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려달라고 맡긴 돈 야금야금 떼먹었나
현대증권 금융상품법인영업부 직원들이 2012년에서 2013년 정부기관 및 공기업, 일반기업의 랩어카운트 계좌에서 이자금 수억 원을 불법 인출해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현대증권 사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증권업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증권 금융상품법인영업(금법)1·2부 직원들은 지난 2012년 4월부터 2013년 2월까지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등 정부기관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 등 공기업, 일반기업 등의 랩어카운트 계좌를 관리하면서, 당초 이들 기관·회사와 약정한 금리 이상으로 발생한 수익(추가 발생 이자분) 2억~3억여 원을 몰래 인출해 횡령했다.
랩어카운트 상품은 실적배당형으로, 확정이자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수수료를 제하고는 해당 계좌에서 발생한 이익은 모두 고객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도 현대증권 금법1·2부 직원들은 정부기관 등의 몫인 이자금을 횡령한 것이다.
횡령이 이뤄진 곳은 국토해양부와 복권위원회 등 정부기관과 LH공사·한국동서발전·한국농어촌공사·서울메트로 등 공기업, 공공성이 강한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상선·대우인터내셔널·CJ오쇼핑 등 일반기업, KB국민카드·하나대투증권·한화생명·미래에셋증권 등 금융기관들이다.
이 기간 동안 불법으로 인출된 이자금은 국토해양부가 4800만여 원, LH공사는 7400여만 원, 수협중앙회 3400만 원 수준으로, 총 2억~3억여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기관·공기업 등 랩어카운트 계좌의 이자금은 기업별로 담당 영업직원이 직접 출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랩어카운트 계좌에서 돈을 출금하기 위해서는 기관이나 회사의 대리인이 직접 찾아와 전표를 쓰고 도장을 찍어야 한다. 이에 금법부 직원들은 이자금을 회계 상에 ‘적요fee’로 허위기재한 뒤 출금전표를 작성, 직접 결제업무부에 가서 출금한 것으로 전해진다. 적요fee는 매매사고 및 전산 상 자동공제한 수수료와 실제 수수료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비상시를 대비해 수작업 처리를 위한 회계용어다. 금법부 직원들은 이를 악용해 이자금을 수수료로 교묘히 바꿔 강제 출금했던 것이다.
특히 금법부 직원들의 정부기관 이자금 횡령 사실은 지난 2013년 3월쯤 현대증권 윤경은 사장 등 경영진들이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관계자에 따르면 “윤경은 사장 등 현대증권 경영진이 금법부 직원들의 정부기관 이자금 불법인출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후에는 그러한 횡령을 하지 말라는 지시만 내려왔을 뿐 횡령 자금은 모두 현대증권 이익으로 귀속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즉, 불법으로 인출된 이자금을 본래 주인인 정부기관과 공기업 등에 다시 돌려준 것이 아니라 현대증권 이익으로 남겨둔 것이다.
하지만 당시 현대증권 전략기획실에서 근무한 한 임원은 “그런 내용은 실무진이 다 알아서 하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횡령 금액은 지난 2012년 4월부터 2013년 2월까지 10여 개월 동안의 3억여 원이다. 하지만 앞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 기간뿐만 아니라 2012년 이전에도 정부기관 및 기업들의 랩어카운트 계좌에서 이자금 불법인출이 금법부 직원들을 통해 이뤄졌을 개연성이 높다”며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하면 횡령금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당시 현대증권 금법부의 부서장이었던 A 씨는 이러한 횡령 사실에 대해 “금융감독원의 감사를 다 받았다”며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고 부인했다. 또 다른 부서장이었던 B 씨 또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에 현대증권 운용에 대해 점검에 나선 금감원 담당자는 “내부적으로 현대증권에 대한 심사가 진행 중이라 횡령 사실에 대해 확인해주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금법부 직원들의 정부기관·공기업 랩어카운트 계좌 이자금 불법인출 횡령 혐의 의혹은 현재 검찰 수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정부기금방만운용점검TF는 지난 5월 6일 현대증권 전·현직 임직원이 수십조 원에 달하는 정부기금을 불법으로 자전거래하는 등 방만하게 운영해 수백억 원의 손실을 입혔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배임, 자본시장및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상 불법자전거래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수사의뢰를 했는데, 수사의뢰서에 이번 의혹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TF의 총괄간사인 김용남 의원은 “현재 이 사건은 대검찰청에서 서울남부지검에 배당됐다”고 전했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담당부서에서도 횡령 혐의에 대해 따로 들은 바가 없다”며 “금감원에서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검찰에 수사의뢰가 들어간 사안이라 따라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검찰 조사를 통해 금법부 직원들의 이자금 불법인출 횡령 혐의 의혹 등 현대증권의 정부기금 방만 운영이 확인된다면, 현대증권은 물론 증권업계 전반에 적잖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