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반대 청원, 맘카페 등 “불가” 의견 우세…경기도 “명칭 최종 확정은 아냐”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새 이름 공모전에서 ‘평화누리특별자치도’가 1위를 차지하자 나온 반응이다. 지난 5월 1일 경기도북부청사 평화누리홀에서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새 이름 대국민 보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새 이름 공모전을 통해 5만 대 1 경쟁을 뚫고 선정된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새 이름 ‘평화누리특별자치도’가 공개됐다.
유튜브 채널 ‘경기도청’을 통해 생중계된 ‘새 이름 대국민 보고회’ 행사는 성대하게 열렸다. 이날 보고회에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염종현 경기도의회 의장, 경기북부 지역 시장·군수, 국회의원·도의원, 민관합동추진위원, 도민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석창우 화백이 붓글씨로 ‘평화누리특별자치도’를 썼다.
행사에 참여해 새 이름 공모전 시상을 한 김동연 경기지사는 “평화누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분은 대구에 거주하고 계신 91세 할머니라고 합니다. 91세 어르신이 내주신 이름이 당선돼서 정말 기쁘다”면서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명칭 공모식을 하면서 우리가 마라톤의 라스트 마일 구간에 들어갔다. 마지막 구간이다. 흔들림 없이 마지막까지 결승전까지 뛰겠다는 각오를 다시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행사에 참여한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자 22대 총선 남양주을 당선자는 “경기북부 접경지가 평화시대를 열고 통일의 시대를 열어가는 중심지역이 되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중심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평화누리 이름이 너무 좋다. 나도 평화라는 단어를 넣어서 공모하고 싶었다. 통일까지 넣고 싶었는데 그건 좀 욕심 같고, 평화까지는 넣어야겠다고 했는데 평화누리라서 너무 기뻤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이름에) 그런 비전과 그런 생각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행사 참여한 정치인은 새 이름을 두고 호평을 이어갔지만, 정작 시민 반응은 정반대였다. 공개 직후부터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이름이 ‘직관적이지 않다’ ‘촌스럽고 북한스럽다’ ‘평누도가 뭐냐’며 철회하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 경기북부 지역 맘카페에서는 ‘이거 진짜 하는 거냐’면서 평화누리특별자치도라는 이름에 황당해 했다. 댓글에서도 반대 일색이었다. ‘반대하는 사이트 같은 것 없나’ ‘이름 공모하더니 결국 저거냐’ ‘진짜 북한 같다’고 반대했다. 행사를 중계한 경기도청 유튜브 라이브 댓글에서도 ‘경기북부만 평화누리 당할 순 없다. 경기남부도 평화누리남도로 해달라’면서 반대 의견 일색이었다. 또 네티즌들은 ‘최소한 주민투표라도 부쳐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새 이름 공모는 대국민 관심 확산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북부특별자치도 최종 명칭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북부특별자치도의 법률적인 정식 명칭은 법 제정 단계에서 행정부, 국회 등과 논의도 해야 한다. 경기도에서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다만 현재 경기북부가 특별자치도를 추진하고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관심 확산 차원에서 기획된 행사다. 공모전 1위이자 잠정적 후보 정도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확정도 안 된 이름을 두고 관심 환기 차원에서 그 정도로 큰 행사를 열고, 1등 상금만 1000만 원을 주냐. 사실상 ‘어그로’성 기획 아니냐’ 등의 비판도 나왔다.
여러 의혹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먼저 평화누리라는 명칭을 지은 91세 할머니를 두고 의혹이 일었다. 이번 공모전에 대상 수상자는 앞서 김동연 지사의 말처럼 91세 신정임 씨로, 1000만 상금과 도지사 상장이 수여됐다. 시상식에는 신 씨 아들이 나와 대리 수상했다. 그런데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네티즌들이 찾은 이력에 따르면 신 씨는 이번 수상 외에도 부산관광패스 영문 명칭 콘테스트, 한국산업인력공단 과정평가형 슬로건 공모전, 광주광역시 북구 복합문화복지 커뮤니티센터 명칭 공모전 등 여러 공모전 수상 이력이 있었다.
네티즌들은 좋은 이름을 빠르게 접수해야 수상이 쉬운 공모전에 91세 할머니가 수상을 휩쓰는 것을 두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경기북부 지역 이름을 대구 사람이 짓는 게 말이 되냐’는 의견도 나왔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이름을 제출한 사람이 누군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91세 할머니인 것도 선정되고 나서 알았다. 선정 과정은 온라인 투표를 통해 10명을 추려내고, 브랜드 전문가, 역사 전문가 등이 모여 심의해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개입한 게 전혀 없고, 평화누리라는 이름은 온라인에서부터 1등을 한 바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특별자치도 추진 관심 확산이 제일 큰 목표였던 만큼, 대국민 공모 과정을 거쳤고 그에 따라 대구 시민이 1등 상을 받아 오히려 좋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이 점 때문에 김동연 지사도 행사에서 ‘대구에 거주하고 계신 91세 할머니가 1등을 수상해 기쁘다’는 표현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평화누리라는 이름이 여러 곳에서 쓰였고, 특히 종교 시설 등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점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에 천주교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장례서비스(상조) 업체 이름은 '주식회사 평화누리'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행사에서 슬로건으로 '평화누리'를 쓴 경우가 관련 홍보물과 영상 등에서 다수 확인되기도 했다.
이런 반응이 나오면서 남양주 지역 한 시민이 경기도청 홈페이지에 5월 1일 ‘평화누리자치도를 반대합니다’는 청원을 올렸다. 이 청원은 역대 가장 빠른 속도인 하루 만에 청원 답변 요건인 1만 명 동의를 채웠다. 5월 3일 오전 1시 현재 약 3만 4200명이 청원에 참여한 상태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청원이 올라온 만큼 도민 의견을 듣겠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이대로 확정되는 건 아니고, 청원이 전부도 아니지만, 도민 의견을 외면할 순 없다고 본다. 여러 의견을 면밀히 살펴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본질적으로 경기남부와 북부를 나누는 것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네티즌들은 “경기 남부에 산업이 몰려 있어, 경기 북부에 재정 자립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메가시티가 화두인데, 왜 굳이 쪼개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등의 의견을 남겼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현재 분도를 추진하는 이유만큼은 들어줬으면 좋겠다. 약 30년 동안 경기도는 경기 북부가 자립도가 올라오면 분도를 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 시간이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방식으로는 영원히 경기북부 지역이 살아나기는 어렵다는 게 도청의 생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경기 북부로 따로 독립해야 얼마나 많은 제약, 그린벨트를 포함한 규제, 일방적인 피해를 보는지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고 협상력도 생길 수 있다. 현재 경기도로 묶여 있다 보니 규제를 없애 달라고 요구해도, 평균의 함정에 빠져 ‘경기도는 잘 살지 않나’라는 논리로 북부는 제대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라면서 “경기 북부가 따로 독립해도 여전히 전체 자치도 중에서 서울시, 경기 남부에 이어 3위 정도 인구와 규모다. 부산, 경남보다 인구가 많다. 분리하기에는 충분한 여건이라고 자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