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무너져도 ‘칼자루’는 내 품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당 사무총장에 범친노 ‘최재성 카드’를 강행하려 하자 비노계가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특히 당 최소 4개 그룹에서 분당 및 신당 창당을 준비한다는 설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문 대표가 차기 공천의 전권을 휘두르는 사무총장 1순위로 ‘최재성 카드’를 꼽자 비노계에선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라고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비노계 내부에선 ‘밀리면 끝장’이라는 비장감마저 묻어 나왔다. 비노계 한 인사는 “문 대표가 ‘마이웨이’를 선언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사무총장에 어느 계파 의원이 임명되든, 문 대표의 차기 총선 공천의 의중이 드러났다는 얘기다.
친노계의 당 장악 시나리오는 6월 둘째 주 중반 여의도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앞서 손학규계인 양승조 사무총장 등은 혁신위원회 인적 구성 직전, 자연스럽게 사퇴 수순을 밟으며 문재인 대표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줬다. 핵심 당직 개편 대상은 사무총장을 비롯해 사무부총장단·대표 비서실장·정책위의장·대변인단 등이다. 최대 관심사는 당 사무총장 인선이었다.
이때부터 3선의 김동철(손학규계)·박기춘(박지원계)·최재성(정세균)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올랐다. 애초 정치권 안팎에선 문 대표가 계파 논란을 피하기 위해 비노계 인사를 중용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문(문재인)·박(박지원)’ 연대의 핵심 키인 박기춘 카드가 힘을 받은 이유다.
강기정 정책위의장
‘당 대표(친노)-원내대표(비노)-사무총장(범친노)-정책위의장(범친노)’ 등의 구도로, 당내 역학 구도를 뒤흔들 수 있는 중대 분기점이라는 얘기다. 원내대표 경선 당시 비노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당선된 이종걸 원내대표를 필두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출신인 이용득 최고위원 등이 강하게 반발하며 친노 패권주의에 맞섰다.
이 최고위원은 “혁신위는 친노패권 해소위원회가 돼야 한다”고 문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다. 앞서 ‘최재성 카드’와 관련해 “혁신을 최우선으로 해 달라”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드러낸 김상곤 혁신위원장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비노계의 대표그룹인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 소속인 이 최고위원은 이미 ▲원내수석부대표에 이춘석(손학규계) ▲수석부대표에 이윤석(박지원계) ▲원내대표 비서실장에 권은희(김한길계) 등 당직을 비노계 인사로 채웠다. 최 의원과 한판 승부를 벌였던 원내대표 경선이 ‘김한길·박지원·손학규의 합작품’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들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당선된 이 원내대표가 친노 장악 타파의 최전선에 선 것이다.
친노계는 펄쩍 뛰었다. 한 관계자는 “친노계가 다 해먹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최재성 카드는 ‘차기 총선 불출마’ 전제와 당내 전략통에 맞는 조건을 찾다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의원들이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뜻 받아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20여 일 동안 당직 공백 사태를 허수아비처럼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느냐. 비노의 ‘문재인’ 흔들기가 도를 넘고 있다”고 힐난했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황에서 제1야당의 혁신 방안의 시너지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총선 기득권 포기 ▲선거 전략통 ▲중진급 인사 등의 퍼즐을 맞춰야 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할 최적의 조건이 ‘최재성 카드’였다는 얘기다. 실제 최 의원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를 전제로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문 대표는 당 사무총장에 ‘최재성 카드’를 두고 ▲대표 비서실장에 박광온(김한길계) ▲전략홍보본부장에 안규백(박지원계) ▲수석사무부총장 김관영(김한길계) 의원 등 비노계를 전진 배치한다는 복안이었다. 문 대표 핵심 측근은 이와 관련해 “최재성 카드와 함께 비노계 인사들을 두루 포진시켜서 탕평 인사를 꾀하는 것이 최상의 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비노계 한 인사는 “2012년 총선 상황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친노계가 486그룹과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강경파 인사들과 손을 맞잡고 ‘한풀이 공천’, ‘친노 독식 공천’을 단행한 당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 한명숙호가 ‘난파선’에 처한 결정적 사건은 당 사무총장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출신인 ‘임종석(현 서울시 정무부시장) 카드’를 꺼내 들면서부터였다.
당시 친노가 뇌물수수 사건 항소심을 진행 중이던 임 전 의원의 사무총장 인선은 물론 성동을 공천권까지 사실상 내정하자 비주류의 반발은 극에 달했다. 한명숙 공천 파동에서 배제된 구민주계 인사는 물론 노동계 인사들까지 집단적으로 반발, 당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최재성 카드’를 반대하던 이 최고위원은 당시에도 당무 거부를 하면서 친노계에 저항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호남에서 시작한 공천 파동이 수도권에 상륙하면서 공천 탈락자들의 집단 반발과 경선 고소·고발전으로 몸살을 앓았다. 되는 게 없는 문재인호의 차기 총선 공천이 2012년의 재판이라는 전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당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제는 사무총장 인선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이 관계자는 “2·8 전국대의원대회 직후 문 대표 등 친노계가 김경협 의원을 수석사무부총장으로 인선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내지 않았느냐. 그때 비노계인 주승용 최고위원의 강한 반대로 무산됐다”며 “그간 반대편 쪽을 배려하는 ‘관행’을 깨고 문 대표가 친노 인선을 강행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또다시 문재인식 공천의 판도라 상자가 열린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현재 김 의원은 ‘비노 세작’ 발언으로 당 윤리심판원에 제소당한 상태다.
변수는 ‘김상곤 혁신위’다. 애초 ‘최재성 카드’를 반대한 김 위원장이 향후 제1야당의 혁신 과정에서 친노 패권주의를 얼마나 해소하느냐에 따라 ‘친노 vs 비노’의 양대 산맥이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는 “혁신안 저항에 부딪히면 대표직 재신임을 묻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김 위원장이 ‘친노 2선 후퇴’ 내지 ‘중진급 용퇴론’ 등을 관철한다면, 기존의 계파와는 다른 혁신그룹이 재탄생할 수 있다. 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당 최고의결 기구인 최고위원회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혁신위의 개혁안이 당헌·당규 변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비노계 한 인사는 “김상곤 혁신위는 ‘맹탕·허탕·재탕’ 위원회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새정치연합 구도는 ‘친노 vs 비노’ 간 대결이 될 수밖에 없다. 문 대표가 공천 문제만 나오면 ‘정면돌파’를 시도하는데, 4년 전 공천 대학살을 또 당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 우리도 벼랑 끝 신세”라고 말했다. 이에 친노계 관계자는 “언제까지 계파 논쟁만 할 것이냐. 이러다가 4년 전 총선 패배를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