줘도 줘도 손벌려…이게 가족입니까
토고의 축구 스타 아데바요르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가족들이 그에게 돈과 집을 끝없이 요구했으며, 심지어 개인 물품까지 훔쳐다 내다팔았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이 글에서 아데바요르는 가족과의 갈등을 공개하면서 그간 가족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했는지 밝혔다. 또 자신이 베푼 것에 대해 고마워하긴커녕 가족들은 오히려 자신을 ‘불효자’ ‘배신자’라고 몰아세웠다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인 12일에는 두 번째 글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동생 로티미의 비행을 낱낱이 폭로하는 글이었다. “내가 축구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가족 때문이었다”고 말한 그는 “앞으로 계속해서 가족의 치부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한 “나는 거짓말을 안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이런 일들이 그동안 너무 오래 지속되어 왔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라며 폭로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아데바요르는 아프리카 출신의 축구 스타라면 대부분 그렇듯 빈민촌에서 자란 후 유럽으로 건너가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현재 그가 받는 연봉은 800만 유로(약 99억 원)며, 순자산은 2500만 달러(약 31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러니 아데바요르가 집안의 가장 역할을 도맡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프리카 고향의 가족들은 아데바요르에게 집 한 채씩을 요구했으며, 매달 생활비까지 대달라는 뻔뻔함을 보이기도 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아데바요르의 어머니, 동생 로티미, 여동생 루시아, 누나 매기.
어머니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17세 때 축구선수로서 받은 첫 월급으로 어머니에게 집을 지어줬던 아데바요르는 그때만 해도 효도를 하는 것을 즐겁게 생각했었다. 어머니에게 포르셰를 사줬는가 하면, 모든 생활비도 기꺼이 댔다.
2008년 ‘올해의 아프리카 선수상’을 수상했을 때만 해도 무대 위에 어머니를 모시고 올라와 모든 것은 어머니 덕분이라며 감사함을 전하기도 했었다. 또한 런던에서 건강 검진을 받도록 일체의 병원비를 댔는가 하면, 쿠키 장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밑천도 제공했다. 아데바요르라는 이름과 사진을 이용해서 광고를 해도 좋다며 통 큰 배려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베풀었건만 돌아온 것은 ‘불효자’라는 비난뿐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받은 병원비로 제대로 치료를 받지도 않았으며,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아들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 후에도 손녀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지난해 11월에는 누나인 매기가 라디오 방송 ‘피스 FM’에 출연해 “아데바요르가 집에서 어머니를 내쫓았다. 어머니가 마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드리지도 않았으며, 1년 넘게 찾아뵙지도 않았다”라고 비난했다. 아들에게 버림받은 어머니가 비닐봉지, 자물쇠 등 잡동사니를 팔면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아데바요르는 이런 주장을 반박하면서 “나는 결코 어머니를 집에서 내쫓은 적이 없다. 어머니 스스로 집에서 나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가족들은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 제발 나를 내버려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나에게도 그간 동생으로서의 도리를 다했다는 것이 아데바요르의 주장이다. 2년 전 가나에서 매입한 120만 달러(약 13억 원)의 호화 저택에 누나가 공짜로 들어와 살게 했지만 이런 친절은 모두 헛된 것이었다. 몇 달 후 휴가차 집을 찾았던 아데바요르는 그 집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누나가 함께 살고 있던 이복동생 다니엘을 내쫓은 후 몰래 다른 사람에게 집을 임대한 상태였던 것.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져 묻는 아데바요르에게 누나는 되레 30분 동안 욕설만 퍼부었으며, 어머니에게도 전화를 걸자 역시 똑같은 반응만 돌아왔다.
25년째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는 형 콜라 역시 동생의 성공에 기대 흥청거리긴 마찬가지였다. 이미 조카들의 교육비를 대주고 있는 동생에게 장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밑천을 대달라고 요구했던 콜라는 결국 사업 자금을 모두 탕진한 채 현재 백수로 지내고 있는 상태다.
또한 아데바요르는 동생 피터가 병으로 사망하자 콜라에게 장례식에 참석하라며 비행기 티켓값을 보냈지만 결국 돈만 받은 채 장례식장에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콜라는 되레 피터가 죽은 것이 아데바요르 때문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이와 관련, <더선>에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팔아서 돈을 챙겼는가 하면, 당시 아데바요르가 속해 있던 레알 마드리드에도 동일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 동생을 곤궁에 빠트리기도 했다. 결국 아데바요르는 이 일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해고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도 아데바요르는 할 말이 많다고 했다. 그는 “피터의 상태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가나에서 최대한 빨리 토고로 자동차를 타고 달려갔다. 하지만 내가 도착하자 어머니는 동생을 만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돈만 주면 모든 걸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다”라고 주장했다. 아데바요르는 “사람들은 내가 동생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어떤 바보가 아무런 이유 없이 두 시간을 달려 토고로 가겠는가?”라며 반문했다. 또한 “피터가 살아있을 때에도 가능한 모든 친절을 베풀었다”며 “피터는 내 집에서 공짜로 살고 있었으며, 내가 사준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생활비도 전부 내가 대줬다”라고 말했다.
아데바요르의 페이스북(왼쪽)과 그가 자신의 오토바이에서 사진 포즈를 취하는 모습.
