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쥐락펴락…‘고인 물은 썩는다’
러시아, 카타르를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FIFA의 고위급 간부들이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0년 12월 2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제프 블라터 회장이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카타르가 선정됐음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10년 12월,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 투표가 열리던 스위스 취리히. 두 대회의 개최지를 동시에 선정하는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러시아와 카타르가 각각 선정됐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중동에 위치한 카타르는 살인적인 더위로 축구대회를 개최하기에는 사실상 어려운 점이 많은 나라였다. 과연 40°C를 넘나드는 무더위에 제대로 경기를 치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에 각종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카타르가 ‘오일 머니’를 이용해서 FIFA 집행위원들에게 뒷돈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런 염려를 의식한 듯 FIFA 측은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중동 지역의 무더운 날씨를 의식해 2022년 월드컵은 통상적으로 6~7월에 열리던 것과 달리 11~12월에 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의혹은 끊이지 않았고, 러시아와 카타르 모두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집행위원들에게 명화, 현금 등 뇌물을 제공했다는 언론의 보도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대대적인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FIFA는 내부 조사에 소극적이었으며, FIFA 본사가 있는 스위스 정부 측도 별다른 조사를 실시하지는 않았다. 추측은 추측에 머무르는 듯 보였다.
칼날을 빼든 것은 뜬금없게도 미국이었다. 축구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과 애정이 없는 미국이 갑자기 ‘FIFA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27일, 로레타 린치 미 법무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앞으로 FIFA 관계자들의 부패 혐의를 낱낱이 밝히겠다”면서 “많은 나라들이 FIFA를 두려워하고 있다. 뇌물 수수 등 비리가 세계적으로 일반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하지 않고 있는 FIFA의 비리 관련 조사를 직접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스위스 측에 총회 참석차 취리히에 머물고 있는 FIFA 고위 간부 등 열네 명을 체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렇게 체포된 관계자들은 면면만 살펴봐도 모두 거물급들이었다. 제프리 웹 부회장, 에두아르도 리 집행위원, 훌리오 로페즈 발전위원, 에우제니오 피게레도 집행위원, 잭 워너 전 부회장, 니콜라스 레오스 남미축구연맹 회장, 호세 마리아 마린 브라질축구협회장 등 FIFA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이 가운데 웹 부회장은 블라터의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거물 가운데 거물이었다.
현재 미국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2018년과 2022년 개최지 선정 의혹에서 시작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개최지 선정으로 확대되고 있다. FBI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08년 FIFA의 스위스 은행 계좌에서 총 1000만 달러(약 111억 원)가 카리브해축구연맹(CFU) 및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계좌로 송금됐는데 바로 이 돈이 2010년 월드컵 개최지를 투표하는 데 있어 남아공에게 한 표를 던져준 데 대한 대가성 뇌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FBI는 이 뇌물이 61만 6000만 달러(6억 8000만 원), 160만 달러(17억 8000만 원), 778만 4000달러(86억 원) 등 세 번에 나눠 이체됐다고 밝혔다.
제롬 발케 사무총장
또한 FBI는 발케 사무총장과 워너 전 부회장 등이 당시 남아공월드컵유치위원회로부터 1000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정황을 포착했다고 말하면서 이들 역시 그 대가로 당시 남아공에 표를 던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 남아공과 경쟁 구도에 있었던 모로코는 이보다 적은 100만 달러(11억 원)를 제시했기 때문에 탈락했다고 덧붙였다. 발케 사무총장은 이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 그는 1000만 달러가 송금되는 것을 승인한 적이 없으며, 전혀 그런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FIFA 측 역시 당시 승인을 했던 것은 당시 재정위원회장이었던 훌리오 그론도나였으며, 당시 그론도나는 내부 규정에 의해 처벌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론도나는 지난해 사망했다.
