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뇌’ 원하면 스마트폰 꺼두세요~
한시라도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에 대한 자각으로 ‘디지털 디톡스’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뇌에 휴식을 주지 않으면 온종일 교감신경이 흥분상태로 있게 된다. 스마트폰으로 뉴스 댓글을 확인하거나 게임을 하는 것은 휴식이 아니다. 이때도 뇌는 계속 긴장을 하고 있다. 집중과 휴식을 반복해야할 뇌는 결국 집중력이 필요할 때 ‘뒷심’을 발휘하지 못한다. 흔히 스마트폰의 부작용으로 언급되는 집중력 감퇴 현상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다 보니 업무능력이나 효율이 저하되기도 한다.
어린아이들이 스마트폰에 몰입하는 것은 집중이 아닌 의존에 가깝다. 의존은 참을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뇌의 특정부분만 자극하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들은 감정조절 능력과 창의력, 판단력 등의 발달을 뒤처지게 한다. 이 때문에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라면 또래 아이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회성 결여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밸런스브레인 장원웅 연구소장은 “스마트폰 사용 등 일방적 자극만 주는 환경은 이러한 증상들의 원인이므로 이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기기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뇌 건강뿐 아니라 신체건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들여다보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목과 어깨 그리고 손목 등의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매일 1시간 이상씩 어깨와 허리를 구부린 자세로 있으면 목과 어깨 근육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디지털 디톡스는 이러한 부작용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본래 ‘디톡스’란 장 청소나 야채주스, 단식 등을 통해 몸에 축적된 독소와 노폐물을 배출하는 것을 뜻한다. 디지털 디톡스는 여기서 착안해 스마트폰, 컴퓨터, TV 등 디지털 기기 사용을 일정 시간 중단해 정신적 휴식을 취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SNS로 인한 관계과부하와 디지털 치매 등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위험과 극복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2~3년 전부터는 디지털 디톡스 운동도 시도되고 있다.
조화순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경제발전과 핵개발 등 기술발전에서 유발되는 문제들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과정을 거쳤듯 디지털 기기도 그러한 단계가 온 것”이라며 “디지털 디톡스 운동은 디지털 기기의 해악으로 벗어나야 한다는 차원에서 등장한 운동이다. 그 해악에는 관계과부하에서 오는 어려움, 쏟아지는 정보의 중요성을 판단하는데 따르는 어려움,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는 데서 오는 결정능력의 저하 등이 있다. 감시와 같은 집단적인 위험이 따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2~3년 전부터 디지털 디톡스 운동이 주목받으면서 디지털 기기를 반납하면 숙박비를 깎아주는 호텔이 등장하는가 하면, 전자제품을 반납하고 자연에서 함께 생활하는 캠프도 운영되고 있다. 정기적으로 디지털 기기와 단절해 살아보는 ‘디지털 디톡스 주’와 같은 캠페인도 등장했다. 하지만 하루에 100번도 넘게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디톡스를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은 과감히 디지털 기기의 전원을 꺼야한다. ‘급히 걸려올 업무상 전화’가 걱정된다면 주말과 같은 현실적인 시간에 디지털 디톡스를 실행해 보는 것이 좋다. 디지털 기기의 전원을 일체 꺼버리는 것이 어렵다면 잠자리에 스마트폰을 가져가지 않거나 불필요한 앱을 정리하고 알람을 꺼두는 등 ‘거리두기’부터 시작하자.
