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쓴 관광 큰손 도로 내쫓는 셈
4월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내생산 할랄인증식품 전시회(위)와 할랄산업 및 무슬림 관광활성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종현 기자
서울 이태원에서 할랄 식품점을 운영하는 탈라트 마사우드 씨의 말이다. 그는 “한국에 처음 온 20년 전에는 김치와 밥만 먹었다. 지금은 이태원에서 할랄 식품을 많이 구할 수 있지만, 지방에선 여전히 생활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국내 거주 외국인 무슬림 수는 한국이슬람교의 추산에 따르면 10만 명이다. 이 수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무슬림 관광객은 75만여 명이며, 올해는 85만 명을 기록할 것으로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측하고 있다. 아직 전체 외국 관광객의 5%를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이를 무시했다간 큰코다친다. 2030년 전 세계 인구의 26%가 무슬림이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무슬림 잡기’는 우리나라 관광업계에도 큰 과제다.
‘무슬림 러시’를 눈앞에 두고 우리가 긴장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할랄’ 때문이다. 할랄은 이슬람교 율법에 정해져 있는 ‘허용된 것’을 의미한다. 돼지고기는 ‘하람(금지된 것)’으로 구분돼 먹지 않고, 소나 닭 등의 육류를 취급할 때도 이슬람식 도축법으로 잡아야 먹을 수 있다. 무슬림이 기도문을 외치고 단칼에 동물을 죽인 뒤 피를 모두 뺀 것만이 할랄로 인정받는다. 또한 알코올에 대한 규율도 엄격하다. 세종사이버대학교 한국호텔관광경영학과 이희열 교수는 “우리나라 음식점 대부분이 돼지고기와 술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무슬림 관광객이 매긴 우리나라의 성적표는 한마디로 ‘낙제’다. 한국관광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다녀간 무슬림 여행객 절반은 음식에 불편, 불만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말 기준 할랄 레스토랑은 140여 곳으로, 대부분 서울에 집중돼 있다. 이마저도 한국이슬람교중앙회(KMF)의 공식 인증을 받은 식당은 5곳이 전부다. 나머지는 무슬림인 식당 주인이 ‘자체 인증’한 곳이다. 인증을 받지 않은 곳이라도 무슬림이 먹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이국땅에서 할랄 마크는 무슬림에겐 ‘안심마크’이기에 인증 식당 확대는 필수다.
KMF의 인증을 받은 한식당은 무슬림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져, 무슬림의 한식에 대한 잠재 수요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고 있다. 지난 4월 22일 기자가 서울 이태원의 한식당 ‘이드(eid)’를 찾았을 땐 이른 시간임에도 히잡을 쓴 네 명의 싱가포르 여성 관광객이 한식을 즐기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작은 식당에는 외국인 손님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이곳의 메뉴는 생선구이, 비빔밥, 삼계탕, 소불고기 네 가지다. 유현우 이드 대표(25)는 “무슬림 친구들이 한국에 관광을 오면 먹을 게 없어 힘들어했다. 집에서 싸온 육포 같은 간단한 음식을 먹거나, 빵을 사서 먹었다. 마음 편히 한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없어 식당을 차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에서도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지난 3월 ‘무슬림 한식 가이드북’을 배포했다. 가이드북은 할랄 식재료를 쓰는지, 돼지고기나 술을 파는지 여부에 따라 ‘무슬림 친화등급’을 5개로 나눠 안내했다. 하지만 안내된 식당 수가 적고, 어떤 재료로 된 음식을 파는지 자세한 정보가 없다.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 거의 없다 보니 무슬림 관광객은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기구가 갖춰진 레지던스를 선호한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레지던스 바비엥스위트의 문해미 세일즈팀장은 “무슬림 관광객은 한 번에 한 달 이상씩 머물고 간다. 그만큼 확실한 관광업계 큰손이다”고 강조하며 “우리 호텔에 묵는 외국인 관광객의 60%는 가족을 대동한 무슬림이다. 음식에 제약이 있다 보니 직접 조리해 먹는 편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인근의 또 다른 레지던스형 호텔 프레이저플레이스의 홍보팀의 송혜영 씨는 “무슬림 국가에 따로 홍보하고 있진 않다. 아마 부엌이 갖춰져 있다는 점이 무슬림 관광객에겐 큰 선택 기준으로 작용해 많이 방문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식당뿐 아니라 마트에서도 할랄 인증을 받은 우리나라 제품은 구할 수 없다. 민간에서 받은 인증은 허위·과대광고에 속해 식품위생법에 저촉된다. 이 때문에 국내에 돈을 쓰러 온 무슬림들이 자국에서 수입된 물품을 구입해 쓰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다. 우리나라 식품을 찾는 무슬림을 위해 할랄 식당에서는 수출용 상품을 역수입해 내놓기도 한다. 실제로 이태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랄 식품점에 진열된 물건은 모두 수입 상품이다.
