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4일 일산 청아공원 납골당에 이은주의 유골이 안치됐다. 영정 속 밝은 모습처럼 저 세상에선 늘 웃기만을…. 임준선 기자 | ||
‘이시계점’과 함께 군산 최고의 금은방이었던 ‘흥보당’이 바로 이은주 친가에서 운영했던 곳이다. 이로 인해 이은주의 학창시절은 매우 부유한 편이었다. 가정 형편이 넉넉했던 덕에 이은주는 어린 시절 국악과 한국 무용, 그리고 피아노까지 다양한 예능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이때부터 잠재된 끼를 마음껏 발산해왔다. 특히 장구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고. 그리고 이은주는 학창시절 매우 착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아버지 이씨의 친구들은 “순수하고 착한 아이였다. 인사성도 매우 좋아 어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곤 했다”고 전했다.
이은주의 넘치는 끼는 학창시절에도 두드러졌다. 군산 소재의 영광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은주는 선교합창부 부원이었다. 영광여고 선교합창부는 인근 지역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을 정도로 유명세를 얻고 있어 부원이 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고. 그의 유작이 된 <주홍글씨>에서 선보인 뛰어난 가창력은 이미 여고시절부터 빛을 발휘한 셈이다.
군산 고속버스 터미널 부근에서 만난 한 영광여고 학생은 “존경하던 학교 선배였는데 너무 가슴 아프다”면서 “평소 선생님들이 얘기를 자주 들려주시곤 했다. 연예인이 된 이후 직접 모교로 찾아와 선물하고 갔다는 높은음자리표 모양의 시계를 보여주시곤 했고 학창시절 공연하던 모습을 녹화한 비디오를 틀어주시기도 했다”고 얘기했다.
또한 이은주는 당구를 상당히 잘 치는 편이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당구장에서 종종 당구를 치곤 했는데, 웬만한 어른들이 당해내지 못할 만큼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였다고. 확인결과 부친 이씨는 대한당구연맹에 등재되어 있는 전북 지역 소속의 캐롬 분야 프로당구선수였다. 생전에 당구가 취미라고 밝히며 수준급의 실력을 자랑했던 이은주의 뒤에는 이런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다.
▲ 인터뷰 기사와 김정현과 찍은 사진. | ||
아버지가 당구장을 운영하던 당시 이은주는 서울로 올라가 연예계에 데뷔했고 <카이스트>로 유명세를 얻자 당구장 벽면에 이은주의 사진을 걸어 두기도 했다. 하지만 당구장 역시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현재는 운영을 중단한 상태.
또한 이은주가 연예계에서 성공하는 과정에는 어머니의 노력이 상당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군산 터미널 부근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집사람이 이은주 모친과 친분이 있는 사이”라며 “은주가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이후 어머니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며 최선을 다해 성공을 도왔다. 이번 일로 충격이 매우 클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