도 신성재 전 사장에게 퇴직금과 별도로 27억 5000만 원의 공로금을 지급했다.
최근 주요 대기업 등기 임원 연봉이 공개된 것과 관련,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거액의 CEO 연봉은 사람 자르고, 노동자 임금 쥐어짠 대가”라고 비판했다. 심상정 원내대표는 2일 국회에서 열린 당 상무위원회의에서 “(최근 공개된 우리나라의) 전문경영인들의 보수 내역을 보면 30대 기업 소속 CEO들과 일반직원의 연봉 격차는 35배에 달한다. 최고 연봉을 받은 삼성전자 신종균 사장(146억 원)과 일반 직원과의 격차는 142배”라며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CEO와 직원 연봉차가 20배를 넘기면 직원 사기가 떨어지고 악영향이 발생한다고 진단했다”고 꼬집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