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중진’ 뒤에선 ‘3인방’ 투트랙?
‘성완종 리스트’가 박근혜 대통령 대선자금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2012년 12월 15일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 광장 유세에서 선거운동원들과 율동을 선보이는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친박 인사들에게 2007년 대선 경선은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는 2012년 대선 캠프 구성을 살펴보면 잘 나타난다. 2007년 경선 캠프를 매머드 급으로 꾸렸다면 2012년엔 소수 정예 부대가 박 대통령을 도왔다. 2007년 경선 당시 ‘겉치레’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실속’을 택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이재광 정치평론가는 “명함을 남발하기보다는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신 박 대통령 측은 외연 확대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2007년 경선 때 ‘당심’에서 앞서고도 조직 열세라는 약점 때문에 졌다는 판단에서였다. 성 전 회장 메모에 이름이 언급된 홍문종 의원과 유정복 인천시장은 2012년 캠프에서 박 대통령 조직 기반을 다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사들이다. 홍 의원과 유 시장은 각각 조직총괄본부장과 직능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조직총괄본부는 전국을 지역 단위로 나눠 현지 민심을 살피면서 선거를 지원하는 곳이다. 직능총괄본부는 직능·사회단체 등을 찾아다니면서 직역별 지지층을 조직화한다.
선거에서 조직과 직능은 ‘실탄’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파트로 꼽힌다. 홍 의원이 이끄는 조직총괄본부엔 60만 명이 소속돼 있었고, 상근직원만 200여 명이었다. 여기엔 현역 의원 20명도 포함돼 있었다. 유 시장의 직능총괄본부 역시 혁혁한 실적을 올렸다. 선거 막판 박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직능단체는 1000개를 훌쩍 넘었고, 회원 수는 300만 명가량에 달했다. 이를 놓고 캠프 내에서조차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정도 조직을 만들고 관리하려면 천문학적 돈이 필요할 것”이란 말이 돌기도 했다.
대선 때 선거자금을 통괄하는 당무조정본부장을 맡았던 서병수 부산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악습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선거관리위원회 보조금과 합법적인 대선펀드로 선거를 치르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성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서 시장 역시 성 전 회장 메모에 올라 있는 인사 중 한 명이다. 공교롭게도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친박 3인이 모두 대선 캠프에서 자금을 다루는 핵심 보직에 있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성 전 회장 지인은 “성 전 회장은 정치의 생리를 잘 아는 사람이다. 캠프에서 누가 자금을 쥐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2012년 대선이 끝난 뒤 새누리당은 선거비용 468억 원 보전을 신청했고, 심사를 거쳐 453억 원을 돌려받았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회계 처리가 되지 않은, 비공식적 돈이 선거에 더 투입됐을 것이란 게 정설로 통한다. 선거 막판 새누리당 일각에선 선거 자금이 이미 1000억 원을 넘어섰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대기업들이 ‘베팅’ 금액을 늘렸다는 소문도 뒤따랐다.
대다수 친박 의원들도 2007년 경선에 비하면 2012년 대선 때 사정이 훨씬 나아졌다고 입을 모으긴 한다. 2007년 경선 때 박근혜 캠프가 공식적으로 쓴 16억 원 선거 비용은 거의 후원금으로 조달했다. 경쟁했던 이명박 후보 캠프보다 5억 5000만 원가량 적은 액수다. 이는 대부분 후원금으로 조달했다.
캠프에 참여한 의원들이 낸 1000만 원으로 사무실을 운영했고, 중진 의원들이 사비를 털어 선거를 치렀다. 당시 친박 좌장이었던 김무성 의원이 박 대통령에게 삼성동 집을 팔자고 제안했을 정도였다. 캠프 참모들은 무급으로 ‘자원봉사’를 할 정도였다. 성 전 회장이 2007년 경선 때 박근혜 캠프 직능총괄본부장이었던 허태열 전 실장에게 7억 원을 줬다는 주장이 나온 후 몇몇 친박 관계자들이 분통을 터트렸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 친박 보좌관은 “성 전 회장 말이 사실이 아닐 것으로 본다. 그만한 액수가 캠프로 들어온 적이 없다. 정말 힘들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배달사고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2012년 대선 땐 ‘대세론’이 파다했던 박 대통령에게로 물밑 후원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자금 운용에 숨통이 트일 법도 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캠프에 몸담았던 한 친박계 전직 의원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경선 때야 박 대통령 승리가 확정적이었던 만큼 자금이 별로 필요 없었다. 그런데 선거 중반기 무렵 악재가 연이어 터지고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돈이 들어갔다. 조직과 직능 쪽이 경쟁하듯 세를 불렸고, 자금을 보내달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다”고 귀띔했다.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돈이 훨씬 많았다는 얘기다. 이는 박근혜 캠프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음성적인 돈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복수의 친박 의원들에 따르면 2012년 대선 자금 모집은 크게 ‘투트랙’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우선 공식 선거 비용 외 자금을 캠프 중진들이 ‘알아서’ 조달하는 경우다. 이들은 사재를 털거나 지인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3인 역시 여기에 속한다. 박 대통령은 최측근 의원들과도 돈 얘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캠프 관계자들은 자금이 부족하더라도 박 대통령에게 보고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재선의 한 친박 의원은 “일부 의원들은 대선 과정에서 기업 등으로부터 공공연히 돈을 받은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이걸 다 선거에 썼겠느냐. 여기서 오는 ‘갭’이 항상 말썽을 일으키곤 했는데, 성 전 회장 사건 역시 비슷하게 흘러가진 않을까 걱정이다. 어찌됐던 박 대통령에게 흠집이 나는 일 아니냐”고 우려했다.
또 다른 하나는 박 대통령 비선 라인을 통한 자금 지원이다. 이는 주로 원로 그룹이 담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래 전부터 박 대통령을 후원해왔던 원로 인사들이 십시일반 도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박 대통령 참모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3인방이 평소 돈 문제에 있어서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박 대통령과 원로 그룹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기 때문이다. 특별수사팀이 대선자금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 경우 지난해 정윤회 문건 유출 사태로 논란에 휩싸였던 3인방이 또 다시 도마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받아들여진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