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확률싸움? 고도의 심리전도…
2014년 8월 30일(한국 시간) LA 다저스가 샌디에이고와의 경기에서 1·2루 사이 4명의 야수를 한 줄로 세우는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선보여 큰 화제가 됐다.
# 시프트 왜 생겨났나
특정 타자를 겨냥한 시프트는 1940년대 메이저리그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1946년 7월 15일 클리블랜드와 보스턴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클리블랜드 루 부드로 감독이 강타자 테드 윌리엄스를 막기 위해 처음 시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윌리엄스는 극단적으로 당겨 치는 스타일의 왼손타자였다. 클리블랜드의 젊은 사령탑 부드로는 윌리엄스가 타석에 들어서자 야수들을 일제히 그라운드 오른쪽으로 이동시켰다.
3루수가 2루 뒤, 유격수·2루수가 1루와 2루 사이, 1루수가 1루 뒤로 자리를 옮겼다. 외야수들도 중견수는 우익수 자리에 서고, 우익수는 우측 파울라인 곁으로 붙어 서는 형태를 취했다. 그라운드 왼쪽에는 좌익수 한 명만 남은 셈. 대부분의 타구가 오른쪽으로 쏠리는 윌리엄스에 대항해 수비 위치를 극단적으로 바꾼 것이다. 부드로 감독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수비 포메이션은 처음에는 ‘부드로 시프트’라 불렸지만, 다른 구단들이 윌리엄스를 상대로 같은 시프트를 쓰기 시작한 뒤로는 ‘윌리엄스 시프트’로 바뀌었다.
# 타구 길목에 놓는 ‘덫’
시프트는 날이 갈수록 다양해져갔다. 잘 맞은 타구도 야수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가면 아웃이 되고, 빗맞은 타구도 그라운드에 곧바로 떨어지면 안타가 되는 게 야구다.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가장 강한 곳에 덫을 놓아 흐름을 바꾸겠다는 시도가 줄을 이었다. ‘배리 본즈 시프트’가 메이저리그를 또 한 번 휩쓸고 지나갔고, 국내에서도 ‘이승엽 시프트’, ‘김현수 시프트’, ‘페타지니 시프트’ 등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시프트는 한 방향으로 유독 타구를 많이 보내는 타자에게 적지 않은 효과가 있다. 대부분 왼손 거포형 타자를 타깃으로 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A 코치는 “시프트는 보통 극단적으로 당겨 치는 타자에게 많이 사용한다. 밀어치는 타자는 언제든 당겨 칠 수 있지만, 당겨 치는 타자에게 그 반대는 어렵기 때문”이라며 “한화 이용규처럼 밀어치는 데 능한 타자나 한화 김태균처럼 타구 방향이 부챗살처럼 퍼져 나가는 타자에게는 시프트를 적용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메이저리그보다 일본과 한국에서 과감한 수비 시프트가 적은 이유도 있다. A 코치는 “일본과 한국에는 기본적으로 스윙의 개념에 앞서 먼저 배트에 공을 맞히는 ‘콘택트’에 초점을 맞춘 타자들이 많아 메이저리그에 비해 동양 야구 시프트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시프트에는 야수들만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투수의 역할이 무척 크다. 타자가 수비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타구를 보내게 하려면, 먼저 투수가 그 타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코스로 공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B 코치는 “가령 넥센 박병호를 잡겠다고 수비 위치를 옮겨봤자 투수가 한 가운데로 공을 던져 홈런을 맞으면 모든 게 끝 아닌가. 몸쪽이면 몸쪽, 바깥쪽이면 바깥쪽으로 투수가 전력분석에 맞게 컨트롤을 해줘야 시프트 성공률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 시프트의 효과
시프트의 효과는 단순하지 않다. 타자를 아웃시킬 확률을 높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상대 타자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고, 더 나아가 타격 밸런스를 흐트러뜨리는 ‘일거양득’을 노리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타자들은 “내 타구가 주로 향하는 곳에 야수들이 모여 있으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결국 시프트를 피해 빈 공간으로 타구를 날리려다 스스로 리듬을 잃는 최악의 상황을 맞는다.
당겨치는 타자를 막기 위한 수비 시프트를 ‘윌리엄스 시트프’라고 한다. 1940년대 전설의 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시프트를 피해 밀어쳐서 안타를 만드는 모습.
C 코치는 “시프트를 깨기 위해 의식적으로 스윙을 바꾸면서 중심이동이 안 좋아진 타자도 봤다”며 “시프트를 피하려면 처음부터 타구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프트를 만났다면 상대가 유인하는 특정 코스와 공을 잘 골라내야 한다”고 말했다. D 코치도 “밀어 친 안타 하나를 얻으려다 타격폼 자체가 무너지는 것보다는 정면승부가 낫다”고 했다.
