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야인’서 ‘공안의 화신’으로 부활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 사태로 온갖 설화를 겪던 이 전 총리가 낙마하면서 그 소문은 결국 현실이 됐다. 황 장관은 이제 ‘국무총리 후보자’로 인사청문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불과 몇 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그가 박근혜 정부에서 최장수 장관에 이어 국무총리 후보까지 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만큼 그는 법조계 내에선 거의 잊혀가던 인물이었다.
야권은 황교안 총리 후보자에 대해 ‘공안 총리’라고 비판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최종변론이 열린 지난해 11월 25일 청구인 측 대표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들어서는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그러다 박근혜 정부 초기 황 장관은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된다. 검찰에서 옷을 벗은 지 2년여가 지난 2013년 3월의 얘기다. 황 장관의 지명 사실이 알려진 후 검찰 내에선 “다시 보자, 잊힌 인물들”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그의 귀환은 예상 밖이었다. 같은 성균관대 출신인 정홍원 전 총리 추천설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의 인연설까지 그가 발탁된 배경을 놓고 다양한 설들이 흘러나왔다. 당시 검찰 고위 관계자는 “황 장관이 옷을 벗은 후 검찰 후배들보다는 검찰 출신 선배들과 자주 만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며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된 것도 그런 배경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결국 특정인과의 인연을 통해 현 정부 내각에 입성한 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그 이너서클이 황 장관을 선택했다는 게 법조계의 정설이다. 이에 대해 한 현직 검사장은 “당시 정 총리는 황 장관을 추천할 역량이 안 됐고, 김 전 실장 개인의 선택도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며 “정권을 야당에 넘겨주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하는 극우 성향의 박근혜 이너서클이 철저하게 한 목소리로 황 장관을 밀어 넣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검사장은 “그들의 지원으로 황 장관에게는 힘이 실렸고 그를 바탕으로 검찰 장악력을 높여갔다”며 “결국 황 장관은 그쪽 대변인 역할을 충실하게 해왔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황 장관은 박근혜 이너서클의 ‘나팔수’ 역할에 충실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4·29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황 장관은 국회에서 성완종 전 회장의 특별사면에 대해서도 수사해야 한다는 발언을 줄기차게 내놓았다. 당시 TV를 통해 이 장면을 보고 있던 다른 검사장은 “황 장관의 발언이 진짜 특별사면에 대해서도 수사해야 한다는 것으로 들리느냐”고 반문한 뒤, “내 귀에는 이번 선거에서 지면 끝장이니 보수표를 향해 결집하라는 메시지로 들린다”고 풀이했다. 이 검사장의 말대로 지난 재보선은 새누리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후 황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 슬쩍 한발을 빼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는 지난 12일 기자들과의 만찬에서 ‘성완종 특사 수사’를 지속적으로 거론한 이유와 관련해 “확보된 단서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니다”며 “성 전 회장이 참여정부에서 두 차례 특사를 받은 것은 이례적이어서, 혹시 (비위) 관련 제보가 나올지 누가 알겠느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단서가 없어서 수사 못한다고 했다가 결정적 제보가 나오면 (곤란해지니) 수사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대한 원론적 답변이었을 뿐 어떤 ‘의지’를 담은 발언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황 장관은 그런 다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 전 회장 특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있다.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면 지난 2013년에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처리 과정에서 총대를 메기도 했다. 일선 수사팀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 하자 황 장관이 사실상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면서 이를 막으려 했던 것이다. 당시 수사 및 지휘 라인에 있었던 한 인사는 “황 장관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에 정말 심각할 정도로 개입했다”며 “‘압수수색은 왜 하느냐’, ‘이런 증거를 가지고 왜 기소를 하느냐’ 등 하나하나 다 문제를 삼더니 결국엔 보름 동안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게 했다”고 전했다. 이후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 결정을 내렸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혼외자 의혹으로 낙마했고, ‘김기춘-황교안’ 라인을 중심으로 한 ‘검찰 길들이기’는 더욱 가속화 됐다.
# 씁쓸한 김진태와 우병우
황 장관의 승승장구를 바라보는 많은 이들 중 뒷맛이 가장 개운치가 않은 사람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우 수석은 황 장관이 취임 후 첫 번째로 단행한 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물을 먹고 옷을 벗었다. 겉으로 보기엔 박근혜 정부에서 한 배를 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검찰 안팎의 얘기다.
특히 이 전 총리가 그랬던 것처럼 황 장관이 총리 취임 이후 박 대통령의 뜻에 따라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를 걸 경우 두 사람의 상황은 더 많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당초 우 수석이 그린 사정의 밑그림은 성 전 회장이 자살로 심각한 타격을 입으면서 청와대 기획사정 책임론이 제기된 바 있다. 반면 앞으로 황 장관이 진두지휘하게 될 사정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인해 정치개혁이라는 명분을 갖게 된 만큼 탄력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이 경우 전반적으로 황 장관에게 유리한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황 장관이 검찰 일선에서 근무할 때 특징은 ‘공(功)은 내 공이고 과(過)는 네 과’라는 것이었다”며 “총리가 되더라도 그런 스타일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사정뿐 아니라 국정운영에 있어서도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본인의 살길을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검찰을 워낙 꽉 틀어쥐고 있었던 황 장관 때문에 그동안 적잖게 심기가 불편했던 김진태 검찰총장에겐 아주 잠깐이지만 숨통이 트일 수 있다. 물론 후임 법무부 장관이 누가 오느냐, 황 장관이 총리 취임 이후 검찰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유동적인 측면이 있긴 하다. 이에 대해 다른 검찰 관계자는 “그래도 당분간 총장에게 일말의 여지가 생긴 건 사실”이라며 “특히 황 장관 총리 지명에 대한 여론이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는 건 상황 변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황 장관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인사는 “황 장관은 지시할 때 명확하게 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해놓고는 마음에 안 들면 ‘아, 이건 내가 원하던 게 아닌데’라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며 “처음엔 저게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했었는데 결국 책임을 안 지려는 것이란 판단이 들고 난 후에는 참 모시기 힘든 캐릭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평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