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입이냐 조언이냐 그것이 문제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비난 발언에 최고위원직 사퇴를 밝힌 주승용 최고위원(왼쪽)이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대표의 만류를 뿌리치고 퇴장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종걸 원내대표. 연합뉴스
과연 그럴까. 이른바 ‘3철’로 일컬어지는 ‘전해철 이호철 양정철’ 3인방은 전해철 의원을 제외하고는 각기 자신들의 ‘생업’에 충실하며 생활하고 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새정치연합 주변에서는 3철을 중심으로 한 친노 핵심 보좌진들이 문 대표를 에워싸고 당의 공식 회의에서 나온 전략들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3인방 또한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 재보궐 선거 뒤 다시 불거지고 있는 친노 패권주의의 핵심인 ‘3철’ 논란을 집중 추적해봤다.
“한사람의 의원,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가 문재인 후보의 승리만을 위해 노둣돌이 되겠다.”
지난 2012년 10월 21일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최측근인 친노 9인방이 대선 캠프 요직을 내려놓으며 한 말이다. 친노 9인방은 문 대표에게 가장 가까운 인사인 이른바 ‘3철’(전해철·이호철·양정철)을 중심으로 정태호 전 청와대 대변인과 윤후덕 박남춘 김용익 의원, 그리고 소문상 전 정무기획비서관과 윤건영 전 정무기획비서관이 그들이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캠프의 핵심전략가들인 친노 9인방의 퇴진은 친노 계파가 캠프의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문재인 후보의 통 큰 결단이었다. 이때부터 이들은 공식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을 내려놓으면서 문 대표의 비공식 그룹으로 자리했다. 하지만 대선 당시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 등의 준비과정에서 양정철 전 비서관이 준비팀에 질문지를 넘기지 않아 잡음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논란이 됐다. 공식 담당자(김현미 의원)가 질문지가 오지 않아 찾고 있었는데 그것을 전달하지 않았던 장본인이 바로 퇴진을 선언했던 양정철 전 비서관이었던 것. 이 해프닝으로 물러났다고 여겼던 9인방이 여전히 물밑에서 핵심적인 일들을 맡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크게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양 전 비서관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지만 당시 캠프 안팎에서는 친노 9인방이 계속 캠프 일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대선 패배 후 문 대표가 의원으로 복귀하면서 비선 논란은 잠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대표직을 맡은 뒤 재보궐 선거에 패배하면서 사그라들었던 비선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이런 비선 논란은 문 대표가 권력을 잡으면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악순환이다. 지난 2·8 전당대회에서 문 대표가 승리하면서 그에게 권력이 집중됐다. 문 대표는 김현미 양승조 추미애 의원 등 비노계 인사들을 요직에 배치하며 ‘탕평’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서는 그때마다 비선 논란도 커졌다. 재·보궐 선거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나는 그냥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불만을 쏟아냈고 이것이 ‘회의는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고 정작 핵심적인 결정은 따로 한다’는 의구심도 커지게 됐다. 이런 불만들이 쏟아지면서 문 대표의 리더십도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재·보궐 선거지역 4곳에서 1석도 건지지 못하고 광주까지 무소속 천정배 후보에게 내주자 지도부에서도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 비노계 주승용 최고위원은 “들러리나 서는 최고위원직에 미련 없다”며 문 대표의 비선 세력을 겨냥한 뒤 당 공식회의석상에서 최고위원직을 그만두겠다며 퇴장하는 꼴사나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시선을 의혹의 핵심에 서 있는 문 대표의 ‘최측근’에게로 한번 돌려보자. 이들은 여전히 문 대표에 대한 ‘충성심’으로 뭉쳐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이들은 당 공식 라인에서 물러나 외곽에 포진해 있는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공식 라인에서 물러났다고 해도 여전히 전략적인 조언을 해주고 있는데, 당 외곽으로 물러나 있으니 오히려 중앙당과의 소통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대선 캠프 당시 2선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친노 9인방의 입장과도 맞물린다. 당시 친노 9인방은 사퇴 직전에도 “문 후보는 원래 계파나 계보가 없는 분으로, 지지하는 국민을 빼면 기존 정치권에서 외로운 분”이라며 계파 싸움으로 인한 ‘문재인 흔들기’를 우려했다.
