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에서 받은 ‘하늘의 계시’
▲ 신동진-노현희의 웨딩 사진. 스포츠투데이 | ||
타 언론사의 어떤 특종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당시 아주 제대로 ‘물’을 먹은 적이 있었다. 데스크로부터 “‘반까이 특종’ 찾기 전엔 회사에 들어올 생각도 마!”라는 살벌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터였다.
그러나 방송국을 돌아다니고, 연예인 혹은 매니저에게 전화를 수없이 걸어도 그런 기사는 나올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찾아간 ‘찜질방’이었다. 찜질방에 누워 ‘이 일을 때려칠까?’ ‘그냥 한 번 무리를 해봐’라는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할 무렵 갑자기 필자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소리가 옆에 있던 중년 아줌마들 사이에서 들렸다.
“이번에 딸 결혼시키는데 (아주 자랑스런 목소리로) 사위될 사람이 바로 아나운서야.”
‘앗!’ 필자의 입에서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돌아눕는 척하며 목침을 그쪽으로 향하게 했고 귀를 쫑긋 세웠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일행 중 한 명이 “누군데? 현희는 참 좋겠다”라며 부러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 머리 속에선 “제발, 빨리 아나운서 이름을 물어봐주세요”라는 간절한 멘트가 맴돌았다. 일행 중 또 한 사람이 “MBC 신동진 아나운서잖아! 잘 어울리지? 현희 엄마는 참 좋겠다. 이제서야 소원 풀었네”라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 저절로 벌떡 일어났다. 그러다 다시 잠자다 잠깐 허리를 피는 사람처럼 다시 누웠다. 그렇다면 궁금한 것은 ‘현희’가 도대체 누구냐 하는 문제만 남았다. 누굴까? 일반인일까? 연예인일까? 아니면 방송인? 내 머리 속은 혼란스러웠다.
하늘이 내린 특종인지 이 문제 역시 저절로 풀렸다. 옆에 있던 다른 아줌마가 “노씨 집안에 경사났네”라며 큰소리로 외쳤던 것이다. 바로 지금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신동진 아나운서와 탤런트 노현희였던 것이다.
곧바로 찜질방을 뛰쳐나와 데스크에 보고를 했다. 그러나 데스크로부터 처음 들은 말은 “야! 거짓말 하지마!”였다. 결국 이틀간 보충취재를 했다. 물론 두 사람은 전화 인터뷰에서 철저히 부인했다. 그렇지만 내가 찜질방에서 들은 이야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를 믿기로 하고 두 사람의 결혼임박 소식을 1면 특종기사로 작성했다.
▲ 취재전쟁이 벌어지던 심은하 집. | ||
물을 먹은 것도 우연이요, ‘반까이 특종’을 주문받은 것도 우연이요, 자포자기 상태에서 찜질방을 찾은 것도 정말 우연이었다. 더욱 그 넓은 찜질방 중 하필이면 노현희 어머니의 고등학교 동창모임 옆자리에 누운 것도 우연이었다. 한 마디로 하늘이 내린 특종이었다.
이 경우는 하늘이 도와 ‘반까이 특종’을 했지만 순전히 발품과 첨단기계를 이용해 ‘반까이 특종’을 한 경우도 있다. 아직도 두문불출하고 있는 영화배우 심은하에 관한 기사가 타 신문 1면을 장식했다. 결국 담당은 아니었지만 ‘반까이 담당’으로 지목되어 사진기자와 함께 심은하의 집 앞에서 ‘말뚝이 되라’는 주문을 받았다. 물론 타사 기자와 연예정보 프로그램 취재진 7~8명 역시 ‘반까이 기사’를 위해 심은하의 집 앞을 지켰다.
심은하의 집 앞만 지켰으면 아무 일이 없었으련만 몇몇 취재진들이 심은하의 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뒷동산에 올라가서 사진촬영을 하고 ENG 카메라를 돌렸다. 이를 눈치 챈 심은하의 가족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사설 경호업체까지 출동하는 험악한 사태로까지 번졌다.
경찰이 일일이 취재진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사설 경호업체 관계자 5~6명은 취재진들의 집 앞에서 물러나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다 취재진과 경찰, 사설업체 관계자, 심은하의 가족 사이에 실랑이가 벌여졌고 고성이 오갔다.
때마침 필자의 데스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야! 빨리 ‘반까이’ 내놓으란 말이야! 뭐 하는 거야. 그냥 기사로라도 써야지?”라는 소리였다. 나는 아무 대답 없이 휴대폰의 스피커 기능을 켰다. 그리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틈 사이에 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싸움은 스포츠신문의 마감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결국 뒷동산에서 촬영한 사진과 화면을 내보내지 않고, 취재진이 집 앞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필자는 스피커 기능을 켜놓은 걸 까맣게 잊고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들었다. 데스크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기사를 전화로 송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그제야 휴대폰을 켜놓은 사실을 알았다.
데스크에게 전화를 하자, 이전과는 달리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변한 데스크가 드물게 칭찬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냥 들어와. 자식. 너 진짜 머리 좋다. 좀 전에 휴대폰으로 상황 다 듣고 기사 이미 써서 넘겨놨으니 들어와라. 오늘 회식이나 하자”였다.
그때 마감시간에 쫓긴 타사 기자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휴대폰으로 기사를 송고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들에게 “뭐, 기사거리도 아닌데 그냥 가자”라면서 유유히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