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때려 ‘무대’까지 흔들기
국회법 개정안이 공무원연금 개혁과 연계된 것을 두고 청와대가 ‘유승민 사퇴론’까지 내걸고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5월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유승민 원내대표,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왼쪽부터).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PK(부산·경남)의 한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거침없이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시행령을 만드는 행정입법안이 상위법을 위반하면 국회가 행정입법안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공무원연금 개혁과 연계된 것을 두고 청와대가 ‘유승민 사퇴론’까지 내걸고 강하게 대응하는 것에 ‘모종의 술수’가 있다고 이야기하면서다. 이 중진 의원은 이어 “유 원내대표는 ‘국회 중심의 정치’를 내걸어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그것도 청와대와 친박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이주영 의원을 20표차로 깼다. 더는 ‘청와대 거수기’나 ‘청와대 연락소’ 내지는 ‘청와대 파출소’ 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왔는데 그 말대로 하고 있다”며 “백번 곱씹어 봐도 이번 문제는 유 원내대표가 박수 받을 일”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의 국회법 강경대응에 대해 여당인 새누리당의 분위기는 다소 격앙돼 있었다. 한 PK 중진 의원의 말처럼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수 받을 일인데 청와대가 저토록 흥분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다른 의원들에게서도 감지된다.
TK(대구·경북)의 한 의원은 “그동안 수세에 몰렸던 친박이 김무성-유승민 위주의 차기 대권 구도 판을 흔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신 권력투쟁”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스크랩한 듯한 신문 보도와 사설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 학살, 2012년 19대에선 친이 학살, 반복되는 학살의 역사 속에 2016년 20대에선 누가 불이익을 당할지 불 보듯 뻔한 것 아니냐. 일각의 보도대로 청와대와 친박계로선 눈엣가시 같은 김무성, 유승민을 쳐내야 하는데 김무성 쪽은 워낙 세다 보니 아직 덜 여문 유승민을 타깃으로 삼은 것으로 본다”며 “그런데 무기를 잘못 들었다. 적어도 국민연금 연계라면 반대하는 국민이라도 있겠지만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당내 율사 출신 10명 중 8명은 강제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부는 3권분립 침해가 아니라 건강한 3권분립의 한 요건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친박이 힘을 모으려면 밀어주는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엔 오히려 이탈 세력이 늘고 있다는 얘기였다.
옆집 싸움을 불구경하던 박지원 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조차도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썼을 정도로 여권의 집안싸움은 노골적이다.
“기 죽어가던 친박이 청와대를 등에 업고 비박과 총선 헤게모니 잡기 권력투쟁?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 소신을 지키길 성원한다. 수출 5개월 연속 감소, 메르스 공포, 가뭄으로 농민은 타고 중국은 사드? 이 와중에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를 협박하고 있다. 모법을 일탈한 시행령은 위헌.”
기자는 국회법 파동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뒷얘기와 설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하나는 청와대와 정부가 현 새누리당 지도부의 ‘미스샷’을 일부러 노린 것 아니냐는 공작설이다. 지난 지도부에서 몸담았던 여권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이완구 원내대표 때에는 당 지도부가 청와대와 30~40분씩 통화하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작전을 짰다. 이건 분명한 팩트다. 그런데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 본회의가 열린 새벽, 청와대 관계자들이 과연 본회의장 근처에 한 명이라도 있었나. 이건 ‘너희 마음대로 한번 해봐라’는 의미 아니겠나. 국회법 개정안이 아니라 그 무엇을 연계했더라도 결과는 같았다고 본다. 그렇게 여당 원내지도부와 가까웠던 청와대와 정부가 이번엔 완전히 방치해놓고서는 잘못했다고 뺨 때리는 격이다.”
김무성-유승민 체제를 흔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갈등 덫을 만들어놓았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친박의 ‘유승민 몰아내기’ 의혹은 권력투쟁의 성격이 짙다. 여권의 한 정책통은 “친박은 이런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지난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누리당 내 친박계 의원들이 ‘국회법 개정안 위헌논란’을 주제로 한 제정부 법제처장의 강의를 듣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6월 임시국회를 파행으로 이끌어 유승민 리더십에 상처를 내고 사퇴를 이끈다. 팔 하나를 잃은 김무성도 흔들어 당을 어떻게든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시킨 뒤 서청원이든, 최경환이든 내세워 당내 권력지도를 다시 그린다. 이후 청와대와 손발 맞춰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한다.”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당내 일부 의원들은 ‘왜 박근혜 대통령은 격앙됐나’를 두고 그 이유 찾기에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처리된 다음날 아침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실상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는 모습에서 ‘오버’하는 듯한 목소리가 전해졌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관료 출신의 새누리당 한 초선 의원은 “○○○수석, △△△수석과 당내에선 ◇◇◇의원이 대통령을 격앙시켰다는 일부 언론사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들이 ‘위헌 소지가 있음에도 정부의 발목을 잡으려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들였다’는 식의 보고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결국 이들은 ‘K-Y(김무성-유승민)라인’ 밑으로는 결코 들어갈 수 없다고 판단하고 완전히 적보다 더한 적으로 돌아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번 국회법 파동으로 당내 권력지형은 말 그대로 선명해졌다. 하나는 친박계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친이계와 가까운 한 정치권 인사는 이를 두고 “2일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 참석한 30여 명이 친박계 숫자고 이중 마지막까지 남은 5명은 묵직한 친박”이라며 “슬금슬금 떠난 스물 몇 의원은 결국 친박이냐 더는 아니냐를 두고 엄청 고민하고 있다고 본다”고 귀띔했다. 한때 120여 명까지 이르렀던 친박의 숫자가 대폭 줄었다는 의미다.
하나는 김무성-유승민 동맹이 박 대통령도 끊을 수 없을 만큼 끈끈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이를 “무대와 유대는 한배를 탄 것”이라며 “일각에선 김 대표가 한 발 뺐네, 유승민이 아닌 청와대를 택했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정치쇄신과 공천개혁만이 내년 총선 승리의 버팀목이 될 것을 아는 김 대표는 싫든 좋든 유 원내대표와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둘은 순망치한이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측은 국회법 개정안 정국에서 “당의 뜻이 청와대와 다를 수 없다”고 밝히면서 일부 오해를 산 것을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모습이었다.
정치권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되면 여권이 완전히 분열될 것으로 본다. 역대 정권이 그랬듯 대통령의 탈당 시나리오까지 등장하고 있다. 거부권 재의결은 무기명 투표여서 여당 의원들이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다. 기권 등으로 일부 이탈표가 있겠지만 거부권이 성사되지 않으면 레임덕을 불러올 수 있다. 성사될 경우엔 지도부 사퇴론이 등장한다. 하지만 강제적 당론이 없는 의원총회를 통해 민주적 절차를 거쳤고,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가결된 만큼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된 사안을 대통령이 국회로 돌려보내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것이 여당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게다가 거부권을 행사한 뒤 미국을 순방할 계획인 박 대통령이 좋은 결과물을 가져오지 못할 경우에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숨죽이고 있는 ‘유승민 키즈’ 사이에서도 “더는 참을 수 없다”며 대책 마련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이번 신권력투쟁의 결말에 따라 내년 총선의 공천지형도 대폭 변화될 전망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