2008년과 2009년 LG에서 뛰었던 외국인타자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좋은 예다. ‘페타지니 시프트’는 우익수가 펜스 근처까지 뒤로 물러나고 2루수가 외야 잔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일명 ‘2익수’ 수비를 펼치는 형태였다. 페타지니의 타구가 우측 외야를 향해 가장 많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거의 전 구단이 이 시프트를 사용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자 페타지니는 시프트를 벗어나기 위해 밀어치는 안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조차 여의치 않을 때는 기습 번트를 대 후진 수비를 펼치던 상대 야수들을 교란시켰다. 그 후 다른 구단들은 ‘소극적인 페타지니 시프트’로 맞불작전을 놓았다. 원래는 2루 뒤까지 옮겼던 유격수의 이동폭을 좁히는 배치였다. 결국 시프트와 싸우던 페타지니는 4할 도전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물론, 시즌 후반 들어 타율이 3할대 초중반까지 떨어졌다.
# ‘덫’을 피하는 방법
덫을 피하는 방법은 결국 두 가지뿐이다. 상대가 덫을 놓지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덫에 걸리지 않거나. 예를 들어 삼성 박한이는 왼손타자지만 밀어치는 능력이 뛰어나 좌전 안타를 곧잘 만들어 낸다. 이 때문에 롯데가 3루수와 유격수를 왼쪽으로 이동시키는 수비 시프트를 시도해봤지만, 곧바로 비어 있는 중견수 쪽으로 연이어 안타를 때려내면서 시프트를 원천 봉쇄했다. 두산 김현수도 한 차례 포스트시즌에서 시프트에 걸려 고생한 뒤로는 의식적으로 타구를 고르게 분포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만큼 타격 기술이 뛰어나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시프트의 원조인 메이저리그의 윌리엄스는 끝까지 잡아당기는 타격을 고수했다. 거포형 타자들이 선택하는 전략도 대부분 ‘정면돌파’다. 윌리엄스는 자신의 저서 <타격의 과학>에서 “980g의 약간 무거운 배트를 짧게 쥐고 치니 여러 방향으로 날카로운 타구들을 날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 탓에 휑하니 뚫려있던 좌익수 방향으로 많은 안타를 때려냈다”며 “얼마 후 ‘테드 윌리엄스가 나이 때문에 더 이상 잡아당기지 못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한 다른 팀들이 시프트를 풀고 정상수비로 돌아갔다. 그때 나는 다시 가벼운 배트를 들고 경기에 나섰고, 그해 여름 무렵부터 다시 마음껏 공을 잡아당겨서 우익수 쪽으로 안타를 쳤다”고 회상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LA다저스 ‘포백 시프트’ 화제 1~2루 사이에 4명 ‘수비 신세계’ LA 다저스의 ‘포백 시프트’는 지난해 메이저리그 최고의 화제 가운데 하나였다. 돈 매팅리 다저스 감독이 8월 30일(한국시간) 샌디에이고와의 경기에서 2-2로 맞선 연장 12회말 1사 만루 끝내기 패배 위기를 맞자 즉흥적으로 선보인 시프트였다. 매팅리 감독은 타석에 좌타자 세스 스미스가 들어서자 1·2루수와 유격수는 물론 외야에 있던 안드레 이디어까지 내야로 불러 들여 1루와 2루 사이에만 총 4명의 야수를 한 줄로 세웠다. 3루수만 번트에 대비해 자신의 자리에 섰을 뿐이다. LA 다저스 돈 매팅리 감독. 끝내기 상황에서 외야수 한 명을 내야로 전진 배치시키는 ‘내야 5인 시프트’는 메이저리그에서 종종 사용되는 전술이다. 한국에서도 일부 감독이 그렇게 한 적이 있다. 연장전 홈팀 공격 1사 만루에서 외야로 깊숙한 타구가 날아간다면, 안타든 플라이든 경기는 끝난다. 그러니 외야 타구는 포기하고 내야로 오는 타구를 보다 확실하게 잡아 병살을 유도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저스의 시프트처럼 2루와 3루 사이를 완전히 비우고 4명의 야수를 일렬로 배치하는 것은 모두가 처음 보는 장면. 경기를 중계하던 다저스 베테랑 캐스터 빈 스컬 리가 “마치 합창단 같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스미스의 타구는 매팅리 감독의 예상대로 4명의 야수가 기다리는 1·2루 사이로 굴러갔고, 홈에서 주자는 아웃됐다. 그러나 더블 플레이는 이뤄지지 않아 경기는 결국 샌디에이고의 승리로 끝났다. 승패와 별개로 이 시프트는 경기가 끝난 후에도 미국 전역의 관심을 모았다. 야후스포츠는 “돈 매팅리 감독이 수비 시프트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평가했고, 샌디에이고 버드 블랙 감독도 “야구장에 온 팬들은 완전히 새로운 시프트를 경험했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는 수비 시프트 덕을 보는 팀들이 많아지고 있다. 야구 통계분석인 세이버메트릭스 전문가 빌 제임스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전체 팀의 시프트 횟수는 5년 전에 비해 5.5배 더 많아졌고, 시프트로 막아낸 득점 역시 5.4배 늘었다. 