디지털 기기로 인해 피로감을 느끼는 뇌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꾸준한 운동을 하기 어렵다면 가벼운 산책도 좋다. 친구와 어려운 이야기를 하거나 아이를 꾸짖는 경우라도 앉아서 하는 것보다 걸으면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걸으면서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걸으면 세로토닌이 분비되는데 정서적 안정감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밸런스브레인 장원웅 연구소장은 “모든 의사들이 신체활동을 하라고 권한다. 신체활동이 다른 것보다 뇌에 큰 자극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처음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하면 불안하고 예민해지는 디지털 금단 증상도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금단 증상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요리나 여행, 독서, 명상 등 계획을 세워 실행하거나 취미활동을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디지털 디톡스 마을’로 알려진 강원도 홍천의 H 리조트 허진혁 과장은 “디지털 기기와 완전히 차단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산책을 한다든지 자신의 관심사를 찾아보는 것을 디지털 디톡스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 추천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불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을 정리하고 인터넷 검색은 정해진 시간 내에만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개인적인 차원의 시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디지털 환경의 역기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질 필요성도 있다. 프랑스의 경우 초·중·고등학생들에게 교내 휴대폰 사용을 금지시켰다. 독일과 핀란드는 어린이들에게 휴대폰 사용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교육 선진국들은 디지털 환경에 대처하는 교육법을 고민하고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IT강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는 디지털 역기능에 대한 논의와 대안 찾기에는 아직 소극적인 모습이다.
조화순 교수는 “초등학생에게 스마트폰을 어느 선까지 사용하게 할 것인지, PC방 등에 출입하게 하는 것이 맞는 건지에 관한 논의나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디지털 기기도 지나치게 사용하면 정신적 정치적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결국은 디지털 기기의 주인이 되는 것이 디지털 중독과 피로감을 벗어나는 방법이다. 디지털 기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고 본인이 어떻게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고 행동하고 있는지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디지털 디톡스 마을 홍천 H 리조트 방문기 “이것 저것 해도 시간 남아…하루가 정말 알차요” 디지털 디톡스 마을로 알려진 강원도 홍천 H 리조트 초입에 들어서자 차안에서 흘러나오던 라디오가 전파를 잡지 못해 지지직거리기기 시작했다. 초입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서야 모습을 보인 H 리조트로 들어서자 휴대폰에 ‘이곳은 서비스 지역이 아닙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와이파이는커녕 인터넷도 되지 않는 ‘디지털 디톡스 마을’ 강원도 홍천 H 리조트에서 산책을 하며 여가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H 리조트 객실 내에서는 TV나 에어컨,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찾아볼 수 없다. 긴급재난방송 시청을 위한 DMB 기능 외에는 와이파이는커녕 인터넷도 되지 않아 스마트폰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H 리조트 사람들은 이곳은 ‘불편하고 지루한 곳’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가벼운 운동과 자연식을 하면서 심신의 건강과 여유를 되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디지털 디톡스’ 여행의 명소가 됐다. 어머니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는 문 아무개 씨(여·57)는 “스마트폰 없는 생활에 적응하려면 하루 정도 걸릴 줄 알았지만 2시간가량 지나니 별로 생각이 나지 않아 스스로도 놀랐다”며 “트레킹 코스를 따라 산책도 하고 텃밭도 구경하고 요가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기도 한다. TV 시청과 스마트폰을 하지 않으니 하루 동안 이 많은 것을 하고도 시간이 남는다”라며 웃어보였다. H 리조트 허진혁 과장은 “물론 바쁜 일상과 빠른 업무처리에 익숙해진 분들 중에는 하루 늦게 들어오거나 일찍 퇴소하는 사람도 있다. 와이파이가 되는 고객센터 건물 근처에서 하루종일 게임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며 “하지만 대부분의 입소자들이 금방 주변의 자연경관에 녹아든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 디지털 기기를 반납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정을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H 리조트처럼 디지털 기기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는 디지털 디톡스 마을로 떠나는 여행이 주목받고 있다.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는 강원도 홍천군의 삼봉 휴양림과 경북 영양군의 검마산 휴양림을 TV가 없는 휴양림으로 시범 운영하고 있다. 학생이라면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유학을 떠날 수도 있다. 여성가족부에서는 1~7주 동안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국립청소년 인터넷 드림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 드림마을 캠프 관계자는 “이곳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수 없도록 돼있다. 대신 산책이나 명상, 대안활동이나 여가활동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학기 중 수업 일수로 인정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