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담 나누다 싹튼 사랑…윤영선, 팬이 여보로
모든 부부는 각별한 인연의 만남이지만, 유 5단이 신부를 만난 것도 재미있는 인연이었다. 2년여 전 어느 날 유 5단은 대구 거리를 걷다가 화교 초등학교를 발견한다. 화교면 중국, 대만? 대만이라면 혹시 하고 유 5단은 곧장 교장실을 찾아가 “나는 프로기사다. 대만에서 오래 지내다 와서 중국어에는 불편이 없다. 학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고, 교장은 정말 잘생긴 한국프로기사 청년에게 호감을 느끼며 즉석에서 청년의 제안을 수락했다. 바둑강의를 시작하면서 학교 선생님들과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지금의 신부였다. 신부도 교장선생님처럼 바둑은 모르지만, 영화배우처럼 생긴 데다 매너 좋고 온화한 한국 바둑 선생님의 첫인상이 가슴에 남았다.
유경민 5단과 화교 왕회이츠 씨 부부.
유 5단은 바둑수업도 중국어로 진행한다. 워낙 유순하고 아이들을 좋아해 유 5단은 장난꾸러기들도 심하게 나무라지를 못하고, 대신 수업이 끝나면 왕 씨가 아이들을 혼내곤 해서, 유 5단도 처음에는 “무서운 여자”인 줄 알았다는데, 그게 사실은 유 5단에 대한 배려였던 것.
국제결혼은 의사소통이 약간 문제지만, 두 사람은 그런 게 없다. 그래도 신부는 이따금 신랑의 중국어 발음을 지적하곤 한단다. 의사전달에는 지장이 없지만, 학교이니만큼 바둑선생님도 선생님이니 아이들을 생각해 기왕이면 발음이나 어휘를 보다 품위 있게 구사하라는 것.
김형환 7단은 중국인 치밍밍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형환 7단은 2002년 입단해 일찍이 중국 갑조리그에서 뛴 경력이 있고 2008년 시즌부터는 LG배, KT배, 렛츠런파크배 등 세계-국내기전의 본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김 7단이 신부를 만난 것도 학교에서였다. 김 7단은 한국외대 학생이었고, 신부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 4년을 사귄 끝에 부부가 되어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서울 노원구에서 신혼을 시작한다.
바둑동네 국제결혼의 선배로는 윤영선 5단(38·해외보급 8단)과 권효진 6단(33), 홍맑은샘 2단(34·관서기원) 등이 있다. 윤 5단은 10여 년 전 독일에 건너가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바둑보급을 하고 있다. 지금은 제대로 자리를 잡고, 유럽 각지를 돌며 강의와 지도기를 펼치고 있다. 2007년에 윤 5단의 열렬한 팬이었던, 톰 크루즈를 빼닮았다는 얘기를 듣는, 연하의 독일인 대학생 청년과 사랑을 일구어 결혼했다. 시댁의 사랑을 받으면서 잘 살고 있다.
권 6단의 남편은 중국 산시(山西)성 출신의 서글서글한 프로기사 웨량(岳亮) 6단. 나이도 동갑이고, 부부 프로기사가 단도 같다. 윤 5단의 시댁의 사랑을 받듯 웨량 6단은 처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장인 권갑용 8단(58)이 사위를 끔찍이 아낀다.
한국에서 늘 입단후보 영순위였음에도 번번이 문턱에서 넘어지자 과감히 일본에 건너가 관서기원을 통해 꿈을 이룬 홍맑은샘 2단은 한-일 바둑계에서 의지의 한국인으로 통한다. 실력은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되 입단에는 좌절했던 후배 청년들에게 관서기원의 길을 알려 준 선배이기도 하다.
엊그제에도 한국의 아마강자였으며 일본에 건너가 아마본인방, 아마명인 등 일본 아마 바둑계의 대표적 타이틀을 2~4년씩 연패하면서 정상에 군림하던 홍석의 선수(29)가 관서기원의 입단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소식이다. 홍맑은샘 2단은 2005년 한 살 위인 사토카나코(佐藤和奈子)와 결혼했는데, 홍 초단도 홍 2단처럼 앞으로도 계속 일본에서 활동할 것 같으면 “존경하는 선배” 홍 2단처럼 일본 규수를 신부로 맞을지 모른다.
유럽의 바둑인들 중에는 바둑이 좋아, 바둑을 더 배우려고, 일본에 와서 일본인 여성과 결혼까지 했던 예가 더러 있다. 일본이 서구의 바둑보급에서 우위를 점한 데에는 그것도 일조를 했다는 것 아닌가. 요즘은 중국 여자 프로기사가 유럽의 바둑인과 가연을 맺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물론 우리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바둑보급보다는 사랑이 먼저였겠지만, 바둑의 국제결혼은 ‘강추’까지는 모르겠으나 바둑계로서는 흐뭇한 일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