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장’ 구원등판 기회 제 발로 찼다
안철수 전 대표(오른쪽)가 5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안철수의 한국경제 해법찾기’ 시리즈 중 하나인 경제성장을 위한 복지 투자 좌담회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안철수 전 새정치연합 대표는 대표직을 그만둔 지난 7월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줄였다. 언론에 등장하지 않던 안 전 대표는 당 대표 사퇴 후 약 2달 만인 지난 10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안 전 대표는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당권 도전을 천명하며 친노-비노 간의 갈등이 격해지자 합당정신이던 5 대 5 지분 지분원칙도 포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안 전 대표는 측근 중 유일한 의원이던 송호창 의원도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에서 사퇴시키는 강수를 뒀다.
안 전 대표가 당권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안 전 대표는 자신의 상임위인 보건복지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21일 ‘공정성장을 위한 남북경제협력’ 행사에 참석한 안 전 대표는 “그동안 사회적 약자와 노인·여성·장애인 등을 만나는 데 집중했다”며 “직접 만나면 책상에서는 모르는 정책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안 전 대표는 당 내 입지가 약해지면서 지방자치단체장과의 연대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와 연결되는 지자체장으로는 안 전 대표의 지지를 통해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 충남에서 외연을 넓혀가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꼽을 수 있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자신이 공천한 최측근이다.
안 전 대표는 대표직 사퇴 이후 경제 에 ‘올인’하며 정책에 강하다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안 전 대표가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지지율의 하락으로 꼽는 시각이 많다. 새정치연합 한 당직자는 “정치인이 국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기 하나씩은 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미래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지지율이거나, 공천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당권일 수 있다”며 “안 전 대표는 지지율이라는 가장 큰 무기가 사라졌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을 새로운 무기로 삼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신선함과 그에 따른 지지율 고공행진이 그의 성장동력이었지만 대선과 지난해 대표직 사퇴 파동을 거치면서 거품이 많이 빠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안 전 대표로서는 신 성장동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이 급락하기 시작한 원인을 그의 결단력 부족에서 꼽는 시각이 많았다. 안 전 대표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한 박자씩 늦으면서 중요할 때 치고 나가거나 통 큰 결정을 하지 못해 국민들이 답답해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안철수의 단점을 정치 감각의 부족에서 찾았다. 그는 “안 전 대표가 대한민국 정치 안의 안철수가 아니라 안철수 안의 정치를 하기 때문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어 정치 감각이 약하다”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이 같은 정치력 부재를 정책으로 중심점을 옮겨 지지율 반등의 기회로 삼으려고 했다. 민생정책을 강조하며 국민들에게 지지율을 얻겠다는 전략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안철수의 한국경제 해법찾기’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이 시리즈는 경제 정책과 관련해 대표적인 인사들을 초빙해 좌담을 나누는 방식의 행사다. 안 전 대표는 이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1회는 이근 서울대 교수와 ‘성장담론’, 2회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와 ‘공정분배’, 3회는 박영선 의원과 ‘공정경쟁’, 4회는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복지투자’, 지난 21일 개최됐던 5회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공정성장’ 등을 함께 이야기했다. 비노의 상징과 같은 안 전 대표는 이 행사를 통해 박영선 의원이나 박원순 시장과 같은 비노계로 분류되는 인사와 친목을 다지고, 친노임에도 문 대표와 색깔이 다른 안희정 지사 같은 인사와도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안 전 대표의 경제 정책 행보에 대해 당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대권주자로서 가야 할 길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정치인의 정책행보는 당연히 해야 할 기본 교과서와 같은 것이고 그 외 대권을 바라보는 큰 인물론 측면에서 볼 때는 각계의 전문가와 인재를 어떻게 하나로 묶어낼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접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삼국지의 유비가 천하의 인재를 끌어 모으는 것을 통치의 제1원칙으로 삼았듯이 안 전 대표도 그런 광폭행보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 전 대표 입장에서 보면 지난해부터 이어진 정치력 부재의 단점을 정책력 강화를 통해 메우려고 하고 있지만 그것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최근 문 대표의 혁신위원장 영입 제안을 거부한 것에 대해서도 그의 미숙한 정치력을 탓하는 지지자들도 있다. 한 새정치연합 의원실 보좌관은 “안 전 대표가 인재영입위원장을 거절한 것을 보고 초선의원은 초선의원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안 전 대표가 처음에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으면 주요 보직에 측근이나 우호적 인사를 넣을 수 있어 당내 입지를 강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앞서의 정치평론가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고 평론가는 “안 전 대표가 이번에 언론을 통해 구체적인 권한 등을 요구해 받아내면서 혁신위원장 직을 맡아 수행한다면 차기 총선은 혁신위원장 아래서 치러질 수도 있었다”며 “만약 이번 새정치연합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아 혁신을 잘 수행한다면 차기 대권후보 자리도 넘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니 일이 꼬이는 것이다. 당원이자 유력한 정치인이라면 당이 위기에 빠졌을 때 사심을 버리고 희생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좋은 머리로 좌고우면 하다 보니 오히려 자기 밥그릇을 못 챙기고 있다”
반면 안 전 대표의 측근으로 꼽혔던 한 인사는 “인재영입위원장 자리를 받는 것은 설득력이 전혀 없는 행동”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 인사는 “안 전 대표가 인재영입위원장으로 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라며 “사람을 데려오려면 (적당한 자리를 두고) 약속을 해야 하는데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자신도 당에서 박살이 났던 기억이 있는데다가 주변 측근도 전혀 못 챙겼는데 누구한테 오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의견 또한 설득력이 없다. 훌륭한 정치인은 자신의 입지와 위상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데려온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자신이 나서서 그 힘을 만들어줘야 책임 있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여의도에는 이제 더 이상 ‘안철수 열풍’은 불지 않는다. 이것은 안 전 대표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자신을 객관적인 상황으로 내려놓고 처음부터 새롭게 큰 그림을 그려나갈 기회가 온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 첫 번째 단추가 문 대표의 혁신위원장 제안이었다. 정치적 이해타산을 따지지 말고 ‘그렇게 어렵다면 내가 한번 나서보겠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해 덤볐다면 국민들의 시선도 새정치연합으로 다시 돌아왔을 것이다. 어차피 정치는 이벤트이니까.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