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차기 넘보지마”…견제구 슝슝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자 ‘포스트 문재인’을 노리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2013년 4월 12일 안 지사(왼쪽)와 박 시장이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비즈니스타워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을 선출하기 위한 예비경선장에서 얘기를 나누고 모습. 연합뉴스
특히 또 다른 차기 주자인 안철수 새정치연합 전 공동대표가 ‘특유의 타이밍’ 정치를 통해 2017년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면서 ‘문재인 대체재’를 노리는 이들의 발걸음도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실제 안 전 대표는 당 워크숍 첫날인 지난 2일 경기도 양평 가나안농장학교 대신 참여한 TBS 라디오 <퇴근길 이철희입니다>에서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재차 묻자 “그럼요”라고 밝혔다.
안철수 전 대표의 ‘뜬금없는’ 대권도전 공개 선언이 새정치연합의 잠룡들까지 들썩이게 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총성 없는 ‘별들의 전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안 전 대표의 강점으로 △차기 대선 출마의 불확실성 제거 △친노(친노무현)계 대척점에 있는 비노(비노무현)계의 유일한 대중 정치인 등을 꼽으며 ‘포스트 문재인’ 싸움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덧붙였다.
사실 박 시장과 안 지사는 친노 지지층을 온전히 안아야 ‘대권 급행열차’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박 시장은 범 친노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2012년 민주통합당 출범 과정에서 ‘혁신과통합’ 등 시민사회그룹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원조 친노’인 안 지사는 ‘노무현→문재인’의 바통을 이어받을 친노 후계자다. 다만 안 지사는 지난해 6·4 지방선거 재선을 계기로 독자적인 계보를 형성하며 친노 비주류의 입지를 다지는 중이다.
문재인 대표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5월 넷째 주 정례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에 따르면,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박 시장(13.4%)과 안 지사(4.4%)는 각각 3위와 6위를 기록했다. 김무성 새누리당(24.2%)·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18.3%)는 1∼2위, 안철수 전 대표(7.7%)와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6.8%)은 4∼5위였다. 야권주자에 한정해보면, 박 시장과 안 지사는 2번째와 4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문 대표가 지난주 대비 1.2%포인트 하락하는 사이 박 시장은 1.2%포인트 하락, 안 지사는 0.8%포인트 상승했다는 점이다. 안 지사가 친노 비주류 입지를 굳히면서 ‘문재인 대체재’로 자리매김 중인 데 반해, 박 시장은 ‘문재인 보완재’ 역할에 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지율이 가장 많이 오른 야권 인사는 안 전 대표로, 1.4%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문 대표와 시소관계에 따른 권력구도 때문으로 풀이된다.
범 친노로 분류되는 정세균계 관계자는 “2016년 총선 등을 거치면서 독자 세력화를 꾀하려는 ‘박원순·안희정’의 권력다툼이 불붙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시장과 안 지사가 라이벌의식을 느끼며 서로 견제하고 있다는 설이 지난 2월 여의도 정가에 파다하게 퍼진 바 있다. 2·8 전국대의원대회를 마친 지 보름을 넘긴 2월 22일, 문 대표와 박 시장은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오찬 회동을 했다. 이들의 만남은 지난해 4월 한양도성 동반 산행 이후 약 10개월 만이다. 이 자리에선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 확대 방안 △지방재정 문제 등 국정현안뿐 아니라 차기 대권구도에 관한 얘기도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은 안 지사를 두고 엇갈린 견해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표는 당시 안 지사를 놓고 ‘차기 후보감’이라고 추켜세운 반면, 박 시장은 ‘차기보다는 차차기감’이라고 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이는 박 시장이 ‘친노 후계자’ 이미지가 오롯이 안 지사에게 쏠리는 것을 견제하고 있다는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후로 범야권 지지층의 지지를 한몸에 받으며 ‘혜성같이’ 등장한 박 시장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허약한 ‘당내 조직력’이다. 4년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5% 지지율에 머무른 박 시장은 안 전 대표와의 감동의 단일화를 통해 당시 ‘제2의 박근혜’로 불린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단숨에 꺾었다.