이희열 교수는 “해산물, 채식은 무슬림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할랄 식당 확대는 어렵지 않다. 무슬림 관광객 유입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여러 교육을 통해 할랄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할랄 황금알 낳는 거위 맞나 먼저 뛰어든 일본도 ‘빈손’ 요즘 무역업계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는 단연 할랄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초 중동 4개국 순방 기간에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할랄 식품에 대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국의 공통 인증체계 마련과 한국 내 할랄 푸드 테마파크 조성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농식품부는 “1000조 원 규모의 할랄 시장이 열렸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문제는 단일 국가로는 가장 큰 무슬림 시장인 인도네시아가 막혀있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 기업 중 인도네시아 할랄인증(LPPOM MUI)을 받은 기업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여기에 지난해 9월 인도네시아의 할랄 인증법 개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수출 장벽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민간에서 맡던 인증을 정부기관(BPJPH)이 주관하고, 식음료 할랄 인증이 의무사항으로 바뀐다. 또 그 외의 나라 역시 자국의 할랄 인증을 받은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에 국가별 할랄 인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할랄 인증 컨설팅 업체 펜타글로벌의 방해룡 상무는 “KMF 인증으로 수출은 가능하지만, 당연히 자국 인증보다는 인지도가 떨어지므로 매출에 영향이 크다. 또 ‘할랄 허브’를 자처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할랄인증(JAKIM)을 획득한 업체도 15개 정도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너나없이 뛰어들 수 있을 정도로 인증 절차가 쉬운 것도 아니다. 할랄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별도의 전용 생산라인을 만들어야 하며, 관리자급 직원 중 일부는 반드시 무슬림으로 채용해야 한다. 또한 운송 역시 비 할랄 제품과 별도로 이뤄져야 한다. 사실상 대규모 투자비용을 감수할 수 있는 대기업이 아니고선 뛰어들기 힘든 시장인 셈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할랄 시장에 관심을 가진 일본 역시 아직까지 이렇다 할 수출 성과를 거두지 못 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이슬람교 중앙서원의 이주화 이맘(성직자)은 “국가적으로 수조 원의 시장이 열렸다고 강조하면서 모든 기업, 단체가 뛰어들었다. 할랄은 지극히 신앙적 부분이라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런데도 수익 부분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나중에 거품이 꺼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 |
할랄 음식 직접 먹어보니 친환경 한식당에 온 듯 서울 이태원 이슬람서울중앙성원 근방에 위치한 할랄 한식점 ‘이드’의 외관은 여느 음식점과 다를 바 없었다. 유리창에 붙은 할랄 인증 안내판만 빼면 말이다. 어쩐지 한식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음식을 직접 맛봤다. 메뉴는 닭과 소를 이용한 한식 네 가지. 가격대는 비빔밥 8000원에서 삼계탕 1만 2000원선. 비빔밥과 소불고기를 하나씩 주문했다. 이태원 할랄 한식점에서 직접 먹어본 비빔밥은 이름만 할랄이 붙었다 뿐이지 친환경 한식당에서 먹는 음식과 다르지 않았다. 반찬은 오이소박이, 양상추 샐러드, 멸치볶음 세 종류였고 소고기뭇국이 따라 나왔다. 비빔밥엔 호박, 계란지단, 당근, 버섯, 나물과 함께 다진 쇠고기가 소담스레 올라가 있었다. 고추장 역시 과일로 양념했는지 달콤한 맛이 나면서 맛깔스러웠다. 이름만 할랄이 붙었다 뿐이지 친환경 한식당에서 먹는 음식과 다르지 않았다. 음식을 내온 직원은 “모든 고기는 인근 할랄 정육점 것을 쓴다. 야채는 반경 5㎞에 돼지농장이 없는 곳을 찾아 공급받고 있다”고 말했다. 소불고기 역시 달콤 짭조름하게 양념이 돼 있어 외국인 입맛에도 부담스럽지 않을 듯했다. 모든 음식에서 조미료 맛은 느껴지지 않았고, 먹은 후에 속도 편했다. 식후에는 직접 담근 매실차가 후식으로 나왔다. 옆자리에선 싱가포르에서 왔다는 무슬림 관광객들이 연신 음식 사진을 찍으며 맛있다는 손짓을 해보였다. 할랄 한식의 가장 큰 걸림돌은 알코올 문제다. 시판 고추장, 간장에는 주정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유현우 이드 대표는 “양념은 한 번 끓여 알코올 성분을 날린다. 이슬람성원에서 주정이 들어가지 않은 장류에 관한 정보를 얻어 더 철저한 할랄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