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 여파 민심 냉랭…비장의 무기 ‘감세’ 꺼내들어
#보수 왕국은 왜 돌아섰나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 기시다 총리는 이례적으로 시마네 제1구를 두 차례나 방문해 자민당 후보의 지지를 간절히 호소했다. 총력전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야 대결은 민주당의 승리로 끝났다. ‘보궐 참패’를 두고 자민당의 한 의원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자민당을 향한 민심이 싸늘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민주당의 이즈미 겐타 대표는 “3개의 선거구에서 승리했지만, 전국에서도 의사를 표시하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면서 “다음은 정치 개혁에 흑백을 가리는 총선이 될 것이다. (중의원에) 조기해산을 요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즈미 대표는 선거기간 내내 자민당 파벌의 정치자금 문제를 추궁한 바 있다. “비자금 스캔들이 발각되고 5개월이 지났는데도,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처분도 불충분하다”며 정치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민당에 실망한 보수층과 중도층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여 승리를 일궈냈다는 평가다.
시마네현은 1996년 소선거구제를 도입한 이래 자민당이 단 한 차례도 패배하지 않은 곳이다. 일명 ‘보수 왕국’으로 불린다. 그런 시마네현에서 의석을 잃은 자민당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시마네대학 법학부의 이타가키 다카시 교수는 “비자금 스캔들로 인해 전국의 보수 텃밭이 향후 변해갈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한다. 과거처럼 단순히 자민당이라서 찍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지역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엄격한 시선으로 따져보고, 또 그럴 만한 정치인을 뽑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시마네현의 자민당 후보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가만히 있어도 이겨왔다. 열세를 뒤집는 선거를 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이 됐다. 연말연시 당 달력을 나눠주려다 “필요 없다”며 뿌리치는 유권자를 접했다고 한다. 그는 “전국 굴지의 보수 왕국이었던 터라 처음 느껴본 냉랭한 민심이었다”고 털어놨다.
시마네현의 한 주민은 “자민당의 비자금 사건을 통해 ‘국회의원들이 지역발전보다 사리사욕을 챙기는 데 더 매달리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유권자와 지역, 나라를 위해 공헌해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 본연의 자세다. 보수 왕국을 지속하고 싶다면 자민당은 바뀌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권교체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본은 권력이 자민당에 집중돼 있다. 권력이 한 곳으로 집중하면 필연적으로 부패한다. 역사를 돌아봐도 자민당 있는 곳에 검은돈이 있고, 검은돈이 있는 곳에 자민당이 있었다. 시마네현에 사는 또 다른 60대 남성은 “야당도 키우지 않으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나아질 수 없다. 이번에는 자민당을 뽑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위기의 기시다 감세로 반등할까
선거 결과가 나온 4월 28일 밤, 자민당의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은 “대단히 엄중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개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라며 패배를 인정했다. 자민당으로서는 정치자금규정법 등의 개정을 통해 신뢰 회복에 힘쓰고, 차기 중의원 선거를 위해 태세를 정비한다는 방침이다.
보궐선거 전패로 기시다 총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총리의 최측근인 기하라 세이지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정권교체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당내에서는 “지지율 하락세가 멈추지 않는 기시다 총리로는 다음 총선을 치를 수 없다”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기시다 총리를 대신할 유력 후보가 없다는 점에서 기시다 퇴진을 요구하는 움직임, 이른바 ‘기시다 끌어내리기’가 본격화되지 않는 모양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 고노 다로 디지털상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들이 기시다 총리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자민당의 한 간부는 “지금 자민당의 얼굴을 바꿔도 의미가 없다. 당 전체의 책임”이라고 평했다.
보수성향의 산케이신문이 4월 20~21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자민당을 향한 민심을 확인할 수 있다. “차기 중의원 선거 이후 정권”에 대해 묻자 응답자의 52.8%가 “자민당이 아닌 다른 정당으로 정권교체가 되길 바란다”고 답했다. 또한 “기시다 총리가 언제까지 총리직을 이어가길 바라는가”라는 질문에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때까지”가 43.2%로 가장 많았고, “이번 정기국회 회기가 종료되는 6월까지”가 25%,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두길 바란다”가 20.7%였다. 반면 “총재 임기가 끝나는 9월 이후에도 계속해달라”는 8.2%에 그쳤다.
주간다이아몬드는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에 더해 기시다 총리의 정권운영이 실망스러워 외면당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도 총리의 업적을 우선시해 정책을 밀어붙였다”는 지적이다. 정책 효과가 없는 곳에 돈을 쏟아부으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국민 부담, 즉 증세다. 그 결과 기시다 총리에게는 ‘증세 안경’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이 따라붙게 됐다.
방위비를 늘리기 위해 법인세, 담배세 등 각종 세율을 올렸고, 저출산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사회보험료가 인상됐으며, 산림을 정비하기 위한 산림환경세가 신설됐다. 일본 소셜미디어(SNS)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그 해결을 위해 세금을 올리고 있다” “각종 정책을 증세로 해결하려 한다” 등등 비판이 거셌다.
이런 가운데, 기시다 총리가 비장의 카드로 꺼내든 것이 바로 감세다. 기시다 총리는 6월에 1인당 4만 엔(약 35만 원)의 소득세 감세, 5월 프랑스 방문 등 외교 성과로 지지율을 끌어올려 재선하겠다는 계획이다. 요미우리신문은 “6월 시작되는 감세 정책과 임금 인상 효과 등으로 경제 상황이 좋아지고, 비자금 방지책인 정치자금규정법 개정이 완료돼 내각 지지율이 일정 정도 회복되면 기시다 총리가 승부수(중의원 해산)를 띄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