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여성은 ‘노출’을 좋아해?
▲ 지난달 20일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의 김혜수, 김정은, 김태희. 과감한 노출이 돋보이는 드레스를 입어 눈길을 모았다. 사진제공=일간스포츠 | ||
지난 4월 종영한 SBS 드라마 <홍콩 익스프레스>에 등장한 여배우 3인방의 캐릭터는 노출 정도에 따라 구분이 가능하다. 우선 여자 주인공인 ‘정연’ 역할의 송윤아의 경우 ‘순수한 사랑의 대상’이라는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패션 컨셉트에서 ‘노출’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지워냈다. ‘강혁’(차인표 분)이 강제로 상의를 벗기는 장면에서 단 한 차례 노출이 등장하나 이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설정에 가깝다.
반면 ‘은하’ 역할의 정애연이나 ‘마리’ 역할의 김효진은 상당한 노출을 선보인다. 정애연의 경우 2회분에서 비키니 수영복까지 입을 정도로 적극적인 노출을 통해 화류계 출신의 캐릭터를 강조한다. 또한 김효진은 ‘안하무인의 재벌 막내딸’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클리비지룩 계열의 의상을 자주 입었다.
지난 5월 종영한 <신입사원>에서는 클리비지룩이 세련미와 촌티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활용되며 이미지 변신을 위한 도구로 쓰인다. 대립구도에 놓인 ‘미옥’(한가인 분)과 ‘현아’(이소연 분)의 초반 설정은 ‘촌티 나는 여직원’과 ‘세련된 재벌 2세’. 이를 표현하기 위해 한가인은 두꺼운 뿔테에 노출과는 무관한 의상을 주로 입은 데 반해 이소연은 클리비지룩 계열의 노출 의상으로 당당함을 드러낸다.
이렇게 의상 컨셉트에서부터 밀리던 미옥의 ‘변신’ 역시 노출을 통해 그려진다. 본격적인 반전이 시작된 9회분에서 한가인은 도발적인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다. 가슴 부분이 상당히 파인 파격적인 원피스는 그 자체로 ‘미옥의 변신’을 대변한다. 이후 두 여배우는 경쟁이라도 하는 듯 다양한 클리비지룩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최근 종영한 <그린로즈> 역시 마찬가지. <그린로즈>에 등장하는 주요 여성 캐릭터인 ‘수아’(이다해 분)와 ‘유란’(김서형 분)의 캐릭터 변화 역시 노출을 통해 표현된다. 초반부에는 별다른 노출을 선보이지 않던 두 여배우의 의상 콘셉트는 중반부 이후 크게 달라진다.
▲ 정애연(왼쪽), 드라마 <신입사원>에서 섹시한 모습을 드러낸 한가인. | ||
‘원 나잇 스탠드’라는 사랑방정식을 지닌 젊은이들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낸 MBC 드라마 <원더풀 라이프>에서도 흡사한 ‘노출 코드’를 읽을 수 있다. ‘채영’ 역할의 한은정은 첫 회에서 목욕신을 통해 상반신 일부를 노출시켰고, 여자주인공 ‘세진’ 역할의 유진 역시 클리비지룩 계열의 민소매 상의를 입어 볼륨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2회 이후 한동안 두 여배우의 의상에서 노출이란 단어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여대생의 차분한 캐릭터를 그려내기 위해서다.
두 여배우의 의상 콘셉트가 다시 달라진 것은 중반부 이후. 대학에서 사회로 진출한 뒤 두 여배우는 모두 클리비지룩 계열 의상을 입기 시작한다. 클리비지룩을 활용한 노출을 통해 배우의 연령대와 사회적 위치를 표현하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반면 <부모님 전상서>나 <불량주부>의 경우처럼 가정 드라마에서는 노출 성향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부모님 전상서>의 경우 김희애가 클리비지룩이라 부르기에는 다소 파인 정도가 덜한 브이넥 상의를 가끔 입었던 게 전부. 다만 허리를 숙이는 장면에서 가슴골이 조금씩 드러나곤 했지만 의도적인 노출이라 보기에는 무리.
<불량주부> 역시 마찬가지. 가끔 유민이 클리비지룩 계열의 의상을 선보이긴 했지만 가정주부의 한계를 분명히 했다. 역시 허리를 숙이는 장면에서 유민의 가슴골이 드러난 장면이 몇 차례 등장했지만 이 역시 김희애와 같은 경우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클리비지룩을 이용한 노출 패션이 자주 브라운관에 등장하지만 노출 논란이 벌어진 경우는 드물다. 반면 지난해 노출 패션의 주요 코드였던 ‘란제리 룩’의 경우 <풀하우스>의 한은정과 <황태자의 첫사랑>의 이제니를 통해 브라운관에 소개되면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패션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클리비지룩과 란제리룩의 차이가 아닌 정도의 차이”라면서 “사실상 가슴의 상당 부분이 드러나는 클리비지룩이 더 파격적인 컨셉트라 볼 수 있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클리비지룩은 모두 얌전한 수준”이라고 얘기한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클리비지룩과 브라운관 속 클리비지룩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노출에 따른 부담이 비교적 덜한 시상식 의상은 노출 수위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여자 연예인이 클리비지룩 계열의 파격적인 드레스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 역시 전세계적인 흐름이라고. 최근에 열린 제77회 아카데미영화제에선 나탈리 포트먼이 클리비지룩 계열의 드레스를 입고 나와 뭇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