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적은 동지 ‘재야파 살려라’
▲ (왼쪽부터) 김두관, 유시민, 장영달 | ||
경선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회자되던 ‘문희상 대세론’이 참정연 소속 김두관·유시민 후보의 ‘대약진’으로 흔들리는 조짐이 뚜렷해지면서다. 아직 각종 여론조사 결과 문희상 후보가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긴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2~3위를 달리고 있는 김-유 후보와의 격차가 좁아져 당내에서는 4월2일 전당대회 당일 ‘이변’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문 후보가 20일 부산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향후 선거 유세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가 불투명해지면서 막판 선거 판도는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된 상황이다.
두 사람의 예상치 못한 선전은 막판 경선전의 양상도 바꿔놓고 있다.
당내에서 개혁노선에 가장 투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참정연에 ‘알레르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실용그룹에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는가 하면, 참정연 내에서는 당 의장직 ‘쟁취’를 위해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김-유 후보간 단일화 논의가 다시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초반 59년 돼지띠 동갑내기(46세)인 김-유 후보의 강세를 한때 지나가는 ‘계절풍’ 정도로 여겼던 다른 후보 진영은 이제는 둘의 맹위를 경선 전반을 관통하는 주요 흐름으로 인정하고 있다. 예비경선(3월10일) 이후 8명 후보별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예외없이’ 두 사람이 2~3위권에 차지하며 친노그룹 좌장인 문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송영길 후보측에서 16~17일 이틀간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대의원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문희상(38%)-김두관(28%)-유시민(27%)의 순을 나타냈고, 장영달 후보측 조사(14~15일)에서도 문희상(17.1%)-김두관(14.8%)-유시민(13.2%)를 기록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상위 순위에 랭크된 배경과 향후 지속력을 놓고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우선 대세론을 구가하다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문 후보측은 “조사를 하면 참정연 지지자들은 모두 응답하고 다른 대의원들은 절반도 대답을 않는다”며 조사 결과의 의미를 가급적 축소하려는 기류다.
외형적으로 나타난 결과는 여론조사에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의 차이에서 비롯됐을 뿐이며, 실제로 투표에 들어가면 조사과정에서 ‘숨어있던’ 표심이 들어나면서 결국 ‘문희상 대세론’이 현실화될 것이란 얘기다.
참정연측도 배경과 속셈은 다르지만 문 후보측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김-유 후보의 강세가 계속되면서 다른 후보 진영의 견제 강도가 심해지자 일종의 ‘몸조심’에 들어간 것이다. 참정연측은 “여론조사 결과는 김-유 후보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지지자들이 적극적으로 조사에 응답하면서 두 후보가 두각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실제로 각 조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당 의장 후보감 1~2순위를 묻는 질문에 일정한 경향성을 보이지 않아 표가 흩어지는 반면, 두 사람을 지지하는 응답자들은 1~2순위에 둘을 집중적으로 꼽는 흐름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반면 조사결과를 기간당원제 도입 등으로 달라진 당의 체질변화를 반영하는 객관적 지표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않다. 실용성향의 한 당권 후보측은 “여론조사는 일부 편차가 있다손 쳐도 큰 흐름에선 객관적인 상황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김-유 후보의 선전은 계파 보스, 지구당 위원장이 관리-동원하던 ‘반쪽짜리’ 유권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던 이전 당내 경선과 달리 이번엔 자기 돈으로 당비를 내가며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진성’ 유권자들의 선택이 판도를 좌우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의 약진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전대 당일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참정연 두 후보의 ‘초강세’로 경선전의 판도가 바뀌자 사정이 다급해진 것은 실용그룹이다. 문희상-염동연-송영길 후보를 차기 지도부에 진입시키기 위해 패키지형 선거전략을 ‘반 공개적으로’ 구사했던 입장에서 노선상 대척점에 서 있는 김-유 후보의 활약은 위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실용그룹 내에선 “김-유 후보가 모두 당 지도부 입성에 성공할 경우 참정연의 ‘열린우리당 접수’가 이뤄지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를 공공연히 표명하고 있다.
