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화 관계자가 기자에게 내뱉은 푸념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영화 <툼레이더>에서 보여준 여전사의 모습은 전 세계인의 혼을 쏙 빼내갈 정도로 강력했다. 만약 한국에서 <툼레이더>가 만들어진다면 어떤 여배우가 가장 잘 어울릴까.
관객들을 포복절도시킬 코미디 연기와 눈물샘을 강하게 자극할 멜로 연기에 유능한 여배우는 넘쳐나는 충무로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낼 여배우는 정작 찾기 어렵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최근 제작 준비에 들어간 몇몇 영화들이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를 준비중이다. 하지만 문제는 단 하나. 캐릭터는 좋지만 맡을 만한 여배우가 없다는 점이다.
신생 영화사 SM필름은 이현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블루엔젤>을 준비중이다. 전작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통해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선보였던 이시명 감독과 이현세 작가의 인기 만화가 만난 것.
문제는 원작만화 <블루엔젤>의 주인공이 ‘섹시한 외모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슈퍼 여형사’라는 점. 캐릭터 자체만 놓고 본다면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여성상이지만 이를 연기할 여배우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 사실 <블루엔젤>은 이미 여섯 차례나 제작이 시도됐다 실패한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만큼 캐릭터에 걸맞은 캐스팅이 어려웠던 것.
SM필름의 임진순 이사는 “신인 가운데 한 명을 깜짝 캐스팅할 예정”이라며 “창립 작품인 만큼 유명세가 보장된 톱스타를 캐스팅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합당한 배우를 찾을 수 없었다”고 얘기한다. 몇몇 배우들과 접촉한 결과 역시 “끌리는 캐릭터임에 분명하지만 아니한 만 못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거절하기 일쑤였다고.
10월 중순에 크랭크인해 내년 5월 개봉 예정이라 캐스팅이 절박한 상황. 전작에서 장동건을 시공을 초월한 전사로 그려냈던 이시명 감독이 이번에는 어떤 여배우를 한국 영화사상 가장 멋있는 여전사로 그려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여자 레슬링 시합 장면. | ||
영화는 한 백수 남자가 여자레슬링 선수에게 반해 매니저가 된 사연을 그리고 있다. 여자주인공 ‘원더걸즈’는 강인한 파워의 여자 레슬러. 내년 초에 크랭크인해 6월쯤 개봉한다는 계획을 세워둔 상태여서 영화사는 요즘 여배우 구하기에 혈안이 돼 있다.
“레슬러라는 역할의 특성상 레슬링을 몸소 배우는 데 기나긴 준비기간과 배우 본인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LJ필름의 임충근 프로듀서는 “게다가 여자 레슬러 의상이 어느 정도의 노출이 가미된다는 점에서 배우들이 많이 꺼리는 편”이라고 말한다.
이런 연유로 영화사는 시나리오 수정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레슬링 장면을 최대한 줄이고 드라마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꿀 경우 유명 여배우의 캐스팅도 가능하리라는 판단 때문. “시나리오를 수정해 스타급 배우를 캐스팅하거나 TV에서는 잘나가지만 영화로는 재미를 못 본 일부 여배우를 캐스팅하는 방안을 연구중”이라는 임 프로듀서는 “스타급이 안된다면 아예 건강미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신인을 공개오디션으로 발탁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가장 근본적인 고민은 톱스타를 캐스팅할 여건이 조성된다 하더라도 딱히 어울리는 여배우를 찾기 어렵다는 사실. 멜로와 코미디 영화만 양산되는 현실에서 여배우들 역시 이 두 가지 장르의 ‘전문 배우’화됐기 때문이다.
임 프로듀서는 “신인이 좋기는 하지만 영화의 특성상 남녀 배우가 강해야 흥행 가능성이 높아지고 투자를 받기도 쉽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며 한숨이다.
여배우의 부재는 시나리오까지 수정해버릴 정도로 영화 제작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때문에 영화제작자들은 개성 있는 여성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의 제작을 꺼리는 경향이 있고 이런 분위기는 대박 영화마다 여배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상황으로 연결되곤 한다.
반면 남자 배우들은 ‘추남’(이성재)은 물론 ‘레슬링 선수’(설경구) ‘언청이’(신하균)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