이 때문에 올 시즌 취임한 롭 맨프레드 메이저리그 신임 커미셔너는 ESPN과의 인터뷰에서 “좀 더 공격적인 야구경기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는 방안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수비 시프트는 경쟁우위의 측면에서 볼 때 불공평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 발언은 큰 반발과 논란을 빚었다. 현지 언론들은 “득점력이 떨어지는 최근의 추세는 수비 시프트가 아니라 볼넷이 줄어들고 삼진이 늘어난 게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공격적인 야구를 원한다면 수비시프트를 금지할 게 아니라 스트라이크존을 좁혀야 한다는 얘기다. 또 시프트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해석해야 하고, 금지해야 할 시프트는 어떤 식으로 규정해야 하느냐에 대한 의문도 잇따랐다. 메이저리그 야구규칙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야수들은 페어지역 안에 위치해야 한다’는 규정만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맨프레드의 발언은 ‘야구의 묘미’를 고려하지 못한 신임 커미셔너가 의욕만 앞서 일으킨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은] |
KIA ‘4차원 시프트’ 뒷얘기 심판 딱 잡아낸 이유 있다 KIA 김기태 감독은 얼마전 본의 아니게 국제적인 유명세를 탔다. 5월 13일 광주 kt전에서 선보였던 기상천외한 시프트 때문이다. 이른바 ‘4차원 시프트’로 불렸던 이 수비형태는 사실 애초에 시프트로 인정될 수 없는 그림이었다. 당시 김 감독은 9회 2사 2·3루서 고의4구를 지시한 뒤 혹시 모를 폭투를 막기 위해 3루수 이범호를 포수 뒤로 보냈다. 모두가 깜짝 놀란 파격적 시도였다. KIA 김기태 감독이 5월 13일 kt전에서 3루수 이범호를 포수 뒤로 보내는 ‘4차원 시프트’를 선보여 구설에 올랐다. 그 순간 문승훈 3루심이 곧바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포수를 제외한 모든 야수는 페어그라운드에 위치해야 한다’는 야구규칙에 위배됐다는 것이다. 결국 이범호는 원래 자신의 자리인 3루로 돌아갔다. 일은 다음 날에 더 커졌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는 이 영상을 소개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전략”이라고 평가했고, ESPN의 한 칼럼니스트는 그날의 ‘월드 워스트’로 김 감독이 시도했던 시프트를 꼽았다. 당연히 이 시프트 시도는 풍성한 후일담을 쏟아냈다. 일단 김 감독은 다음 날 “나의 야구 공부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깨끗하게 인정한 뒤 “주장 이범호와 투수조장 최영필을 불러 사과했다.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더 이상 사고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범호도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결승전에서 9회말 2사 후 동점 적시타를 친 이후 다시 세계적으로 내 얼굴이 알려졌다”며 웃었다. KIA 외국인타자 브렛 필은 “화면이 미국에서까지 소개된 덕분에 미국의 가족들이 TV를 통해 1루에 서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사실 그 상태로 경기가 속개됐다면 가장 낭패를 봤을 인물은 심판들이다. 한 심판은 “그라운드 안에 있으면 생소한 상황에서 순간적인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다행히 이 시프트의 문제점을 지적한 문승훈 3루심은 도상훈 KBO 심판위원장에게 들었던 과거 사례를 기억하고 있었다. 2군 경기가 처음 시작됐던 1990년 목동구장에서 벌어진 해프닝 때문이다. 당시 홈팀 좌익수로 출전했던 한 선수는 이닝 교대시간에 그라운드 밖으로 나가 담배 한 대를 피웠다. 아직 공격시간이 한참 남아 있으니 그 정도 여유는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홈팀의 공격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 다시 홈팀 야수들이 모두 그라운드로 들어섰지만 좌익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고, 심판은 물론 양 팀 더그아웃의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모른 채 경기는 속개됐다. 그런데 하필이면 원정팀 선두타자가 친 타구가 3루수 키를 넘어 텅 빈 왼쪽 외야로 향했다. 그제야 좌익수가 없다는 사실을 모든 이가 깨달았다. 너무나 당연해 보여서 잊고 있었던 야구규칙, 즉 ‘인플레이 때 포수를 제외한 모든 야수는 페어지역에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이때 주목을 받은 것이다. 담배를 피우던 좌익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유니폼을 벗었고, 해당 경기 심판진 전원은 징계를 받았다. 당시 2군 책임자였던 도 위원장은 이후 심판들에게 “플레이볼을 선언하기 전에 항상 레프트 폴에서 라이트 폴 사이에 수비수가 모두 있는지 확인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문 심판도 그 일화를 들은 덕분에 페어지역을 벗어난 3루수를 제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