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뷸라이저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지난 5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평택성모병원의 에어컨을 통해 메르스 확산 가능성이 있다”며 기존 공기 감염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번복해 파문이 일었다. 문 장관의 이 같은 발언 이후 많은 시민들이 불안감을 안고 지하철,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정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가설이 등장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 가설은 메르스 전파의 결정적 원인으로 에어컨이나 공기 감염이 아닌 네뷸라이저(연무기) 또는 초음파 가습기를 꼽았다.
박철완 전 차세대전지 이노베이션센터 센터장은 “입수할 수 있는 병원 정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과학 지식으로 ‘추리’ 한 것”을 전제하면서 다음과 같은 가설을 들었다.
# 박철완 전 차세대전지 이노베이션센터 센터장의 가설
평택 성모 병원의 감염 양태는 비통계적 특성을 갖고 있다. 평택성모병원 외의 지역과 다른 ‘비정상적 증폭’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표본 집단을 제외하고 검토하면 국외 타 지역들과 비교해도 크게 두드러진 감염 경로나 속도가 안 보인다. 즉 다시 말해, 변이가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박 전 센터장의 ‘변이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은 정부 당국의 발표가 있기 전의 말이다)
그렇다면 평택 성모병원에서 ‘감염 증폭’이 일어난 것을 두고 공기 감염이라는 주장은 무리한 이야기다. 또한 언론에서는 메르스 바이러스가 문손잡이에서 검출됐다고 하면서 에어컨을 그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이것도 가능성이 낮다. 에어컨은 어느 병원에나 다 있고, 심지어 항공기는 좁은 공간에서 공조와 에어컨디셔너가 돌아간다. 에어컨의 문제라면 중국행 항공기에서도 ‘증폭 감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컸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다양한 에어컨디셔너 기구 중 비말(droplet : 직경 5마이크로미터 이상의 침 방울은 에어로졸(aerosol)이라 부르고, 이보다 큰 것은 비말(droplet)라 부른다)이 비산되었을 때 그걸 그대로 잡아서 퍼트리는 아주 대표적인 시스템이 있다. 에어컨디셔너는 비말을 보다 먼 거리로 보낼 수 없다. 보네이도(선풍기 혹은 환풍기 역할을 하는 것)와 유사한 것이 있어도 안 된다.
초음파 가습기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의료용인 네뷸라이져와 환자들이 흔히 쓰는 ’초음파 가습기‘ 비말을 확보해 멀리 보낼 수 있다. 초음파 가습기는 물 뿐만 아니라 용액안의 특성도 승화시켜 연기로 만들어 강제 확산시킨다. 가습기 살균제가 바로 그 특성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다.
초음파로 연기를 비산시켜 고온 열처리하고 나노 소재 합성하는 연구를 한동안 한 적 있는데 퍼트리는 능력이 대단하다. 만약 최초 확진자 주변에 ’초음파 가습기‘가 있었다면 그게 확진자의 비말을 보다 원거리까지 ’슈퍼 스프레딩‘(엄청난 확산) 시킬 수 있다. 또한 초음파 가습기와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는 초음파 네뷸라이저(Nebulizer)는 초음파 가습기의 일종인데 흡입치료에 많이 쓴다고 한다. 이것이 병원에서 급속도로 퍼지는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가설의 의미는 슈퍼 스프레더가 최초 확진자 특성이 아니라, 이동현상적 증폭(초음파 가습기 혹은 네뷸라이저를 통한 확산)이었다면 한국에서 심각하게 변이된 게 아니라 다른 국가와 동일 수준으로 대응하면 된다는 말이 된다. 즉, 3차 이후 감염은 잦아들 것이고 이번 주말쯤 메르스는 한 풀 꺾일 것이다.
평택 성모 병원에 ’초음파 가습기‘ 류가 있었는지 알아봐야 한다. ’가열식 가습기‘는 이런 특성이 없거나 약하다. ’초음파 가습기‘ 류가 미스트(Fume)의 이동현상을 증폭시킬 수 있다.
박 전 센터장은 <뉴욕타임스> 기사를 가설의 근거로 들었다. <뉴욕타임스>는 ‘메르스가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는가’에 관해 보도했다. 그에 대한 답변을 요약하자면 1. 메르스는 접촉이나 혈액 등을 통해 감염될 수 있지만 가장 주요한 경로는 호흡을 통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감기나 독감처럼 쉽게 퍼지진 않는다. 2. 장기간, 반복적으로 바이러스를 흡입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사람이라면 감염될 수는 있다 3. 사스 유행 때 가장 잘 퍼진 경로는 산소호흡기 또는 환풍기나 가습기였다. 라고 정리하고 있다.
박 전 센터장이 또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한 네뷸라이저는 의료기구로 흡입치료를 하는데 쓰인다. 흡입치료는 건조한 기관지에 ‘습기’를 공급해서 가래를 뱉어 내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만약 습도가 낮아서 기관지가 건조해지면 가래를 뱉어 내기 어렵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세균이 호흡기로 침입하여 폐렴이 생기고 기관지는 진한 가래로 막히게 되어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생한다.
네뷸라이저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사진=pcswga
따라서 만약 첫 번째 메르스 환자가 네뷸라이저로 흡입치료를 했다면 네뷸라이저가 메르스를 퍼트리는데 일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네뷸라이저 사용이 평택 성모병원의 비정상적인 빠른 전파 속도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주장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인 ‘DVDPRIME’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P 아무개 사용자는 댓글로 “오픈된 공간이라면 플루(독감)에 비해 문제 안 될 수준의 감염력은 맞는 것 같다. 제 생각에는 첫 환자에게 네뷸라이저를 물렸던 것 같다. 그럼 거기서 나오는 에어로졸이 환자의 분비물과 섞여 바이러스의 원거리 전파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용자는 “다만 에어컨이 이 상황에서 자체 순환을 통해 매개를 조장한 직접 원인일지, 에어컨 비용을 아끼느라 일부러 실내외 환기를 게을리한 것이 바이러스가 실린 실내 에어로졸 농도를 높이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작용한 것인지는 판단을 유보한다”고 덧붙였다.
일련의 주장들을 종합해보면 메르스는 가습기 혹은 네뷸라이저로 전파 됐을 가능성이 높다. 비정상적인 감염 속도는 두 가지 요인 이외의 것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선 병원에서는 메르스의 전파가 누그러질 때까지 가습기와 네뷸라이저 사용을 자제할 필요성이 높아 보인다. 또한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초기 비정상적으로 빠른 전파에 관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보건 당국의 책임이 무거워 보인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