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19일 영화 <주홍글씨> 기자간담회 당시의 이은주. | ||
스물여섯. 여자로서도 여배우로서도 한창 나이에 있던 그가 왜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만 했을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그의 어깨에 놓인 짐들은 혼자만의 것이었기에 더욱 버거웠을 것이다. 돌이키기엔 너무 늦은 일. 이미 떠난 뒤에서야 조금씩 알려진 이은주의 외로웠던 고민들을 밀착 취재했다.
이은주의 죽음 직전의 심경이 담겨있는 것은 그가 남긴 마지막 유서다. 그는 유서를 통해 ‘경제적 문제’에 대해 간접적으로 암시했다. “돈이 다가 아니지만 돈 때문에 참 힘든 세상이야. 나도 돈이 싫어…”라는 유서 속 문구는 이은주가 돈 때문에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일반인들로서는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은주와 같은 스타급 연예인들은 영화나 CF출연으로 수억원대의 개런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은주는 얼마 전에도 광고에 연이어 출연하며 수억원의 개런티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14일 화장품 회사 ‘엔프라니’와 3억5천만원에 1년간 모델계약을 맺었으며, ‘롯데기공’의 아파트 브랜드 갤러리엄과도 6개월 단발에 1억2천만원의 광고출연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또한 지난해 10월부터 한 공기청정기 회사와 1년간 2억4천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모델 활동을 해오기도 했다. 여기에 작년에 출연한 영화 <주홍글씨>에서도 3억원대의 개런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최근 1년여 동안의 개런티만 어림잡아도 10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 2003년 청룡영화제에 문근영과 함께. | ||
여기에 연예인들의 실제적인 수입이 알려진 개런티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문제다. 이에 대해 이은주의 매니저 박성준 과장은 지난 2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개런티를 포함해 여러 가지 해명할 부분에 대해서는 소속사에서 정리되는 대로 공식발표를 할 것”이라면서 “(이은주의) 가족들과도 그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은주는 지난 96년 선경스마트 학생선발대회에서 은상을 차지하고, 97년 KBS <스타트>를 통해 연예계에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이후 9년 동안 수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면서 기대주로 성장했고, 지난해부터는 스타급의 연기자로 자리 잡았다. 특히 MBC <불새>와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 <주홍글씨>를 통해서는 인기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연예계 생활을 하며 큰 슬럼프와 공백기를 거치지 않고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이기에, 갑작스런 죽음은 더욱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더구나 우리 곁을 떠난 뒤에서야 이은주가 ‘우울증’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팬들의 충격은 더해졌다.
그런데 주변인들에 따르면 이은주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연예계 생활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이미 MBC <불새>에 출연할 당시부터 심리적으로 좋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것. 한 측근은 “당시 (이은주는) 드라마로 인해 큰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매우 불안해 보였다. 소속사에서도 그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한 이 측근은 “그때에도 이은주가 잠을 통 자지 못한다고 괴로워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드라마 <카이스트>에 함께 출연했던 정성화는 이은주가 우울증을 겪어왔던 것에 대해 “그게 멈추면 다행이지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더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지난 25일 이은주의 오빠 이광섭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은주는 연예인 같지 않은 아이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박스기사 참고). 이씨는 “(은주는) 돈 욕심도 없는 아이였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측근은 “혼자서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그렇게 가슴에 상처를 받아왔는지 미처 몰랐다”고 울먹이며 이은주에 대한 절절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 바다(왼쪽)와 오열하는 문근영을 설경구가 달래고 있다. | ||
이은주의 죽음에 대해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이은주와 마지막으로 연기호흡을 맞췄던 한석규다. 더구나 이은주의 자살 원인 중 하나가 영화 <주홍글씨>의 노출연기 때문이었다는 추측이 제기되자 <주홍글씨>의 제작사 LJ필름뿐 아니라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한석규 또한 매우 당황스러웠을 터.
그러나 이은주는 노출 연기 자체에 대한 배우로서의 거부감은 크지 않았다고 주변인들은 전했다. <주홍글씨> 개봉 당시의 인터뷰에서 이은주는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고 다만 베드신을 부각해서 보진 말아 달라”는 당부를 건네기도 했다. 이미 그는 영화 <오!수정>에서 신인으로서는 강도 높은 노출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또한 이은주는 평소 자신의 연기색깔에 대해 잔잔한 멜로물에 적합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영화 <안녕! UFO>나 <하늘정원>과 같은 장르가 자신에게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주변인들에게 해왔다는 것.
하지만 이미 이전부터 불안한 심리상태에 놓여 있었던 이은주는 <주홍글씨>를 편한 마음으로 촬영할 수는 없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석규는 장례식장을 찾았을 당시 곁에 있던 한 측근에게 “당시 은주가 우울해 보이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얘기를 건네기도 했다.
조성아 기자 zzanga@ilyo.co.kr
신민섭 기자 ksimany@ilyo.co.kr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