상황 반전을 위한 실용그룹의 대응은 크게 두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참정연 두 후보 중 영남권 단일주자인 김 후보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유 의원의 지도부 진입은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집중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송영길 후보가 유 후보를 타깃으로 “분열적 개혁론자” “완장 차고 하는 개혁은 경계해야 한다. 국민과 당에 상처를 주는 개혁은 당의 발전을 저해한다”며 맹공을 퍼붓고 나섰고, 문 후보도 “유 후보는 안된다”고 ‘유시민 불가론’을 펴고 나섰다. 염동연 후보 역시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수구나 반개혁으로 몰아가는 위험한 선동정치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또 친노 성향 조직인 국민참여연대의 핵심인물인 정청래 의원도 “유 후보측이 네거티브 선거전략을 쓰고 있는 데 비애를 금할 수 없다”며 구체적으로 유 후보의 흠결에 대해 공방을 벌일 용의가 있다는 주장을 펴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또 친 정동영계 핵심인 김현미 의원도 “유 후보를 지지하는 의원은 다섯 명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밝혀 실용그룹의 ‘유시민 때리기’에 가세했다.
실용그룹의 또다른 카드는 경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재야파의 장영달 후보를 측면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장 후보가 노선상으론 김-유 후보와 같이 개혁성향이긴 하지만 4선 중진인 만큼 참정연측의 급진개혁과는 차별성을 가질 것이란 기대하에 ‘적과의 동침’도 불사하고 나선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미 경선 득표와 관계없이 당선이 확정된 한명숙 후보 지원에 할당된 표를 장 후보쪽으로 돌리고, 예비경선에서 탈락한 후 실용그룹과 완전히 등을 돌린 신기남 의원측과 접촉해 그를 지지하는 대의원들을 장 후보쪽으로 쏠리도록 하는 등의 방안이 추진중이거나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의 견제가 심해진 것과 함께 참정연 내에서도 막판 선거전략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김-유 후보가 각개약진해 나란히 지도부에 들어가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냐, 아니면 단일화를 통해 ‘문희상 대세론’을 꺾고 당 의장직을 쟁취하느냐 중 ‘양자택일’로 모아진다.
각개약진론을 펴는 측은 ‘실리’의 견지에서 김-유 후보의 동시 완주를 펴고 있다. 아직은 참정연 내 다수 의견이다. 문태룡 중앙위원은 참정연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환상의 복식조인 김·유 후보는 지지기반이 달라 끌어주고 밀어주며 골인점까지 끝까지 달려야 한다. 두 후보를 서로 지지하는 교차표는 20%에서 지금 40%대까지 높아졌는데 이를 60%까지 끌어 올린다면 1~2위를 동시에 차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참정연 소속 한 의원도 “굳이 단일화해서 궂은 일을 맞는 당 의장을 차지하려 할 것이 아니라 김-유 후보가 동시에 지도부에 포진하는 것이 당내 논의구조를 개혁화하는 차원에서 바림직하다”는 입장을 폈다.
반면 단일화론자들은 당 의장의 막중한 권한과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들은 응집력이 높은 김-유 후보 지지층이 한 방향으로 모아질 경우 단순 지지율 면에서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문 후보를 제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인 만큼 단일화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차기 당 의장은 임기 2년 동안 2006년 지방선거-2007년 대선 구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며 “문 후보 등 실용그룹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것도 막판에 김-유 후보가 단일화하는 경우”라고 강조하고 있다.
단일화론자들은 그러나 막상 누구로 단일화할 것이며, 기준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선 이렇다할 카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편에선 예비경선 전 김-유 후보간 단일화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갔던 만큼, “재론하는 것 자체가 득표력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다”는 반론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에선 영남권에서 확실한 득표기반을 구축한 김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품’이란 평가가 있는 유 후보가 막판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