약 2년 반의 재임기간을 거친 박 시장은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까지 무너뜨렸다. 차기 대권의 ‘예약석’인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 이후 원조 친노계인 한명숙 새정치연합 의원이 아끼는 임종석 전 의원을 정무부시장으로 임명했다. 사실상 친노계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낸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도 친노계와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486그룹 등이 대거 박원순 후보를 지원, 사실상 범주류를 우군으로 만들었다. 민주통합당 창당 당시 외곽 그룹이었던 ‘혁신과통합’의 김기식·최민희 의원 등도 박 후보를 지원했다. 비노계의 비토 정서도 적었다. 친노와 비노 등 범계파의 지지를 받은 셈이다.
하지만 박 시장 앞에는 친노계 좌장인 문 대표, 비노계 대표격인 안 전 대표, 후발주자 경쟁자인 안 지사도 있다. 그러자 박 시장은 날 선 발언으로 존재감 확보에 나섰다. 재임 이후 서울시민인권헌장 논란, 개발공약 등 보수적 정책으로 진보 지지층의 비판을 받던 그는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찰이 광화문광장 세월호 천막 수사와 관련해 임 부시장을 소환하자 “나를 잡아가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대립각을 통한 ‘범야권 지지층 결집’과 당내 ‘친노 세력 끌어안기’ 등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안희정 지사도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는 같은 달 26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 대표의 고강도 승부수인 ‘희망스크럼’과 관련, “못 들어 본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희망스크럼은 문 대표가 지난 2월 전국대의원대회 당시 ‘박원순·안희정·안철수·김부겸’ 등 야권 대권잠룡들이 참여, 당의 수권정당화를 꾀하자는 차원에서 제안한 기구다. 안 지사의 이 같은 반응은 박 시장이 문 대표의 ‘희망스크럼’ 참여 제안에 긍정적으로 화답한 것과는 결을 달리한다. 이는 친노 원조 격인 문 대표와의 차별화를 통해 독자 세력화를 구축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보인다. 또한 안 지사는 내달 지자체 최초로 연정시대를 연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회동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의 유력한 차기 대권잠룡인 이들이 ‘중부권’(경기·충청) 연대 전선을 구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셈이다. 남 지사가 ‘연정’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여야 주자가 ‘대연정’을 모색하는 첫 시험대가 될 수도 있다.
안 지사는 ‘제2의 JP(김종필)’이자 ‘리틀 노무현’ 후계자다. 지역적으로는 절대 권력자 없이 ‘무주공산’이 돼버린 충청권의 차기 맹주다. 충청권이 차기 대선의 캐스팅보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안 지사의 파급력도 만만치 않은 셈이다. 새정치연합 한 관계자는 지난해 충남지사 선거와 관련해 “3김의 한 축인 JP는 만년 2인자에 머물렀다. 이후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와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 등이 도전에 나섰지만, 대권 탈환에는 실패했다”며 “안 지사는 충청권 인사 중 ‘포스트 대권주자론’을 실현할 유일한 인물”이라고 밝혔다. 충청권의 차기 맹주인 ‘핫바지론’ 탈피를 할 수 있는 정치적 파워를 지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친노계 가운데 ‘폐족론’을 처음 꺼낸 인물이다. 일각에서 문 대표가 실패한 ‘노무현 그림자’ 벗기기를 할 친노계 인사로 안 지사를 지목하는 이유다. 친노 폐족 선언 이후 도지사 재선으로 정치적으로 부활한 안 지사가 ‘당 대표→대권 도전’에 성공할 경우 단숨에 스토리 있는 정치인으로 발돋움하면서 차기 대선을 뒤흔들 시대정신을 구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비노계 한 관계자는 “충청 민심의 열망이 안 후보에게 투영되고 있는 게 가장 무서운 점”이라며 “시민사회 대부격인 박 시장이 ‘순혈주의’에 빠졌지만, 안 지사는 노무현의 승부수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박원순·안희정’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