하지만 발케의 이런 주장은 하루 만에 다시 거짓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지난 2008년 당시 남아공축구협회장이었던 몰레피 올리판트가 발케에게 보낸 서한 한 통이 공개됐기 때문이었다. 이 서한에서 올리판트는 1000만 달러를 당시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 회장이었던 잭 워너의 계좌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아프리카 축구 발전을 위한 지원금이었지만 미국 측은 이것을 뇌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움직임을 의식한 듯 스위스 법무부도 적극적인 수사를 펼치겠다고 밝혔다. 아직까지는 조사 단계에 그치고 있지만 미국과는 별개로 2018년과 2022년 개최지 선정과 관련해서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번에 기소된 열네 명은 개최지 선정을 둘러싼 뇌물 수수 외에도 회장 선거 비리, TV 중계권 및 마케팅권 협상을 둘러싼 뇌물 수수, 공갈, 금융사기, 돈세탁, 탈세 등 총 47개의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함께 기소된 스포츠마케팅 회사 간부들은 FIFA가 주재하는 축구대회에서 마케팅권, 중계권 등을 따내기 위해 FIFA 간부들에게 1억 5000만 달러(1650억 원) 규모의 뇌물과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 돈은 전부 블라터의 측근들에게 흘러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서방 언론들은 FIFA가 이렇게 부패의 온상이 된 이유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문제시되어 왔던 점들을 꼬집었다. 첫째, FIFA가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거대한 조직인데도 불구하고 비영리 단체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까닭에 FIFA는 지금까지 세금을 내지 않고 막대한 자금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었으며, 그리고 결국 이런 구조는 부정부패를 부추길 수밖에 없게 된다.
둘째, 블라터 전 회장의 장기 집권과 그에 따른 1인 체제 역시 문제로 꼽히고 있다. 17년 동안 FIFA를 쥐락펴락하면서 군림했던 블라터는 FIFA의 수익을 끌어 올렸다는 공적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FIFA를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는 비난 역시 피하지 못했다. 우선 본인 스스로가 부패의 몸통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가령 축구 불모지인 아프리카 지역에 막대한 후원금을 제공하는 식으로 환심을 사 회장 선거에서 몰표를 얻었다는 것이다.
셋째, 월드컵 개최지 투표가 비밀 투표로 이뤄진다는 점 역시 FIFA의 비리를 부추기고 있는 이유다. FIFA의 대부분의 수익은 TV 중계권 판매, 마케팅권 판매 등 월드컵 대회를 통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름이 아니라 월드컵이 한 번 개최될 때마다 1조 원이 넘는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 가령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6억 3100만 달러(7000억 원)를,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서는 15억 달러(1조 6500억 원)의 수익을 거두었다. 이 가운데 최대 수익은 43%를 차지하고 있는 방송 중계료며, 공식 후원업체로부터 받는 돈은 29%를 차지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FIFA의 현금 보유액만 무려 15억 달러(1조 6000억 원)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대부분의 수익금은 월드컵 상금, 월드컵 개최 비용, 직원 급여, 경비, 회원국 지원 사업(축구장 건설, 축구 꿈나무 육성) 등으로 사용된다. 블라터 회장의 연봉은 정확히 알려진 바 없지만 약 1000만 스위스 프랑(120억 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컨대 2022년 월드컵 유치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1994년 월드컵을 한 차례 개최했던 미국은 야심차게 두 번째 개최를 노렸지만 당시 이런 기대는 카타르에 밀려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월드컵을 개최하는 데 실패한 미국은 대신 FIFA에 막대한 중계료만 지불하게 된 셈이 되고 말았다.
한편 FIFA는 스캔들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시작하자 개혁에 나설 것을 재차 다짐하고 있다. 도메니코 스칼라 회계감사위원회장은 “앞으로 FIFA의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할 것”이라고 서둘러 발표했다.
단, 일부에서 요구하는 바와 달리 러시아와 카타르의 개최지 선정을 취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3년 앞으로 다가온 러시아 월드컵의 경우 당장 월드컵을 개최할 만한 경기장과 인프라가 갖춰진 나라가 없다는 점을 꼽았다. 심지어 영국의 경우에도 FIFA 규정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축구 경기장에 대대적인 공사를 실시해야 하며, 가장 훌륭한 조건을 갖춘 독일의 경우에는 2006년 월드컵을 치뤘기 때문에 역시 제외된다고 밝혔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카타르 월드컵 건설현장 ‘처참한 현실’ 인부 1200명 사망 “이럴 수가” “믿지 못할 만큼 처참했다.” FIFA 부패 스캔들로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 노동자들의 처참한 실태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월드컵 경기장, 호텔, 선수촌 아파트, 대중교통시설, 도로 건설 등에 동원된 인부들 가운데 지금까지 사망한 사람들은 무려 1200명가량이다.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 노동자들의 숙소(위)와 공사 중인 경기장 한 편에 마련된 주방. 매일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인부들은 주급 50달러(약 5만 5000원)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으며, 노동 시간은 매일 10~12시간에 달한다. 이에 인권운동가들은 이대로라면 사망자 수가 앞으로 급격히 늘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2022년 월드컵이 개막하기 전까지 4000명이 더 목숨을 잃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