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사람을 그렇게 몰아붙이나” 부글부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 전날인 지난 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원외교 비리 연루 의혹을 해명하는 모습. 연합뉴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여야를 넘나들며 넓은 정치권 인맥을 형성했다. 성 전 회장이 정치권의 마당발로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충청 출신 정·관계 인사들과 언론인이 모인 충청포럼이 있었기 때문이다. 충청포럼은 지난 2000년 성 전 회장의 주도로 만들어진 이후 35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했다. 이 중 100여 명의 유력인사와 운영위원 등은 성 전 회장과 비정기 모임을 가지며 친분을 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충청포럼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반기문 대망론’의 진원지로 거듭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이완구 총리가 반기문 대망론을 견제하기 위해 성 전 회장을 사정 드라이브의 타깃으로 삼았다는 일각의 해석도 충청포럼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성 전 회장 역시 사망 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남기업 수사는) 이완구 작품이다. 이완구 총리가 (나와 가까운) 반기문을 의식했다”며 자신에 대한 수사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관계 탓이라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충청포럼 내부에서는 정치적 단체로 보는 시각에 대한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성 전 회장 또한 충청포럼을 통해 정·관계 인사들과 상당부분 인맥을 쌓기는 했지만 정치 사조직으로 비치는 것에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충청포럼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여당 출신 기초의회 의원은 “(충청포럼은) 충청권 인사를 망라하는 초당적 조직”이라며 “포럼이 지부 형식으로 운영되는 것도 정치단체로 보이는 것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충청포럼 소속의 수도권 기초의회 의원도 “충청포럼이 반기문 대망론 등 정치적 해석의 진원지로 나오고 정치단체로 언론에 비치고 있는 것에 대해 회원들도 당혹스러워 한다. 운영진 외 반 총장 등 유명 정치인이 소속 돼 있는지 모르는 회원도 많다”며 “충청포럼은 서산장학재단에 장학생을 추천하는 등 향우회 성격에 가까운 모임이었다”고 강조했다.
서산장학재단이 성완종 전 회장의 명복을 비는 플래카드를 설치했다.
하지만 충청포럼은 충청 출신의 총리가 탄생할 수 있도록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충청권 유력 정치인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등 태생적으로 정치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성격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성 전 회장 사망 이후 충청포럼 내에서는 성 전 회장에 대한 동정론이 일면서 이 총리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앞서의 수도권 기초의회 의원은 “성 전 회장은 초반 충청포럼을 주도했던 사람이다. 언론보도를 접한 일부 회원들은 ‘동향사람을 그렇게까지 몰아세웠어야 했나’, ‘의리 없는 행동을 했다’며 이 총리에게 섭섭함을 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성 전 회장이 마지막 길을 떠나면서까지 걱정을 했던 서산장학재단도 지난 12일 서산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땅 한 평, 개인 통장 하나 없었던 고인이 어떻게 표적이 되었는지 서산장학재단 가족 모두는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며 “고인의 숭고한 삶의 가치를 하루아침에 산산조각 내고 죽음으로 몰고 간 책임을 누군가는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말을 아끼고 있다.
실제로 지난 16일 <일요신문>이 찾았을 때 충남 태안의 서산장학재단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서산장학재단 인근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박 아무개 씨는 “요새 거기(서산장학재단) 사람들 안 보인다”며 “이 인근 사람들은 성 전 회장 선산이 어디 있는지도 다 알정도인데 이 총리가 그런 사람 모른다고 하니 괘씸했을 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성 전 회장과 43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왔고 국회의원 시절엔 후원회장까지 했던 박성호 장례위원장은 “(성 전 회장의) 고향 사랑이 남달랐다. 이 총리가 여권 핵심 인사라서가 아니라 충청권 인물이라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이 총리가 성 전 회장을 모른다고, 특별한 인연이 없다고 할 때 그동안 옆에서 지켜봐왔던 나도 불쾌했는데 성 전 회장은 오죽 배신감을 느꼈을까 싶다”며 “그 사람(성 전 회장) 생각하면 눈물만 난다. 땅 한 평 없는 사람이 300억 기금을 마련해서 2만 8000명한테 장학금을 줬다. 서산장학재단은 고인의 뜻에 따라 계속 이어져 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산=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완사모 반응은? “우린 총리님을 믿습니다” ‘성완종 게이트’ 파문에 대해 이완구 총리의 해명이 조금씩 바뀌면서 이 총리의 정치 기반인 충청 지역 여론도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완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완사모)’은 변함없이 이 총리에 대한 지지와 신뢰를 보내면서 상반된 충청 민심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2009년 1월 출범한 완사모는 현재 온라인 회원 1만 5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완사모는 이 총리의 선거 유세현장에 어김없이 등장해 힘을 보태왔다. 이 총리도 완사모 송년모임 등에 참석하면서 지지자들과 각별한 스킨십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한 관계 탓에 완사모 회원들은 종종 이 총리 관련 의혹 전면에 등장하고는 한다. 지난 16일에는 완사모 자문임원단이자 아산 소재 시내버스업체 대표인 이 아무개 씨(61)가 횡령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검찰은 이 씨의 개인 비리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이 총리와의 관계 등을 고려했을 때 검은 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성완종 게이트’ 파문 이후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완사모 회원들은 변함없이 이 총리에 대한 지지를 이어가고 있다. 한 완사모 회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할 말은 많지만 지금은 총리님을 위해서라도 참아야 한다”며 “하루빨리 누명을 벗고 국정을 이끌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완사모 게시판에도 이 총리와 성 회장은 별다른 친분이 없다며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는 글이나 이 총리를 응원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