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선거대장 등에 업기’ 보인다 보여
4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태호 최고위원이 재보궐 선거 승리를 자축하며 김무성 대표를 업어주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결과가 좋다 보니 그간의 과정도 해석이 달라진다. 모든 것이 ‘김무성의 정치력’에서 비롯된 계획적인 행보였다는, 다소 과한 해석이 그것. 지난해 방중 때 ‘개헌 봇물론’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다시 꼬리를 내려 조력자 역할을 하다, 유승민 원내대표 당선과 함께 ‘당 중심 정치론’을 설파한 일련의 과정이 ‘대통령과 동급에서 주고 받으며 지위를 격상시켰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중남미 순방에서 돌아오는 박 대통령을 향해 김 대표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과라는 표현은 ‘유감’이나 ‘입장’ 이런 단어와는 정치적 의미가 아주 다르다. 그리고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에서 대통령이 ‘어떤 부분을’ 사과해야 하나. 요즘 김 대표의 최근 행보는 정말이지 ‘여우의 꾀’에서 나온 것 같이 정밀하고 영리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가에선 ‘힘의 균형’이 깨졌다고들 한다. 중남미 순방 직전, 자신의 동선을 이리저리 바꾸면서도 박 대통령은 김 대표를 만났다. 첫 독대. 집권 이후 단 한 번도 집권당 대표와 단둘이 만난 적 없는 박 대통령이 ‘성완종 게이트’라는 위기에서 김 대표를 향해 구원을 청했다. 박 대통령은 순방 직후 앓아누웠고, 김 대표는 재보선을 압승으로 이끌었다. 정가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이 홀로 분투하기엔 힘이 빠진 절대 고립무원의 상태였다. 성완종 사건과 재보선을 터닝포인트로 권력의 시프트(shift·이동)가 이뤄졌다”고 해석했다.
TK의 중진 의원은 “김 대표가 가장 흐뭇해할 부분은 청와대가 그에게 빚을 졌다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도 그 정치적 고마움을 알기에 ‘김무성 견제’에서 기조를 틀 수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수도권 3곳과 호남 1곳에서 벌어진 재보선에서 2곳 이상을 확보하지 못했으면 박 대통령의 ‘레임덕’은 불가피했다. 인사 난맥과 세월호 사고를 겪으며 무엇 하나 해놓은 것 없다는 현 정부가 레임덕까지 앓게 되면 보수 집권도 종말을 고할 가능성이 컸다. 그런 속에서 옛 통합진보당 지역구였던 관악을마저 야당의 무덤으로 만들었으니 이번 압승은 압승이란 표현 이상의 선물을 청와대에 안긴 셈이다.
무엇보다 김 대표는 여권 내 경쟁자가 없는 챔피언 자리에 섰다. 일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카드가 사라졌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잘 알지 못한다는 말에서 충청민심을 잃었고, 손자들과 여생을 보내겠다면서 차기 출마에 대해 처음으로 ‘공개적인 입장’을 밝혔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함께 검찰 수사 1순위에 있다. 유정복 서병수 홍문종 등 친박계는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성장판이 떨어져 나간 상황이다. 김문수 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이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무성의 아류’ 정도로 비친다. 본선경쟁력은 몰라도 당내 장악력에선 김 대표에게 대적할 인물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덕인지 재보선 직후 김 대표의 대선주자 지지도는 급상승했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지지도는 추락하면서 둘의 지지도 격차는 오차범위 내에 들어오게 됐다. 리얼미터가 30일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긴급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를 실시했더니 김 대표 지지도는 전날 16.3%에서 23.4%로 하루 만에 7.1%포인트 올랐고, 문 대표의 지지도는 26.9%에서 23.6%로 3.3%포인트 떨어졌다.
앞서의 재선 의원은 이를 두고 “당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표 재임 시절 이후로 이렇게 강력한 당대표는 없었다. 무성시대가 열렸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앞으로 모든 선거에서 ‘김무성 모시기’가 이뤄질 것이며 그럴수록 김무성의 브랜드파워가 세질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정치에선 기회가 위기이고 위기가 기회다. 160석의 거대 여당엔 숙제가 산더미다. 가장 큰 것이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김 대표로선 무라도 썰어야 할 과제다. 레임덕은 막았지만 청와대와 정부가 국정동력을 걸 수 있도록 막힌 도로를 뚫어줘야 한다. 김무성의 선거가 인정받았다면 남은 것은 그의 정치력이다.
일각에선 김 대표를 두고 ‘이미지 개선’을 주문한다. 하지만 태생적 한계가 있어 극복이 쉽지 않다고도 한다. 정가의 한 소식통은 “구태, YS계, 선대의 친일 논란, 재산, 과거 NLL(서해북방한계선) 녹취록 유출 해명 등은 언제든 김 대표를 끌어내릴 수 있는 소재들이다. 명확한 입장을 정해 말실수가 없도록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강석호, 권오을, 김학용 등 측근그룹에 석학이 없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충성심은 높지만 지략가는 아니라는 지적은 그에게 뼈아프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제통’인 유승민 원내대표와 대조되는 이미지에다 과거 경제지표 등에 대한 여러 말실수가 오버랩돼 ‘지도자로서의’ 김무성이 위태해 보인다는 말도 들린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날개를 달았다. 압승에 젖어 경거망동 않고 있다. 김 대표는 주요 당직자들 앞에서 이런 말을 설파했다.
“강력한 정치혁신 드라이브를 걸어 개혁 아젠다를 선점해 폭풍 혁신으로 우리가 정국을 주도해야 한다.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여전히 높아 걱정스럽다. 선거 결과에 안주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국민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내년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
김 대표의 대권가도를 도울 ‘보좌진 그룹’은 거의 완성 상태에 있다고 한다. 여전히 전국의 인재나 지략가들에게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며 보좌그룹의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김무성의 ‘돌격 앞으로’가 시작됐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