대선 직전 9인방들이 물러날 때 그 중 한 멤버는 “그때 2선 후퇴하지 말고 옆에서 보좌할 걸 그랬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친노 9인방의 사퇴로 캠프에서는 2주간 실무가 ‘마비’상태였는데 하루하루 지지도가 바뀌던 대선에서 2주의 ‘공회전’이 큰 손실이었다는 것이다. 계파논란 때문에 할 수 없이 물러나야만 했던 9인방이었지만, 당시 그들이 느꼈던 것은 “그래도 꿋꿋하게 남아 문 대표의 성공을 위해 끝까지 지켜줬어야 했다”는 자기반성이었다. 이런 9인방의 ‘충성심’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3철’ 가운데 한 명인 양정철 전 비서관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필요한 일 있으면 조언하고 의견을 전달하고 그런 정도다. 그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 문 대표는 최고위원들과 지도부 외에 누구에게도 도움 받지 말라는 이야기인데 그건 아니지 않느냐”라고 강변했다. ‘외곽에서 문 대표를 돕는 게 뭐가 그리 큰 문제가 되느냐’는 입장인 것이다. 이런 9인방의 정서는 얽히고설킨 친노 패권주의의 실타래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 대표도 이들을 떼어내기가 쉽지 않다. 문 대표를 둘러싸고 있는 이른바 ‘친노’는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9인방을 중심으로 한 ‘구파’와 대선을 치르면서 합류한 의원들 중심의 ‘신파’가 있다. 원조 친노인 구파는 노무현 정권 당시 함께 청와대에서 일했던 인사들이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신파는 19대 총선과 대선 캠프를 지내면서 비서실장을 지낸 노영민 의원과 한명숙 지도부의 공천으로 입성한 김기식 배재정 진선미 의원 등 초선 강경파 의원들이다.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노’라는 공통점으로 연대감이 있기는 하지만 9인방과 비교했을 때는 충성심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문 대표로서는 그와 보낸 시간이 짧은 ‘신파’보다는 청와대 시절부터 함께 한 ‘구파’를 더 신뢰하고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앞서의 한 친노 관계자는 “이번 당직자 탕평인사 또한 문 대표와 가장 가까운 청와대 출신 구파중심 인사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이럴 정도로 문 대표가 9인방 중심 인사들을 여전히 믿고 있다. 또한 문 대표와 정서적으로 가까운 측근들은 전해철 박범계 김현 등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비교적 당내 입지가 약하다. 문 대표 입장에서는 비선논란을 없애기 위해 최측근까지 떼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재보궐 선거에서 정태호 전 대변인이 국회 입성에 실패하면서 이 같은 우려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비선 논란은 문 대표가 당내에서 자기편을 만들어가는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평가와도 맞물린다. 재·보궐 선거에 참여했던 한 새정치연합 의원은 “문 대표는 성격이 호탕하거나 의원들과 스킨십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문 대표의 측근들은 지금도 당시 노무현 정권 때 만났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대선 때부터 데리고 다녔던 사람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의원들 사이에서 ‘문 대표는 낮에 만나는 사람 다르고 밤에 만나는 사람 다르다’는 꼬리표가 붙었다. 사무총장이나 전략홍보본부장 같은 사람들은 선거에서 매우 중요한데 이들이 의사결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4월 들어서는 당대표가 지도부 인사들과 같이 살다시피 할 정도로 긴밀해야하는데 문 대표는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재·보궐 책임론에 있어서도 문 대표의 결정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앞서의 의원은 “측근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공식 그룹과 비공식 그룹을 잘 조율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는 것 같다. 문 대표는 공식 라인을 믿지 않는다. 지도부에서 의원들이 4대0으로 질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그는 생각이 아예 달라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비판했다.
문 대표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공식 전략수립 라인의 복원이 필수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계파 색이 없는 한 새정치연합 초선 의원은 “문 대표가 말로만 쇄신한다고 하는 건 이제 아무도 믿지 않는다. 공식 라인으로 신뢰를 주는 쪽으로는 당연히 바꿔야 한다. 광주에도 실질적인 액션을 줘야 한다. 선거 이후 광주에 내려간 것도 전략을 가지고 내려갔어야 한다. 쇄신도 비선라인이 아닌 본인이 직접 능력 있는 인사들을 동원해서 혁신적인 안을 내놔야 한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아 문 대표로 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본다. 문 대표가 제대로 못하면 당도 함께 망가질 것이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