하지만 가족 가운데 가장 큰 골치덩어리는 동생 로티미였다. 축구 선수 가족을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린 동생을 프랑스 축구 아카데미에 보냈지만 사고만 치는 동생 때문에 결국 난처한 입장에 처하고 말았다. 배우라는 축구는 배우지 않고 동료 선수들의 휴대폰을 훔치다 쫓겨나고 말았던 것. 당시 로티미가 훔친 휴대폰은 무려 21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의 글을 본 로티미는 뻔뻔하게 아데바요르에게 전화를 걸어와 “정확히 21개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적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로티미는 아데바요르의 개인 소장품을 몰래 가져다 내다 파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토고에 있는 아데바요르의 집 열쇠를 갖고 있었던 로티미는 아무 때나 몰래 집에 들어와 물건들을 갖고 갔다. 음료수를 훔쳐 마시는 것은 애교에 불과했다. 심지어 아데바요르가 스타 선수들과 교환했던 셔츠를 가져다 내다 팔기도 했다.
2002년 아프리카네이션스컵(AFCON)에서 만난 카메룬의 마르크 비비앙 푀와 교환했던 셔츠를 잃어버린 건 아데바요르에게는 아직도 커다란 상처로 남아있다. 2003년 푀가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후 영영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로티미는 아데바요르가 챔피언스리그에서 교환한 지네딘 지단의 사인이 적힌 셔츠도 팔아버렸다. 보물과 다름없었던 이 셔츠에 대해 아데바요르는 “그날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한 바 있다.
모나코에서 뛸 때 동료 선수들의 축구화를 모아 두었던 가방 역시 로티미의 먹잇감이긴 마찬가지였다. 아데바요르가 아프리카 꿈나무들에게 기증하기 위해 가방 한가득 모아두었던 축구화를 로티미는 그렇게 전부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런가 하면 아데바요르가 어머니에게 선물했던 4만 5000유로(약 5600만 원) 상당의 까르띠에 목걸이는 단돈 800유로(약 99만 원)에 팔아 넘겼는가 하면, 아데바요르와 친분이 두터웠던 카메룬의 은퇴한 축구 선수인 자크 송고 아들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를 훔쳐와 형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당시 이 일로 인해 아데바요르는 송고와 사이가 멀어졌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아데바요르에게 로티미는 “깜박 잊고 그냥 가방에 넣어왔다”고 얼버무렸다. 이렇듯 물건을 훔칠 때마다 로티미는 뻔뻔했다. “나는 네 형제니까”라는 말로 무마하려 했으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앞세워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다.
가족들과의 이런 갈등을 참다못한 아데바요르는 최근 코트디부아르의 ‘살아있는 전설’인 디디에 드록바(첼시)를 찾아가 상담을 받기도 했다. 아데바요르는 “드록바가 나에게 해준 가장 큰 충고는 내가 즐겁고 내가 행복한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서 내 가족들에게 당당하게 일자리를 찾아 일을 하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망할 경우를 대비해서 아프리카 재단을 설립하라고도 충고했다. 행여 가족들이 유산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일 것을 대비해서다.
아데바요르는 “지금까지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숨겨 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통해 배웠으면 한다. 그리고 이 글은 결코 돈 때문이 아니란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아데바요르의 여동생인 루시아는 페이스북을 통해 “계속해서 그렇게 거짓말을 해봐라. 어머니에게 선물했다는 그 자동차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오빠가 다시 가져가지 않았냐. 누이들에게 집을 사줬다는 말은 전부 거짓말이다. 우리 가족들은 다시는 오빠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오빠는 오빠대로 살아라. 우리는 우리대로 살 테니까. 오직 알라신만이 오빠를 용서해줄 것”이라며 비난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아프리카 선수들 조기은퇴 이유 5 네 진짜 나이가 뭐니? 아프리카 축구 선수들 가운데는 아직 한창인 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돌연 은퇴를 선언해서 팬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20대의 팔팔한 나이에 축구화를 벗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도대체 아프리카 선수들은 어떤 이유에서 빨리 은퇴를 하는 걸까. 이에 대해 <골닷컴>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이유를 추측했다. 둘째, 극성스런 팬들의 압력 때문이다. 극성스럽기로 유명한 아프리카의 축구팬들은 종종 선수들의 은퇴를 강요하곤 한다. 국가대표의 경우는 특히 더 심하며, 심지어 선수들에게 폭력을 서슴지 않는 팬들도 있다. 때문에 많은 아프리카 선수들은 국가대표로 뛰기보다는 차라리 지역 클럽 축구팀에서 뛰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에 전 가나 축구대표 주장이었던 스테판 아피아는 “우리가 일찍 은퇴하는 것이 아니다. 은퇴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팬들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셋째, 애국심의 결여 때문이다. 아프리카 선수들 가운데 조국에 대한 애국심으로 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또한 축구를 정말 사랑해서 뛰는 경우도 적다. 때문에 이들은 선수들끼리 조금만 불화가 생겨도 미련 없이 국가대표를 은퇴해버리곤 한다. 넷째, 유럽에 대한 환멸과 조급함 때문이다. 아프리카 지역 클럽의 선수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을 경우 십중팔구는 “유럽 리그에서 뛰는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단순히 꿈만 꾸고 유럽으로 향했다가 환상이 깨져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아프리카를 떠나는 것이 최대 목표이기 때문에 불리한 조건에도 성급하게 유럽 구단과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작정 아프리카를 떠날 경우 불과 2~3주 만에 길거리로 쫓겨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섯째, 언론의 과장된 홍보 때문이다. 아프리카 언론은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절정에 도달하기도 전에 성급하게 호들갑을 떨면서 과대포장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축구 전문기자들은 지역 클럽에서 뛰는 선수들의 실력을 부풀려서 보도하는데 이는 선수들이 유럽의 스카우터 눈에 더 많이 띄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해서 몸값이 올라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성급히 뜰 경우 금세 잊힐 수 있다는 것이다. 설령 실력 있는 구단에 스카우트되더라도 얼마 못 가 실력이 드러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지역 리그를 전전하다 일찍 해고되거나 또는 변변치 않은 경기를 펼치다가 조기에 은퇴를 선언하는 경우가 많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