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처럼 떠오른 ‘자민련의 추억’
▲ 염홍철 대전시장(왼쪽)과 심대평 충남도지사 | ||
특히 심 지사는 탈당과 함께 “충청 주민의 요구를 모아 행정수도 이전을 원할히 수행하겠다”며 ‘중부권 신당’의 창당 가능성을 언급해 파장을 더 키웠다. 이들의 탈당은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인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안’이 우여곡절끝에 여야합의로 통과된 지 채 열흘도 되지 않아 터져 나온 것이어서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탈당 보도 이후 각 당은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정치권이 새로운 빅뱅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10년 전 자민련이라는 충청발 돌발변수를 경험한 바 있는 정치판으로서는 악몽 아닌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두 단체장의 탈당과 ‘중부권 신당’ 창당이 갖고 올 파장과 향후 영향력을 분석했다.
1_정계개편 신호탄?
심 지사와 염 시장의 탈당이 충청권발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
정치권은 두 사람의 탈당보다는 신당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칫 10년 전 자민련이 그랬던 것처럼 충청표가 새로운 신당으로 결집될 경우 정계개편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일단 두 단체장의 탈당은 성공적인 출발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의 탈당에 이어 충청권 인사들의 동반 탈당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 조부영 전 국회부의장, 정진석·변웅전 전 의원과 이명수 전 충남도부지사가 탈당한 데 이어 충남도의회 의장을 포함한 8명의 도의원이 심 지사와 정치운명을 같이하겠다며 자민련 탈당을 선언했다. 임영호 전 대전 동구청장과 장일 전 자민련 부대변인도 탈당 대열에 동참했다.
그러나 아직은 중부권 신당의 성공이 예상된다고 단정하기에는 미흡한 부분들이 더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당장 참여가 기정사실화된 인사들의 면면이 새로운 정당 탄생을 뒷받침해주기에는 뭔가 부족한 모습이고 행정복합도시안이 여야 간에 이미 합의되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명분도 약해졌다는 이유에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주)폴앤폴의 조용휴 사장은 “정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를 추진해 갈 인물이 있어야 하는데 중부권 신당의 경우 쉽지 않다는 판단이 든다. 거명되는 사람들이 주로 자민련 인사들인데 이들은 이미 지역으로부터 일정한 평가를 받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과 같은 양당구도하에서 자민련 사람들이 갑자기 세를 불리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2_‘SS연합설’ 돈다
심 지사측은 이번 4·30 재보궐선거에서 일정한 성과를 낸 뒤 자민련을 흡수 통합한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우선은 충청지역에 기반한 미니정당으로 출발하되 내년 5·30 지방선거를 계기로 ‘중부권 대표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충청지역에 만연되어 있는 반열린우리당, 비한나라당 성향의 뉴라이트(신보수주의)진영과의 연합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고 최근 상생 협약을 맺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손학규 경기지사와의 협력여부도 거론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심 지사 주변에서 떠도는 이야기 가운데 신빙성이 있는 것이 ‘SS 연합설’ 또는 ‘SS 신당 창당설’이다. SS는 손학규 지사의 영문 첫글자 S와 심대평 지사의 머리글자 S를 합한 것으로 예전 DJP 연합과 유사한 개념.
이 연합설은 올해 초 손학규 경기도 지사가 충청남도와 상생협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협약은 애초 경기도와 충청도가 접경 지역이 많아 산업 간 분쟁이 많았던 것을 조율할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이면에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전라남도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은 데 자극을 받은 손 지사측이 심 지사에 먼저 제안을 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심대평 지사의 정치권 진입과 손 지사의 수도이전에 대한 전략적 지지가 맞아떨어짐으로써 정치적 연합설로까지 발전된 상태라고 한다. 당초 손 지사측이 이 협약을 먼저 제안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심 지사측이 적극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협약에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는 Y시장과 S씨가 지목되고 있다. 충청권 유력 지방자치단체장인 Y시장은 YS 정권 당시 현철씨가 연구소를 운영했을 때 손학규 지사와 같이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정치적 행보를 같이해온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번 SS 협약의 한 가교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손 지사의 최측근인 S씨는 충남 서천 출생으로 이 협약의 또 다른 루트로 알려진다.
