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치마속 좀 봤다고 얼굴 붉히면 어쩌시나”
▲ 김혜수는 민망한 포즈에 얼굴을 붉힌 ‘초짜’ 기자에게 ‘한방’ 날렸다. 사진은 기사에 등장하는 장면은 아니지만 지난 92년 찍은 ‘자동차 보닛 위 포즈’. | ||
물론 기자로서 3년차였던 시기라 여자 연예인을 인터뷰할 땐 조금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지금이야 가슴이 떨릴 것도 없고 오히려 취재원이 편하도록 농담을 걸기도 한다. 한술 더 떠 마음속에 없는 말임에도 연기와 외모에 대한 칭찬을 줄줄 늘어놓기까지 한다.
어쨌든 김혜수를 인터뷰한 곳은 그녀의 집이었다. 어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느 신문에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기사화한 까닭에 김혜수의 어머니는 그 기사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조목조목 짚어주었다. 화기애애했다. 김혜수도 자신의 방을 공개하고 작은 액세서리들을 한 무더기 꺼내와 자랑까지 했다.
다음은 사진촬영이 문제. 다행스럽게도 당시 김혜수와 안면이 있는 여자 사진기자와 동행을 했다. 그래서인지 김혜수는 더욱 편안하게 행동했다.
집에서 대충 사진을 촬영하고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김혜수의 짧은 치마가 거슬렸지만(?) 여름철이었기 때문에 시원한 느낌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약 30분 정도 아파트의 화단을 배경으로 촬영을 했다. 김혜수가 사진기자에게 “언니, 이제 됐지?”라고 했을 때 사진기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순간 아파트 주차장에 보기 드문 노란색 스포츠카가 눈에 띄었다. 사진기자는 스포츠카를 배경으로 촬영을 하자고 김혜수에게 제안을 했다. 김혜수는 “진짜 색깔이 예쁘다”라면서 흥을 냈다.
하필이면 그때 화단에 앉아 담배를 피운 게 화근이었다. 노란색 스포츠카 정면에 앉았는데 사진기자가 김혜수를 스포츠카의 보닛에 눕게 했다. 그런데 ‘초짜 기자’는 다소 민망한 김혜수의 포즈를 보고 말았다. 사진기자는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김혜수는 내가 앉은 쪽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김혜수와 눈이 마주칠까 싶어 얼굴이 빨갛게 된 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김혜수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 막 스타덤에 올랐을 때 한석규는 버스를 타고 다닐 정도로 소박했다. 사진은 지난 93년 모습. | ||
다음은 ‘초짜 연기자’에 대한 이야기다. 바로 국내 영화계의 보배 같은 존재인 한석규다. 지금도 언론사나 현안에 따라 언론의 인터뷰를 가리기로 유명하다. 신인시절에는 매체를 가리지 않고 인터뷰를 하다가 스타가 된 후 인터뷰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가 된 연예인도 있지만 한석규만큼은 그런 부류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게 보기 좋게 인터뷰를 거절당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도 무명시절이 있었는데 바로 KBS 공채 성우에 이어, MBC 공채 탤런트로 업종변경을 했을 때다. 각종 단역을 거쳐 <우리들의 천국>과 <아들과 딸>에 출연하며 비로소 시청자에게 얼굴을 각인시켰다. 그의 목소리, 그의 단정한 느낌을 알린 작품은 <아들과 딸>이었다. 그저 그런 조연이었지만 단단한 연기력 덕에 일순간 스타덤에 올랐다.
주부층의 인기를 많이 얻고 있던 터라 ‘한석규 인터뷰’를 지시받았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호출기로 메시지를 남기며 인터뷰를 섭외할 때였다. 수십 통의 메시지를 남긴 끝에 가까스로 그와 전화통화를 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의외로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 무려 3번씩이나 인터뷰 스케줄을 펑크냈다. 매니저도 없이 혼자 활동하던 시절이라 스케줄 관리가 안 됐던 것이다. 결국 그가 미안했는지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을 지키겠다며 여의도 MBC 사옥에서 만나기로 했다. 물론 그때도 한석규는 40분이 늦었다. 조금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의 변명을 듣고 이해해주기로 했다. 그의 변명 아닌 변명은 종암동에 사는데 버스를 타고 오다보니 길이 막혀 늦었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그는 버스를 타고 다니는 연예인이었던 것이다.
소박함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의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양복 상의는 컸고, 넥타이는 구식이었으며 와이셔츠 색깔도 어울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패션이 엉망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대충 인터뷰를 하고 MBC 옥상에 있는 인조잔디에서 사진촬영을 했다. 30분 정도를 촬영한 후 사진기자가 장비를 마무리할 무렵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한석규의 바지에 허리띠가 없었다는 점이다.
양복을 입으며 허리띠를 매지 않다니! 한석규는 바쁘게 나오다보니 깜빡 했다며 미안해 했다. 깜빡할 게 따로 있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화려함만을 내세우는 다른 연예인과 달리 소박한 그의 심성이 보기 좋았다.
결국 한석규는 필자의 허리띠를 차고 재촬영을 해야만 했다. 그 허리띠가 아직도 있는데 이제는 차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낡았다. 하지만 그 허리띠를 볼 때마다 한석규가 생각난다. 물론 그가 촬영한 멋진 양복 CF를 볼 때마다 허리띠도 하지 않던 그의 ‘초짜 시절’이 떠올라 웃게 되는 추억의 미소와 함께 말이다.
CBS <노컷뉴스> 연예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