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과 6700개 특타로 일본야구 슬럼프 ‘극복’
이승엽이 지난 3일 포항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400홈런을 달성한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야구인이 보는 이승엽
이승엽의 400호 홈런이 터진 다음날, 라오스에서 ‘야구 전도’를 하고 있는 이만수 전 SK 감독이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제목은 ‘존경하는 후배의 400호를 축하하며’였다. 이 전 감독은 “이승엽은 두 말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의 최고의 타자이자, 내가 본 후배 중 연습을 가장 많이 하는 선수”라며 이승엽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400홈런 달성 기념 유니폼을 입은 모습.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이 전 감독은 또한 “지금에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나는 루키인 이승엽의 배팅 연습을 몰래 커닝하면서 따라 해보기도 했다. 이런 완벽한 스윙을 가진 그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 연습량과 자기관리라는 것이 또 한 번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면서 “만족할 줄 모르는 성격 덕분에, 그의 스윙은 계속 진화한다. 팀에서 최고참인 그가 동계훈련에서 보이는 모습, 시즌 중 시합 전 연습, 시합에 들어가서 보이는 정신력, 시합 후 다음 시합을 준비하는 자세,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삼성 라이온즈의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축사’를 했다.
이승엽은 400호 홈런을 때린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일본 시절 참스승으로 다가온 한화 김성근 감독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일본에서 정말 힘들었는데, 김성근 감독님을 만나 새로운 훈련을 할 수 있었다. 훈련량이 정말 많았다. 내 인생 최고의 훈련량이었다”면서 “당시 김성근 감독님께서 잡아주셨기 때문에 400호 홈런까지 올 수 있었다. 아니었다면 그저 그런 선수로 끝났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2005년 롯데 마린스에서 뛰던 이승엽이 인스트럭터를 맡았던 김성근 감독에게 타격 폼을 지도받는 모습. 연합뉴스
이승엽의 400호 홈런의 ‘희생양’은 롯데 투수 구승민. 이승엽은 구승민에 대해서도 “(피하지 않고) 승부해줘서 홈런을 칠 수 있었다. 나 때문에 비운의 선수라는 캐릭터를 얻지 않았으면 한다”는 걱정을 나타낸 바 있다. 구승민은 롯데 자이언츠의 유망주다. 지난해 1군 등판 기록은 1경기. 이종운 감독으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아 1군에 합류했지만, 기대만큼의 성적은 보이지 못하고 있다. 대신 대기록을 앞둔 베테랑 선배와의 대결에 피하지 않고 맞서면서 400호 피홈런의 아픔과 함께 ‘역사의 조연’으로 부상했다.
# 이승엽이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
이승엽이 이만수 전 감독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아래는 부친 이춘광 씨와 함께한 모습.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홈런이 나오는 그 짧은 순간, 수많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승엽이가 어린 시절 야구를 한다고 했을 때 제가 심하게 반대하자 초등학교 야구부장이 집으로 찾아왔던 장면들, 자신도 야구하는 아들을 뒀다고 말하며 제 손을 잡는 야구부장의 부탁을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엔 허락했던 모습 등등 수백 가지의 사연들이 필름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이 씨는 아들의 야구를 완강히 반대했던 아버지였다. 야구를 계속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는 보장이 없었고, 운동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면 사회의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아들을 혼내기도, 설득하기도 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승엽이한테 야구는 운명으로 다가왔다. 여섯 살 생일 때 난 아들에게 생일 선물로 빵이나 사주려 했다. 그런데 승엽이는 어린 나이에 자기가 받고 싶은 선물을 정확히 알려줬다. 야구 방망이와 글러브를 사달라고. 사실 난 승엽이가 운동선수가 되는 게 싫었다. 운동하다가 실패하면 나쁜 길로 가게 된다는 고지식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야구를 하겠다고 단식 투쟁을 벌였던 승엽이를 앉혀 놓고 야구한다고 성적이 떨어지면 당장 야구를 못하게 할 것이라고 협박(?)까지 했었다.”
