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노 ‘총선까진 방패막이가 필요해’
재보선 참패와 관련해 ‘문재인 책임론’이 ‘퇴진론’으로까지는 확대되지 않고 있다.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에 당선된 이종걸 의원(가운데)이 문재인 대표(왼쪽), 우윤근 전 원내대표와 함께 손을 맞잡고 인사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재보선 참패 여파로 그로기 상태에 몰린 새정치연합의 내부에서 ‘책임론’을 두고 가시 돋친 설전이 이어졌다. 문 대표가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그를 겨냥한 ‘퇴진론’의 핵심인데, 이를 주도한 비노 진영 일각의 구상과 달리 논쟁이 생각보다 확대되지 않는 모습이다. 퇴진론에 가세하는 당내 의원들이 제한적 숫자에 그치고 있고, 오히려 ‘문 대표만의 책임이 아니다’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어서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표의 퇴진을 요구한 주승용 최고위원에 맞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 최고위원은 같은 날 최고위에서 “선거 참패 원인은 호남·친노 같은 계파 문제가 핵심이 아니다. 진정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패배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위터에 남긴 글을 통해 “주 최고위원이 틀렸다. 4·29 패배가 친노 패권에 대한 심판이면, 이겼으면 친노 패권의 승리냐”며 “주 최고위원은 광주(선거) 책임자 아닌가. 뭐 뀌고 성내는 꼴”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후 정대철 상임고문이 “내가 문 대표였으면 사퇴했다”고 말하는 등 일부 퇴진론 여파가 이어지긴 했지만, 당 전체적으로는 더 이상 퇴진론 주장이 확산되지 않았다. 주 최고위원도 이후 공개 발언을 자제하면서 문 대표의 반응을 살폈다. 주 최고위원은 “내 메시지는 던졌고, 문 대표가 이에 대한 반응을 어떻게 할지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당내에서는 김한길 전 대표를 비롯한 비노 진영에서 주 최고위원을 내세워 ‘문 대표 흔들기’를 시도했다고 보는 관측이 대부분이다. 전면에 나서긴 부담스러운 비노 진영에서 주 최고위원을 앞세워 당내 비판 여론을 조성해 보려다 여의치 않자 일단 한 발 물러났다는 것이다. 비노 진영에서도 문 대표를 조기에 흠집 내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에 퇴진론은 더 이상 확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문 대표가 내년 총선까지는 ‘방패막이’ 역할을 하면서 당을 이끄는 것이 낫고, 벌써부터 비노 세력이 전면에 나서 개혁을 추진하기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 대표가 상처를 입은 만큼, 계파별로 목소리를 내면서 각자 지분을 챙기는 쪽을 택한 셈이다.
광주 서을에서 새정치연합을 꺾은 천정배 의원 변수도 있지만 예상보다 추진력을 얻기 힘들 것이란 평가도 있다. 호남 정가를 중심으로 천 의원 신당에 기대가 모아졌지만, 현 상황에서는 호남의 기대가 천 의원 개인에 대한 차원이란 해석이 많아 세력화까지는 이어지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다. 천 의원도 당선 직후에는 ‘뉴DJ’ 구상을 바탕으로 광주 8곳, 나아가 호남 30곳에 독자 후보를 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 뒤에는 “신당을 만들 계획이 없다”고 뜻을 밝혔다. 그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여사에게 “다음 대선에서 분열하지 않을 것이며, 당을 더 튼튼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광주의 한 의원은 “광주 문제는 지금으로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섭섭해 하고 있는 호남 민심을 당이 끌어안을 방법만 모색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또 공무원연금개혁 법안 처리와 연계한 공적연금 강화 추진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되면서 다시 당력이 집중될 여지가 생긴 점도 ‘문재인 퇴진론’을 잠잠하게 한 중요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문 대표는 공적연금 강화안 추진 지침을 내리면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추인 합의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청와대의 반발 속에 새누리당이 이를 거부, 4월 임시국회가 무산됐지만 향후 원내 투쟁 동력을 얻는데 성공하면서 문 대표에게 또 다시 힘이 실리게 됐다. 문 대표는 5월 임시국회 소집과 투쟁 돌입 등 향후 방안을 제시하면서 당을 다시 이끌게 됐다. 이 과정에서 당내 대권주자 중 하나인 안철수 의원이 “국민 합의 없는 공적연금 강화 진행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주요한 의견으로 확대되진 못했다.
새정치연합 원내 관계자는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를 명기하는 것은 문 대표의 의지가 상당히 작용했다”며 “원내지도부에서는 여당의 주장을 어느 정도 수용하더라도 합의를 보자는 기류였지만 문 대표의 의지가 강력했다”고 했다. 결국 새누리당의 반대로 6일 본회의가 파행되는 등 혼란을 겪었지만, 당 내부적으로는 새누리당에 끌려가기만 하던 상황을 반전시킬 여건이 마련됐다며 반색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공무원연금개혁특위 소속 한 의원은 “앞으로 좋은 승부가 될 거다. 잘 지켜보시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여러 여건이 맞아떨어지면서 문 대표를 겨냥한 퇴진 압박은 사그라들었지만 당내 비노 진영이 온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어서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일단 비노 진영은 주 최고위원 뒤에서 견제를 계속할 계획이다. 주 최고위원 역시 6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금 당의 운영이 공식적인 최고위원회의를 거쳐서 운영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게 비선라인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면서 “문 대표가 이번 선거 패배를 놓고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견제구를 계속 날렸다.
대권 후보로도 거론되는 비노 진영 중진 의원의 한 보좌관은 “한동안은 문 대표에게 지나친 간섭도, 도움도 주지 않을 것”이라며 “더 큰 목표가 있는데 벌써부터 나설 필요는 없다. 당분간은 상임위 활동에만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차피 문 대표가 대선까지 지금처럼 끌고 갈 수는 없다. 중간에 한 번은 위기가 올 것인데 그때를 보고 길게 가야 한다”고 밝혔다. 덧붙여서 “이번 선거 패배로 흠집이 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벌써부터 나서는 것도 하수”라고 했다.
이런 분석은 문 대표 측에서도 문제의식을 느끼는 지점이기도 하다. 친노를 대표해 다음 대선 후보로 나서야 할 ‘브랜드’인 문 대표가 너무 일찍 전면에 나서 흠집만 입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친노 진영에서는 이번 당대표 경선에 문 대표가 나서겠다고 결정했을 때 만류하는 입장이 다수였다. 문 대표의 한 측근은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해야 한다는 본인의 의지가 워낙 강했다. 정치적 셈법 같은 걸 고려하는 분이 아니다보니, 정무적 판단으로 만류한 측근들의 설득이 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안수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