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문고리’ 쥐었던 충청의 마당발
삼성서울병원 지하 임시빈소에 모셔진 성완종 전 회장의 영정. 정식 빈소는 서산의료원에 마련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 9일 저녁 7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성 전 회장의 영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1층 전광판에도 고인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숨바꼭질을 하듯 스무 개의 빈소를 일일이 들러야 했다. 유족이 빈소를 꾸리지 말아달라고 병원 측에 요청한 탓이다. 그럼에도 지하 1층 12호실이 성 전 회장의 임시 빈소라는 사실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다른 호실과 달리 213.6㎡의 널찍한 공간에 그 흔한 화환이 하나도 없었다. 상주가 누군지를 알리기 위한 벽에 붙어 있는 작은 화면도 이미 꺼진 상태였다. 빈소 안쪽 공간에 놓인 구두는 고작 아홉 켤레였다. 성 전회장의 가족과 친지 중에서도 극소수만 모인 듯했다. 문상객들도 드문드문 왔다.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인지 참담한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빈소 앞 로비에선 “경남기업? 아…. 그 로비?”라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허허, 참… 회장님 어디 모셨는가”라며 서둘러 빈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백발의 노신사도 있었다. 경남기업 기획실 관계자는 “회장님의 죽음이 안타깝다”며 “법정관리를 들어갔을 때부터 내부 분위기가 침울했는데 이런 일까지 터졌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성 전 회장은 ‘1000원의 신화’다. 1970년 당시 충청남도 서산에서 단 돈 1000원을 가지고 화물운송업을 시작했다. 20대 후반에는 200만 원을 들여 건설업(서산토건)에 뛰어들었다. 1982년 대아건설, 2003년 경남기업을 차례로 인수해 한때 2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자수성가로 국내 굴지의 건설사를 일군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성 전 회장의 막냇동생 성일종 고려대 교수의 20년 지기라는 A 씨는 “일종이가 충격을 받아 처음에 나를 몰라봤다. 한참을 쳐다보더니 겨우 알아봤다”며 “형님이든 동생이든 진짜 열심히 산 사람들이다. 난 분명히 안다. 똑똑히 봤다. 돈 좀 있다고 사치하고 허투루 돈 쓰는 사람들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학생들 2만 명한테 장학금을 줬는데 한 순간에 횡령죄라니…”라며 속상한 마음을 내비쳤다.
성 전 회장은 ‘충청 인맥’의 핵심이기도 했다. 밤 10시경 입을 굳게 다문 정진석 전 국회의원이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빈소 아닌 빈소로 향했다. 그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김종필 전 총리의 지원을 받아 충남지사에 출사표를 던졌던 대표적인 충청 인사다. 성 전 회장이 2000년부터 회장을 맡아온 ‘충청포럼’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정운찬 전 총리 역시 충청포럼에 속해 있다. 반 총장의 동생이 6년째 경남기업의 고문을 맡고 있다.
2013년 12월 10일 ‘운정회’ 창립총회가 열린 국회 헌정기념관에 들어서는 김종필 전 총리와 여러 정치인들. 성완종 전 회장(맨왼쪽)은 운정회 부회장을 맡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성 전 회장은 2003년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특보단장을 지내는 등 최측근으로 통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김 전 총재나 박태준 전 총리를 통하려면 ‘일단 성완종을 만나라’라는 말까지 돌았다고 한다. 2013년엔 김 전 총리의 호를 딴 ‘운정회’의 창립 부회장도 맡았다. 성 전 회장은 김 전 총리가 지난 2월 부인상을 당했을 때 장례식장을 오래 지킨 인사 중 한 명이었다.
성 전 회장은 평소 ‘가난’에 대한 본인의 소신을 입버릇처럼 피력했다. 그는 “고생을 해본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며 재단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경남기업 관계자는 “회장님께서는 언론에서 정부 예산을 유용한 것처럼 보도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가슴 아파하셨다”고 전했다. 성 전 회장은 사망 직전까지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이건 사실이 아니다. 면목이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는 1991년부터 사재 31억 원을 출연해 서산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지금까지 약 2만 명의 학생들에게 300억 원 이상의 장학금을 수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 씨는 “형님은 남한테 기부하고 봉사하는 일을 습관처럼 하셨다. 특히 장학사업 같은 경우는 한 번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며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족 측은 “장례를 서산장학재단장으로 한 이유는 고인이 가장 애착을 가졌던 것이 장학재단이기 때문”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성 전 회장은 정치에 뛰어들면서 인생의 내리막길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부터 국회의 문을 두드리던 그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선진통일당(옛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충남 서산·태안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대법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성 전 회장에 대해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다. 정치에 대한 좌절이 계속된 뒤 다시 경영에 복귀했지만 경남기업의 재무 상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결국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경남기업에 대해 기업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성 전 회장은 9500억 원의 분식회계와 사기, 회사 돈 215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상태였다. 검찰은 경남기업이 자원개발을 할 수 있는 요건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성공불융자금’을 타내 사기죄를 범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성공불융자금의 조건은 자원 개발이 실패했을 때 사업 추진에 대해 명백한 실수가 없다면 대출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성공하면 대출금도 갚고 그 수입 중 일부도 내놓는 조건부 융자금이다. 횡령죄는 성공불융자금을 비롯한 회사 공금들을 비자금으로 조성해 착복했다는 것이다. 성 전 회장은 사기와 횡령을 하기 위해 9500억 원대의 분식회계를 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었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성 전 회장은 평생을 깨끗하게 살아오신 분이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고인의 ‘정식 빈소’는 충청남도 서산시에 위치한 서산의료원에 마련됐다. ‘어머니 곁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유지를 받들어 시신은 10일 오전 삼성서울병원을 떠나 그곳에 안치됐다.
최선재 기자 sun@li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