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 기자
여의도 에스트레뉴(S-trenue) 오피스텔 수십여 채를 보유하고 있는 정 씨는 지난해 11월, 청와대와 새누리당, 국민권익위원회에 “지난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 지지모임에 오피스텔 10여 채 이상 무상 제공하고 지원했다”면서 “(피제공자들은) 홍보, 새누리당 당명 로고작업, 유세단 연습장, SNS 활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선거지지 활동을 했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해 12월 <일요신문i>를 통해 최초 보도된 바 있다. 이후 취재진의 연락을 피해오던 정 씨는 지난달 중순 전화 통화에서 “우리 빌딩이 무슨 빌딩인데, VIP(박근혜 대통령)를 탄생시킨 빌딩이잖아”라며 격한 감정을 토로했다. 그는 “여기가 SNS 본부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씨는 지난해 탄원서를 올린 경위에 관해 “나는 지금도 VIP의 팬이다. (피제공자들이) 바깥에서 고생하는 게 딱해서 비어있는 사무실을 쓰라고 한 것이다. 처음에는 1~2개였는데 점점 요청이 늘어나 10여 곳 이상 빌려줬다”라며 “지난 2년간 잘 쓰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최소한 원상복구라도 해주고 떠나야 하는 것 아니냐. (선거가 끝나고) 이후 내가 어려움에 처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다들 피하더니 나중에는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정 씨는 “내가 정치인도 아니고 조용히 사업하는 사람이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으면) 불법 선거사무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느냐”라며 “저와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여의도 에스트레뉴 빌딩. 최준필 기자.
정 씨는 이어진 후속 통화에서 탄원서와 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성기철 전 포럼동서남북 대표, 송재국 전 서강바른포럼 공동회장,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그리고 서병수 부산시장에 내용증명 형식으로 보낸 사실도 확인시켜줬다. 네 사람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서강대학교 출신으로 ‘서강바른포럼’, ‘서강금융인포럼’ 등에서 활동해 왔다.
앞선 통화에서 정 씨는 “(내용증명을 보낸 이후) 돌아오는 답은 조용히 살아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식이었다”면서 “(이런 상황인데) 기사화하면 달라질 게 있느냐. 지금 겨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내가 이런 일에 연루된 사람이라는 게 알려지면 나와 거래를 하려는 사람들이 다 떠날 것이다. 정권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느냐. 지금은 내가 살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 씨는 또 “나를 제2의 성완종으로 만들려고 한다. 나도 여러 번 죽으려고 했다. 하루도 몸이 편할 날이 없다”라며 “스스로 일어서면 양심선언을 할 테니 좀 기다려 달라”며 통화를 끝냈다.
한편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정 씨의 탄원에 관해 “불법 선거사무실을 제공한 사람 역시 공범 아니냐” 반문하기도 했다. 한 새누리당 당직자는 “바깥에 그런 단체(박근혜 대통령 지지단체)들이 워낙 많은데, 당에서 일이 터질 때마다 언급하면 안 좋게 엮이기만 할 뿐”이라며 “성완종 회장이 그렇게 죽어버렸으니, 무슨 내부고발자처럼 됐지만 결국 자기 이권을 위해 정치권에 돈을 댄 사람이었다. (에스트레뉴 오피스텔 무상임대 역시) 같은 잣대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