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방러 무산 당시 뭔가 수상한 낌새 있었다”
외국 언론들은 지난 13일 북한군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최근 숙청됐다는 소식을 긴급하게 전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사진은 북한군 총참모부 총참모장 시절인 2012년 7월 18일 당시 현영철 차수가 평양의 한 회의 석상에서 박수치는 모습. 오른쪽은 김정은 국방위원장. AP/연합뉴스
기자는 국정원이 현영철의 처형설을 발표하기 일주일 전인 5월 8일,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와 만났다. 이 대표와는 당시 러시아의 초청에도 방러 계획을 접은 김정은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그때 그는 넌지시 이런 얘기를 꺼냈다.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북한 내부에서도 찬반이 오갔다. 그런데 최근 첩보에 의하면 지난 4월 24일에서 26일 사이 북한 군부 안에서 큰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앞서도 많은 찬반이 오갔지만, 이것이 김정은의 방러 계획을 무산시킨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나도 좀 더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현재로선 자세히 밝히기 어렵다. 다만 북한 군부 안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고 있음은 확실하다. 김정은의 권력 구도가 심상찮다. 사건은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이윤걸 대표가 언급한 ‘군부 내 큰일’은 며칠 뒤 밝혀졌다. 국정원은 현영철이 처형됐다는 사실을 공식화했다. 4월 말, 평양의 강건군관학교에서 고사포로 잔인하게 공개 처형됐다는 것. 국정원이 밝힌 현영철의 숙청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비공식 석상에서 김정은에 대한 불만을 피력했다는 것. 둘째는 4월 24일 김정은이 참석한 북한군 훈련일꾼대회에서 조는 모습이 포착됐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김정은에 대한 ‘불경죄’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설명이다. <일요신문>은 5월 14일, 국정원 발표에 앞서 이를 어느 정도 예견한 이윤걸 대표를 다시 만나 ‘현영철의 처형’에 대해 다시 물었다.
“국정원이 발표한 처형 이유는 말도 안 된다. 아무리 그래도 북한이 단지 조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사람을 죽이는 그런 나라는 절대 아니다. 김정은 본인에 위협이 될 만한 반체제 행위를 적발했을 것이다. 구체적으론 좀 더 파악을 해봐야겠지만,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불경죄는 처형의 이유가 안 된다.”
분명한 것은 북한 군부와 권부에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김정은의 권력 자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반증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지난해 북한 군부에서 장성급 인사 15명이 숙청됐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게다가 지난 10일, 북한 군부의 핵심 중 한 명인 김격식 전 총참모장이 자연사했다고 북한이 발표했다. 사실 시기적으로 볼 때, 김격식의 자연사도 의문점 투성이다. 이번 현영철의 처형까지 공포정치의 연속이다. 군에 대한 김정은의 장악력 자체에 의문이 갈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한이 자연사했다고 발표한 김격식의 장례식은 이전과 달리 별도의 장례위원회가 구성되지도 않았으며 극히 초라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김정은 시대의 군부 핵심 인사로 추앙받던 그의 위치를 놓고 볼 때, 마땅한 처우라 볼 수 없는 대목이다.
김격식의 ‘자연스럽지 않은 자연사’의 연장선상에 바로 현영철의 처형이 있다. 현영철은 김정은 시대를 상징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마지막 자리인 인민무력부장은 평시엔 인사권을 쥐고 있는 총정치국장과 비교해 밀리는 형국이지만, 전시엔 작전권을 진두지휘하는 막강한 자리다.
그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시점은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처음 공식석상에 등장한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의 때다. 그 당시 현영철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임되며 대장으로 진급했다. 2011년 김정일이 죽었을 때는 장례위원을 맡기도 했다. 이듬해엔 리영호 당시 총참모장(우리의 합참의장)이 숙청된 뒤, 그 바통을 이어받아 차수로 진급했다. 불분명한 이유로 다시금 대장과 상장으로 계급이 강등 당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6월 다시금 대장으로 진급하며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됐다. 그는 언제나 김정은 시대 군부의 중심을 오갔다.
일각에선 현영철의 처형을 두고 지난해 대대적으로 진행됐던 장성택의 잔존세력 숙청과 연관 짓기도 한다. 하지만 현영철은 장성택 세력과는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영철을 굳이 파벌로 나눈다면 오극렬과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된 분석이다. 소련 유학파인 현영철은 역시 소련 유학파 출신이자 김일성-김정일에 이어 김정은까지 3대에 걸친 호위세력가로 알려진 오극렬의 진영 인사로 분류된다.
오극렬은 총참모장을 거쳐 국방위 부위원장에 오른 군부 내 신화적 존재이며 여전한 현직이다. 그는 김정일과 가장 가까운 술친구로도 회자되며, 김정일 생전에 김정은의 권력이양에도 적극 가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지만 김정은의 호위세력이라 일컬어지는 오극렬 진영의 핵심인 현영철도 처형되고 말았다.
결국 현영철의 처형은 ‘김정은 시대에는 적군과 아군이라는 구분 없이, 경우에 따라서는 누구나 처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의 메시지를 대대적으로 공포하게 된 셈이다. 이윤걸 대표는 현재 김정은의 불안한 군부 장악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북한 군부는 ‘오극렬 세력’, ‘장성택의 잔존세력’, ‘김설송 세력’과 ‘김정은의 신진세력’으로 나뉜다. 문제는 ‘북한판 태자당’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군부 내 ‘김정은의 세력’이 실제론 극히 미미한 규모와 위치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는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왕좌를 물려받은 김정은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러한 불안한 사정 때문에 김정은의 군부 내 공포정치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또 다른 2인자들도 ‘벌벌’ 황병서 총정치국장 ‘나 지금 떨고 있니’ 현영철의 처형 이후 북한의 권부 안에서는 이제 정말 어느 누구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 김정은 시대 들어 ‘2인자’들로 일컬어졌던 핵심인사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일이 이젠 예삿일이 됐다. 앞서 리영호의 숙청과 장성택의 처형에는 김정은 시대의 2인자로 칭해지는 최룡해 당비서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허나 최룡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 출신인 최룡해는 한때 군부 최고봉인 총정치국장에 오르는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지난해 4월 갑작스레 실각하며 당무에 복귀했다. 현재도 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군부 시절과 비교한다면 좌천성 인사 성격이 짙다. 그리고 이번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처형까지, 김정은 시대 들어 연이은 2인자들의 숙청 및 처형이 계속되고 있다. 김정은 시대의 2인자는 오히려 공포정치의 본보기이자 참혹한 숙청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현재 북한의 2인자 내지는 실세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앞서 2인자들의 전례를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 가장 주목 받는 인사는 누가 뭐래도 군부 1인자 황병서 총정치국장이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그는 앞서 최룡해가 리영호와 장성택의 처분에 앞장섰던 것처럼 이번 현영철의 처형에 적극 가담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도 현영철의 처형으로 군부 2인자에 등극한 리영길 총참모장과 여전히 당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최룡해 당 비서 역시 줄곧 지켜봐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