충청도 정가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이에 대해 “이 이야기는 최근 자민련을 탈당한 변웅전 전 대변인도 내게 직접 얘기한 적이 있다. 변 전 대변인은 자신이 자민련을 탈당해 심대평 지사쪽으로 옮긴 것을 두고 JP의 본심이 그쪽에 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JP의 체어맨 자가용을 자신이 물려받았기 때문에 JP도 심 지사의 신당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 적이 있다. 이때 그는 예전의 DJP 연합처럼 자신이 직접 SS 연합 성사를 위해 열심히 뛸 것이라고 말했었다. 앞으로 변 전 대변인의 행보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SS 연합설’과 함께 심 지사 대망론도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7일 자민련을 탈당한 조부영 전 국회부의장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심 지사가 대권에 나설 가능성도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언급하고 “심 지사가 아주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심 지사의 뒤를 이어 지난 9일 자민련을 탈당한 정진석 전 의원도 “지역민의 열망을 대변한 결정이라고 본다. 충청지역도 대망을 꿈꿀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그는 또 “4·30 선거결과에 따라 신당 창당 시기는 빨라질 수 있다. 언론에서는 올해 말 창당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훨씬 빨라지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심 지사가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속에서 독자노선을 지켜내며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전국정당화에 실패할 경우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민주당과 자민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신당도 성공하기 힘들다”(박상돈 의원, 충남 천안을)는 시각부터 “자민련이 신장개업을 한다고 보면 된다. 지역정당은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일 뿐이다”(문석호 의원, 충남 서산·태안)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한편 염 시장은 심 지사와는 조금 다른 생각과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염 시장은 탈당 후 “자치단체장은 정치인이기보다는 행정가다. 제 자신을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면 탈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역주민들의 이익과 발전을 우선시해야 할 행정가이기 때문에 탈당을 결심했고, 앞으로 행정에만 올인할 생각”이라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심 지사가 추진하는 신당 참여에도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염 시장의 향후 행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한 충청지역 정치인은 “염 시장은 열린우리당과 손을 잡을 것이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차기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이다. 탈당은 열린우리당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일 뿐이다”고 지역민심을 전했다.
3_뒤통수 맞은 여야
염 시장의 탈당으로 노 대통령과 박 대표의 입지가 곤혹스러워졌다. 여야 모두 피튀는 싸움끝에 행정복합도시법을 통과시켰지만 결국 심 지사와 염 시장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된 것.
특히 여당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모두 승리하며 전국정당으로 성장하는 데 전초기지가 되었던 충청권을 상당부분 잃을지도 모르는 지경에 처했다. 지난 8일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은 중부권 신당을 포함해 실시한 지지도 조사에서 무려 7.4%의 지지율 하락을 나타냈다. 반면 한나라당은 2.7% 하락에 그쳤다. 이 결과에 대해 많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해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왔던 지역민심이 신당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민이 깊어가기는 야권도 마찬가지다. 박 대표가 당내의 극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행정도시법을 통과시켜준 이면에는 염 시장 등이 ‘행정도시법에 동의해 주지 않으면 탈당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은 것도 한몫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자치단체장의 탈당과 신당론이 고개를 들자 비당권파들은 ‘충청권의 민심을 얻기 위해 행정도시법을 통과시켰다면서 얻은 게 뭐냐’며 박 대표에 대한 공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여기에 염 시장의 열린우리당행 가능성과 한나라당 소속 충청권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들의 추가탈당 가능성도 부정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자 책임론에 자성론까지 뒤섞이며 당내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이 이번 소용돌이속에서 비교적 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계산법이 나오면서 은근히 이를 즐기는 기류도 감지된다.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은 “지지도면에서 열린우리당은 올라갈 대로 올라갔고 한나라당은 떨어질 만큼 다 떨어졌다. 복합도시문제도 한나라당이 주장한 것이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나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4_재보선이 분수령
2005년 봄을 강타하고 있는 ‘중부권 신당’의 성공여부는 오는 4월의 재·보궐 선거가 분수령이 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치포털 사이트 (주)e윈컴 김능구 대표는 “1995년 자민련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에는 ‘충청도 핫바지론’과 같은 돌발적이고 우연한 계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신당이 창당되고 지역 정계가 술렁이는 가운데 이런 식의 돌발 변수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만약 이런 요인들이 중첩된다면 신당은 생각보다 큰 파괴력을 보이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내비쳤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한상진 기자 sjin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