이 씨의 우려는 멋지게 빗나갔다. 에이스로 두각을 나타낸 이승엽은 진학할 때마다 스카우트 경쟁에 시달렸을 정도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진학을 앞두고 프로팀으로부터 엄청난 구애 공세를 받기도 했다. 어느 학교에서는 신문지로 싼 돈 뭉치를 몰래 집에 놓고 갔는데 펴 보지도 않고 도로 보낸 뒤에 그 학교랑은 상대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야말로 행복한 비명을 질렀던 것 같다. 야구선수를 아들로 둔, 아니 이승엽이란 선수를 아들로 둔 나로선 아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고마웠고 기특했고 감사했다.”
젊은 시절,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적은 보수로 인해 경제적인 부담을 안고 살았던 이춘광 씨. 아들이 야구선수로 성공하면서 그의 삶도 꽤 달라졌다. 투병 생활을 했던 아내를 먼저 보내고 외로움과 헛헛함을 곱씹어야 했지만 ‘공무원 연금’이 아닌 ‘승엽 연금’을 받고 여유있는 노후 생활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 그리고 그의 아내, 이송정
미스코리아 출신인 이승엽의 아내 이송정 씨(33)는 ‘내조의 여왕’으로도 유명하다. 2002년 결혼식을 올린 후 두 아들 은혁(10), 은엽(5)을 낳고 키우며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충실했던 그는 남편이 400호 홈런을 터트리는 날, 아이들을 데리고 포항 야구장에서 그 장면을 직접 지켜봤다.
2003년 이승엽이 개인 통산 300호 홈런을 친 경기에서 아내 이송정과 키스를 나누고 있다. 아래는 400홈런을 치고 홈을 밟은 뒤 김평호 1루코치에게 ‘홈런 배트’를 받는 모습.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처음에 승엽이가 사귀는 여자가 있다면서 (이)송정이를 데려왔을 때 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대학에 갓 입학한 여성인 데다 전공도 연예계와 관련이 있고 특히 두 사람이 만난 곳이 패션쇼였다는 점들이 영 탐탁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승낙하면서도,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이가 어려 인내와 기다림 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운동선수와의 결혼 생활을 제대로 견뎌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했다.”
이 씨는 며느리가 자신 때문에 많이 울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승엽이를 뒷바라지했던 나로선 며느리에 대한 기대가 컸고 큰 기대만큼 며느리도 많이 부대꼈을 것이다. 그래도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믿는다. 첫 손자 은혁이를 낳았을 때 ‘애가 애를 낳아서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어느새 두 아이를, 그것도 사내아이들과 씨름을 하고 있는 며느리를 보면서 애틋한 마음이 든다. 잘 견뎌줘서, 그리고 앞으로도 잘 버텨줄 것이기 때문에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이승엽이 말하는 ‘은퇴’
어느덧 우리나이로 마흔 살인 이승엽. 현역 생활의 마지막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보니 그에게 은퇴시기를 묻는 기자들이 질문이 잦은 게 사실이다. 400호 홈런이 나온 이후에도 이승엽은 자신의 은퇴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확정짓진 않겠지만, 내년이나 내후년 정도로 생각한다. 평생 야구만 바라보고 살아온 인생,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 선을 그어놓고, 한 타석 한 타석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야구할 계획이다.”
이승엽이 세운 다음 목표는 KBO 통산 450홈런과 한·일 통산 2500안타다. 일본에서 159홈런을 때린 이승엽은 한·일 통산 559호 홈런을 기록 중이라 한·일 통산 600호 홈런 달성에도 욕심을 내볼 만하다. 6월 4일 현재 이승엽은 KBO리그에서 1764안타를 기록하고 있다. 한·일 통산으로는 2450안타. 올 시즌 내에 한·일 통산 2500안타 달성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승엽의 희망사항은 KBO리그 통산 2000안타 달성.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내년 또는 내후년’이 아닌 수년 동안의 현역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김성근 감독의 표현대로, 45세까지도 야구장에서 뛴다면 불가능한 기록이 절대 아니지만, 이미 ‘전설’이 된 이승엽은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해 가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