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9년 파리에서 의문의 실종을 당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그의 실종이 국정원 과거사 진상규명 우선 조사 내용에 포함되면서 이 사건에 대한 미스터리들이 다시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서울신문 | ||
이 작전명은 1979년 ‘하인즈 박사’(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암호명)를 납치 살해하기 위해 그 누군가에 의해 저질러진 공작을 일컫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중정에 몸담았던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김씨의 실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탓에 자연 이 ‘작전’에 대해서도 부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체가 없는 작전명이 왜 사건이 벌어진 지 26년이 지난 지금에도 은밀히 회자되고 있는 것일까.
김형욱 전 중정부장은 육사 8기 출신으로 5·16군사쿠데타의 주역으로 참여했고, 박정희 군부가 권력을 잡으면서 요직에 등용됐다. 제3공화국 시절엔 무려 6년간 중앙정보부의 수장을 맡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러나 실세들의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그는 1973년 한국을 등졌다.
그로부터 6년여 동안 저술 및 청문회 증언 등으로 ‘반 박정희’ 활동을 하던 김 전 부장은 1979년 파리에서 의문의 실종을 당했다. 박 정권의 치부를 다룬 회고록을 출간하기 직전 이었다. 그리고 그의 ‘증발’은 아직까지도 철저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김 전 부장의 실종을 둘러싼 의문을 풀기 위해 기자는 당시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이들의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현재 이 사건과 관련된 주요 생존자는 79년 당시 중정의 해외담당 차장이었던 윤일균씨와 프랑스 주재 중정 공사였던 이상열씨 등 두 사람이다. 윤씨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고, 이씨는 전화 연결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94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근거로 했다.
사망한 김씨와 김재규 전 부장에 관련된 내용은 최후의 순간까지 이들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김경재 전 의원과 강신옥 변호사의 증언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이 사건을 밀착 취재했던 언론인들의 취재 과정에 대한 증언도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데 주요한 자료가 됐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김씨 실종 사건이 있은 직후 10·26 시해 사건이 있었고, 곧바로 국내의 모든 정보기관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었던 전두환 당시 합수본부장도 진상을 알 만한 주요 관계자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는 그해 10월 말 프랑스 주재 중정 공사였던 이씨를 서울로 급거 불러들여 조사하는 등 당시 김씨 실종 사건을 가장 깊숙이 들여다본 정보의 수장이었다.
김씨의 실종에 대한 그간의 가정은 크게 세 가지다. 공권력이 개입된 치밀한 작전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한 가운데 프랑스 카지노 현장의 범죄자 집단에 의한 단순 사고설과 북한의 개입 가능성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사건을 오랫동안 집중 취재했던 언론인들이나 김경재 전 의원 등은 두 번째와 세 번째 가능성을 일단 무시한다. 99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을 위해 프랑스 현지 취재를 했던 이규정 PD는 “취재 결과 범인에 대해 단정을 짓기는 어려웠지만 최소한 공권력에 의한 범행이라는 점은 확신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심지어는 이 사건과 관련해서 여전히 의심을 받고 있는 이 전 프랑스 주재 공사도 현지 사고와 북한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 고개를 젓고 있다. 다만 윤 전 차장은 “김씨는 카지노에 다닐 때 현금을 꼭 보자기에 싸서 갖고 다니는 묘한 습성이 있다. 돈 씀씀이가 헤픈 동양인은 카지노에서 주목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현지 범죄집단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에 ‘정치적 망명’중이던 김씨가 프랑스 파리에 간 것은 79년 10월1일이었다. 박정희 정권에 정면 도전했던 그는 항상 암살의 공포 속에 살았다. 그런 그가 가족들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호원이나 비서 한 명 대동하지 않고 혼자 파리에 갔다는 점은 의문으로 남는다.
이 전 공사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김씨가 신변보장도 없이 혼자 파리에 왔을 리가 없다. 누군가가 보장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 ‘누군가’로 자신이 의심받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답답하지만 난 절대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김 전 의원은 “김씨는 평소 운동을 많이 한 큰아들을 보디가드처럼 데리고 다녔는데 파리행에는 그 역시도 마다했다. 여기에는 당시 김씨에게 연애편지 비슷한 것을 썼던 미스코리아 출신의 한 연예인의 역할도 작용했다. 김씨는 이 연예인과 밀회도 나름대로 생각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김씨에게 이 같은 믿음을 준 당사자로 이 전 공사를 주목하고 있다.
이런 시각에는 이 사건을 밀착 취재했던 재미 언론인 문명자씨의 증언도 뒷받침된다. 김씨가 실종된 직후 부인 신영순씨는 문씨에게 “남편은 가지 말라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행을 고집했다. 비서도 필요없다고 했다. 이상열 공사가 다 알아서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고 한다.
김 전 의원은 “당시 김씨는 회고록 원고 작업을 끝내자마자 파리로 갔다. 혹시 DJ처럼 납치라도 되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는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듯 파리로 날아갔다”고 전했다.
이들의 증언 내용이 사실이라면 김씨가 안심하고 파리로 갈 수 있게끔 만든 어떤 사전공작이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오작교 작전’이라는 것. 파리에는 김씨가 평소 ‘믿을 만한 사람’으로 자주 언급했다는 이 전 공사가 있었고, 자신을 연애편지로 유혹한 미모의 여성 연예인이 있었다. 그리고 회고록 포기 대가로 받을 돈 뭉치도 있었다. 흔쾌히 파리로 날아간 김씨에게는 키 큰 동양인 남자 한 명이 동행했다. 역시 김씨가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김 전 의원은 이 인물을 중정의 행동요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신 말기 박정희 대통령을 사이에 놓고 당시 김재규 중정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의 경쟁은 불꽃을 튕겼다. 이들 두 사람이 대통령에게 눈엣가시였던 김씨 실종의 배후로 지목돼온 직접적인 배경이다.
