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통째 외우고 몸 다지며‘큰꿈’
▲ 지난 3월17일 ‘욘사마’로 우뚝 서 새 영화 <외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편집자주]
90년대까지만 해도 몇몇 스타만 손에 쥐고 있어도 ‘연예기자 해먹기’가 수월한 편이었다. 매체 수도 많지 않았고, 연예인과 연예기자의 관계 속에 서로 상부상조하는 풍조(?)가 있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영화배우 최민수와 최진실 그리고 한류스타로 우뚝 선 배용준이 당시 담당이었다. 최민수와 최진실은 기자와 친해졌을 땐 이미 대스타로 자리매김을 한 상태였고, 배용준은 신인에서 벗어나 주목을 끌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더욱 애정이 컸다. 또 연기력을 지니기 위해, 몸을 만들기 위해 그가 기울인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신인연기자들이 조언을 부탁할 경우 나는 ‘배용준의 피나는 노력’들을 들려주곤 할 정도다.
믿을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배용준은 자신이 출연하는 드라마의 대본을 통째로 외웠다. 다른 연기자들 같으면 자신의 대사를 사인펜으로 찍찍 긋고 그것만을 외우는 정도다. 그러나 배용준은 ‘완벽한 연기’를 위해 다른 사람의 대사까지 외워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그가 지니고 있던 대본을 본 적이 있는데,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얼마나 줄을 치며 외우고 또 외웠던지 너덜너덜해 대본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 배용준은 신인 시절 농담 삼아 기자에게 “몇 년 후엔 나 만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진은 막 주목받기 시작하던 시절 배용준의 앳된 모습. | ||
지난 97년 여름 취재가 아닌 단순 여행 차원에서 배용준과 함께 괌에서 4박5일간 머문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피해 일본인들이 주로 찾는 호텔에 묵었다. 한류스타로 자리잡은 지금으로선 어림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일반인들은 짐을 풀자마자 옷을 벗고 바다, 호텔의 풀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배용준은 휴양지에서조차 ‘몸’을 꼭꼭 숨겼다. 덕분에 일행은 바다도 아니고 호텔 안에 있는 수영장에서 딱 한 번 물속에 몸을 담글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날씨는 음산했다. 좋지 않은 날씨로 인해 관광객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장대비가 퍼붓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그런 날씨에 누가 수영을 하겠는가? 그러나 배용준은 ‘그때’를 골랐다.
자신의 벗은 몸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일본 여자 관광객 서너 명이 그의 다이빙 장면을 보다가 ‘우와!’하는 환호를 지르는 장면이 목격됐다. 한류스타 배용준의 첫 일본인 여자팬들이지 않았나싶다. 어쨌든 그 함성과 함께 그는 셔츠를 다시 입고 일행에게 호텔 안으로 들어가자는 눈짓을 했던 일이 기억난다.
▲ 지난 97년 여름 괌 여행 때 호텔 풀장에서 카메라에 잡힌 배용준. 뒷모습이라 아쉽지만 거의 유일한 수영복 사진이다. | ||
목발을 짚고 집을 나서는 배용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필자와 사진기자가 타고 있던 자동차로 걸어왔다. ‘아뿔싸!’를 외치고 싶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형! 딱 한 번이다. 사진 못 찍었으면 다시 나와 줄까?”
배용준과 필자의 관계였기에 가능했다는 식의 자화자찬은 하고 싶지 않다. 다른 취재진들도 배용준의 친절을 받았을 게 분명하다. 그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데 요즘엔 쉽지 않다.
신인시절 필자는 그에게 “제발, 형이 인터뷰하자고 해도 ‘형 바빠서 안 돼요’라고 뺄 정도로 성공했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를 건넸고, 그 역시 농담 삼아 “아마 몇 년 후엔 나 만나기 힘들 걸”이라고 했는데 말이 씨가 된 모양이다. 한류를 이끄는 스타로 그 약속을 지켜준 배용준에게 그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CBS 노컷뉴스/ETN 방송연예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