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덕에 나팔’ 꼬리표 떼기 쉽지 않다
정태영 사장. 연합뉴스
금융권은 정 사장의 지분매각이 현대차그룹의 금융계열사 경영에 매진하겠다는 의지 표현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종로학원 등의 경영에 정 사장이 적극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대주주인 데다 현대차그룹 계열로 편입돼 있어 신경을 써야하는 상황을 정리한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이다.
문제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현대차그룹 내에서 정 사장의 위치가 애매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태영 사장은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의 둘째 딸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의 남편, 즉 정몽구 회장의 둘째 사위다. 오너 일가인데다 현대카드의 성공 등으로 금융권에서는 보기드문 ‘스타 CEO’ 반열에 올라있는 만큼 그룹 내 입지는 결코 약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속사정은 조금 달라 보인다. 우선 정태영 사장은 최근 신용카드업계를 들썩이게 만든 ‘복합할부금융’ 전쟁에서 뒷맛이 개운치 못한 승리를 거뒀다. 차를 살 때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고객에게 캐시백을 돌려주는 방식인 복합할부금융은 현대카드가 폐지를 주장했던 상품이다.
정태영 사장이 가업인 학원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현대차그룹의 금융계열사 경영에 매진하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다.
게다가 현대차가 다른 카드사들과 싸우는 동안 현대카드는 “폐지하자”던 복합할부금융 상품 판매를 크게 늘리는 모습을 보여 눈총을 받았다. 현대카드의 지난해 4분기 복합할부 취급규모는 6600억 원으로, 현대차가 개입하기 전인 1~3분기를 합친 규모 6200억 원보다 더 많았다. 이에 대해 카드사 한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를 등에 업고 다른 카드사를 압박한 뒤 폐지하자던 상품을 집중적으로 판매한 것 아니냐”면서 “결국은 원님 덕에 나팔 분 격”이라고 꼬집었다.
정 사장이 이끄는 금융계열사들의 화려한 외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속이 적다는 평가도 부담이 되고 있다. 정태영 사장은 현대카드와 캐피탈, 현대커머셜, 현대라이프 등을 맡고 있다. 이 중 신용카드 업계 3위인 현대카드는 순이익이 매년 크게 성장하는 등 탄탄한 경영실적을 자랑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카드업계 2위인 삼성카드는 물론 4위인 KB국민카드보다도 순이익 규모가 적다. 시장점유율도 삼성카드와의 격차가 지난해 1분기 3.6%포인트에서 지난해 3분기에는 4.8%포인트로 벌어지는 등 뒤처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현대캐피탈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순이익은 1927억 원으로 2013년 같은 기간의 3562억 원보다 40% 가까이 줄었다.
현대라이프생명은 2012년 출범 후 적자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험사가 흑자를 내려면 최소 5년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통설을 감안하면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현대라이프 출범 당시 “빠르면 2년 안에 흑자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던 정태영 사장의 자신감은 근거를 잃은 셈이 됐다.
정몽구 회장
가장 큰 고민은 정태영 사장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정 사장은 현대커머셜 지분 16.67%를 갖고 있는 것 외에는 계열사 지분이 전혀 없다. 아내 정명이 고문이 1.1%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가진 36.3%에는 한참 못 미친다. 정의선 부회장이 마음먹으면 언제든 경영권을 거둬들일 수 있는 상태인 셈.
이 때문에 현대카드 주변에서는 정 사장이 현대카드나 캐피탈 등의 지분확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종로학원 매각 대금을 지분매입에 쓸 것이라는 예상이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경우 미국 GE캐피탈이 각각 지분 43.0%와 43.30%를 보유하고 있는데, 합작기간이 지난해 말로 종료되면서 지분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정 사장이 GE캐피탈이 보유한 주식을 사들일 경우 경영권 확보를 노려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GE캐피탈이 보유한 지분의 장부가격만도 2조 5000억 원에 달하는데다, 설령 돈이 있다 해도 정몽구 회장의 허락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 사장의 앞날은 자신보다는 장인인 정몽구 회장의 결심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태영 사장이 스타 CEO라지만 정몽구 회장 입장에서는 결국 백년손님”이라면서 “맏사위였던 신성재 전 현대하이스코 사장의 이혼이 아직 정 회장의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