▲ (왼쪽부터) 김재규 전 중정부장, 차지철 전 경호실장, 박종규 전 경호실장 | ||
이에 대해서는 윤 전 차장과 이 전 공사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 당시 중정에서 김씨 회유 작업의 책임을 맡았던 윤 전 차장은 “정말 각고의 노력 끝에 김씨와 회고록을 내지 않기로 다 합의를 봤다. 그런데 막판에 김씨가 배신을 해 버렸다. 그 때문에 김 부장은 (차 실장에게) 완전 망신을 당했다. 나는 김 부장에게 엄청난 질책을 당했고, 이후 김씨 문제에서 완전 손을 떼게 됐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중정의 조직 생리상 부장이 직접 비밀 조직을 챙겼다면 우리 몰래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 지휘 절차라면 우리가 모를 수가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경호실이나 전문 범죄집단을 의심하는 듯했다.
윤 전 차장은 “차 실장의 정보력이나 조직 동원 능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실제 서울 시내 여러 곳에 사무실을 두고 움직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 전 의원 역시 “중정의 (회유)작전 실패로 사실상 김씨 처리 문제의 주도권은 강경파였던 차 실장에게 넘어갔을 것”으로 추정했다.
김 전 의원은 다소 다른 각도에서 차 실장을 의심하고 있다. 그는 “김 부장을 제치고 중정의 해외 조직을 실질적으로 차 실장이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윤 전 차장과 이 전 공사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중정 특수공작단’의 소행이라는 증언도 나왔다. 10·26 사건으로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됐던 박선호 전 중정 의전과장은 민주화 인사 송아무개씨에게 “중정 특수공작단에서 김씨를 한국으로 데리고 왔고, 청와대 지하에서 죽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당시 김 부장이 직접 특수팀을 지휘했을 가능성도 있고, 차 실장이 별도로 중정팀을 움직였을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한편 최근 들어 김 전 의원은 또 한 명의 ‘용의자’를 거론하고 있다. 박종규 전 경호실장이다. 그는 “차 실장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박 전 실장이 나섰다는 제보가 있다”며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김씨 문제로 박 대통령이 골치를 썩자 박 전 실장이 ‘각하,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런 ‘박종규 역할설’ 때문에 박 전 실장이 국제적인 청부 살인업자 또는 폭력집단을 동원해서 현지에서 해치웠다는 시나리오가 최근 대두하고 있다.
당시 <조선일보> 프랑스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이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신용석씨도 “동백림 사건, DJ 납치 사건 등으로 궁지에 몰린 박 정권이 또 정보기관을 동원해서 해외에서 공작을 하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큰 상황”이라는 말로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김씨 실종 사건을 다룬 영화 <증발>(신상옥 감독)에서는 김씨가 외교관용 파우치에 담겨 납치돼 오고 박 대통령의 회유를 뿌리치자 대통령이 직접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박선호 전 중정 과장은 옥중에서 “청와대 근처의 지하실에 박 대통령과 차 실장, 김 부장, 그리고 김씨 네 사람이 있었는데, 박 대통령이 총을 쏘려고 하자 차 실장이 ‘각하, 손을 더럽히지 마십시오’라며 직접 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는 “김씨를 프랑스 현지에서 살해하고 그 시체를 화물로 위장해서 서울로 가지고 왔다”는 한 일본 언론인의 증언을 담았다. 하지만 이 증언은 다소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평이다. 현지에서 살해한 시체를 굳이 외교적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서울로 가지고 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씨를 산 채로 파리에서 서울까지 데려오는 것은 가능했을까. 이 의문에 대해 이 PD는 “실제 프랑스 현지 취재를 통해 생존한 상태로 화물박스에 넣어서 옮겨오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생존한 상태로 서울로 데려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신용석 전 특파원은 프랑스 현지 살해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국내 정보기관이 개입했더라도 청부살인업자를 동원했을 것이다. 그를 산 채로 서울로 데려 갔다는 것은 당시 상황에서 보면 신빙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밝혔다.
한편 재미 언론인 문씨는 정일권 전 총리의 증언을 통해 ‘폐차장 살해’ 시나리오를 처음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정 전 총리가 80년대 초 파리 여행 중 한 지인에게 “박정희가 너무 잔인하다. 잘못했다고 비는 김형욱을 자동차에 실은 채로 그대로 폐차장에 밀어넣어 버렸다”고 말했다는 것.
하지만 이 역시도 정 전 총리가 살해 현장을 직접 목격한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과 김씨의 측근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진실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결국 여러 가지 증언들을 종합해 볼 때 ‘회유 공작’을 폈던 김재규 부장에 이어 직접 실무 지휘자로 나선 차지철 실장의 주도로 치밀한 오작교 작전이 진행됐고, 김씨가 서울로 끌려와서 박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차 실장의 총탄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과 박종규 전 실장에 의해 고용된 전문 청부업자 등에 의해 파리 현지에서 감쪽같이 살해됐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모든 시나리오에서 김씨 실종 사건의 제일 위에는 박 대통령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모두 일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