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전문가’ 효과 오리온 확 달라졌다
그간 M&A 없이 회사를 키워온 오리온이 홈플러스 인수에 나서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용산구 오리온 본사 사옥. 오른쪽은 담철곤 회장. 일요신문DB
재계에서는 지난해 오리온 부회장으로 거취를 옮긴 허인철 전 이마트 사장이 홈플러스 인수를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허 부회장은 오리온으로 이동하기 전까지만 해도 신세계그룹 내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1986년 삼성그룹에 입사한 후 1997년 신세계로 자리를 옮겨 2006년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장과 이마트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경영전략실장으로 근무할 당시 월마트코리아와 센트럴시티 인수 등 신세계그룹의 ‘알짜 딜’을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신임을 받으며 허 부회장은 지난 2012년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침해로 이마트가 논란의 중심에 서자 구원투수로 이마트 대표를 맡게 됐다.
그러나 정 부회장과 허 부회장의 돈독했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2013년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했다가 불성실한 태도로 정용진 부회장이 국감장에 불려오게 만드는 등 구설에 올랐다. 그러다 그는 지난해 1월 갑자기 신세계그룹에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신세계그룹은 허 부회장의 사표를 만류했지만, 본인의 뜻이 확고해 사표를 받아들였다.
허인철 부회장
오리온으로 옮긴 허인철 부회장은 미등기임원이라 연봉이 공개되지 않는다. 다만 강원기 오리온 대표가 지난해 5억 3900만 원의 연봉을 받은 것을 고려하면 최소 6억 원 이상을 받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마트 사장 때보다 적은 연봉에도 오리온으로 옮긴 이유에 대해 오너가 전권을 맡긴 것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존심이 강한 허 부회장이 오너의 간섭 없이 전문경영인 스타일로 회사를 이끌 수 있는 부분에서 이직을 결심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허 부회장은 취임하자마자 회장실 아래에 있던 전략과 법무, 감사, 홍보부문을 독립시키는 등 회장실 폐지를 골자로 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또한 오리온 제품포장 자회사인 아이팩과 오리온스낵인터내셔널을 합병하고 오리온중국법인 오리온푸드컴퍼니가 종속회사 오리온스낵컴퍼니를 흡수·합병했다. 그룹 내 중복 사업구조를 단순화하고 수직계열화를 시켜 내실을 다진 것이다. 그룹 정비를 끝낸 허 부회장은 꾸준히 현금을 모으며 본인의 주특기인 M&A로 시선을 돌렸다.
오리온은 그간 담철곤 회장의 스타일에 따라 리스크가 있는 M&A보다 법인을 설립하는 것을 선호했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 베트남에 진출해 있지만 현지 기업을 인수하지 않고 현지법인을 통해 사업을 키웠다. 그나마 지난 2006년 쌍용건설과 2013년 웅진식품 인수전에 참가하면서 M&A 시장에 등장했지만, 중도포기했다. 무리해서 사업을 확장하지 않는다는 경영철학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M&A 전문가인 허 부회장이 영입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오리온은 홈플러스 인수전에 참여하기 전부터 괜찮은 매물이 나오면 인수 가능성을 타진했다. 예컨대 NS홈쇼핑이 상장하기 전에 우리PE와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이 가지고 있는 NS홈쇼핑 지분 약 22%에 대해 오리온이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리온이 NS홈쇼핑 지분을 팔고 싶어 했던 우리PE 등의 지분 인수를 검토했지만, NS홈쇼핑이 상장을 하면서 접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M&A 매물을 지속적으로 지켜보던 오리온은 홈플러스 인수전에 출사표를 던졌다.
IB업계에서는 오리온이 단독으로 최대 7조 원 규모에 달하는 홈플러스를 인수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오리온의 올해 3월 말 현금 및 단기유가증권 규모는 5748억 원이다. 이에 따라 사모펀드와 손을 잡고 뛰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홈플러스 인수에 칼라일,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MBK파트너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프라이빗에쿼티, 텍사스퍼시픽그룹(TPG) 등이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리온 측은 “홈플러스 인수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입찰참여 여부 등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IB업계에서는 내년 창립 60주년을 맞는 오리온이 성장동력 부재를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홈플러스 인수전에 적극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오리온은 과거 편의점 바이더웨이를 운영하다 2006년 매각한 적이 있어 유통업에 처음 진출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이마트를 통해 신세계그룹을 키운 경험이 있는 허 부회장이 오리온에서도 ‘제2의 이마트’를 만들 ‘묘수’가 있어 홈플러스 인수전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오리온의 지난 3월 말 기준 부채비율은 106.2%로 양호해 외부에서 자금을 수혈하기에 튼튼한 체력을 갖췄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리온이 홈플러스를 인수하면 롯데처럼 제조업과 유통업이 결합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오리온 입장에서는 흔치 않는 기회를 잡기 위해 다양한 자금조달 방법 등을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홈플러스 인수전은 연내에 마무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진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