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도 않은 ‘실사보고서’ 둘러대며 뭘 숨기려 했나
▲ ‘오일게이트’와 관련, 이광재 의원이 녹취록을 공개하며 해명했지만 의혹은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 ||
하지만 이를 둘러싼 의혹은 한두 가지 아니다. 먼저 <일요신문>이 이번에 최초로 밝힌 내용 중에는 철도청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 추진의 판단 근거가 됐던 삼일회계법인의 실사 보고서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삼일측 관계자는 “전대월씨 요청으로 직원 1명이 모스크바에 가서 일주일 동안 회의만 하다가 돌아왔다. 실사 보고서는 만들지도 않았고 전씨로부터 돈도 받지 못해 손해배상청구를 한 상태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 사건의 핵심 연결 고리로 통하는 허문석씨의 진술도 아리송하다. 그는 이광재 의원이 배포한 녹취록에서 “전대월이 삼일회계법인에서 현장에 가서 경제적인 것을 갖다줘서 (읽고) 더욱 좋아서 나도 탐이 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실사보고서를 읽었다고 하는 것은 허씨가 거짓 증언을 하거나 전씨가 ‘가짜’ 보고서를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유전개발 사업 파문에 얽힌 주요 의혹들을 따라가 봤다.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 개발 사업 파문은 야당이 국정조사를 요구할 만큼 의혹투성이다. 먼저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로 등장하는 허문석씨에 대한 의혹 부분이다. 철도공사는 유전사업에 문외한이었음에도 외부의 ‘도움’ 내지는 ‘입김’ 때문에 이번 사업에 뛰어들었다. 에너지 개발 사업자였던 권광진씨(KCO 지분 18% 소유)는 지난 2003년부터 러시아 원유생산업체 인수 계약 건을 성사시키기 위해 한국석유공사, SK 등의 기업과 교섭하다 실패한 뒤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전대월씨(KCO 지분 42% 소유)를 만나게 된다. 권씨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던 자신의 유전개발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전씨를 끌여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때가 지난해 5월.
한 달 뒤 전씨는 강원도 동향 출신의 현 정권 실세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 에너지전문가였던 허문석씨를 소개받았다. 전씨 등은 “허씨가 (이번 사업을 위해) 철도청을 끌어들였다”고 주장했다. 허씨도 “(철도청에) 투자를 권유했다”며 자신이 권, 전씨와 철도청을 연결시켜준 핵심이었음을 인정했다. 허씨는 “조국을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라고 그 뒤 밝힌 바 있다.
그런데 허씨는 이 의원뿐 아니라 이광재 의원의 현 후원회장인 이기명씨 등 ‘실세’들과도 교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시사저널>은 이 의원이 지난 2001년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씨를 통해 허문석씨를 소개받았다고 보도했다. 또한 허씨는 지난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캠프의 경제 자문으로 활동했으며 이기명씨와 허문석씨는 고교 동창 사이라고 전해진다.
이런 정황을 볼 때 허문석씨는 철도청이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데 결정적 ‘조언’을 한 사람이다. 그는 지질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석유전문가로 알려지고 있으며 주로 인도네시아에서 에너지 개발사업을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이번 철도청의 유전개발 회사 인수를 적극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그 인수 추천 배경에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된다. 이광재 의원이 이번 사건의 해명을 위해 공개한 허씨의 진술 녹취록을 보면 인수 추천을 한 배경이 기록돼 있다.
그에 따르면 허씨가 철도청 왕영용 본부장을 호텔에서 우연하게 만난 뒤 그에게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 제안을 하자 왕 본부장이 일주일 뒤 그것을 추진하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허씨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료와 전대월씨를 왕 본부장에게 소개시켜 주었다고 한다. 그 뒤 허씨는 전대월씨에게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에 대한 자료를 더 달라고 했는데 ‘전씨는 삼일회계법인에서 현장에 가서 상업적인 경제적인(자료) 것을 갖다줬다’고 한다. 허씨는 “그 자료를 보니 더욱 좋아서 나도 탐이 나고 해서 5% 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허씨의 진술이 거짓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허씨가 전씨에게 건네 받았다고 하는 삼일회계법인의 실사보고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
삼일회계법인의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2004년 7월 전대월씨로부터 러시아 유전개발 실사를 의뢰 받고 7월30일에 총 1억원의 실사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며칠 뒤 곧바로 착수금 3천만원의 어음을 청구했다. 그런데 8월 말 전씨의 회사가 부도가 나서 그 어음도 현금화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실사 보고서 부분에 대해서도 “1억원 계약을 한 뒤 지난 8월18일 전대월씨 요청으로 우리 회사 직원 1명이 그쪽 관계자와 함께 러시아 모스크바로 갔다. 일종의 실사 준비 단계였다. 유전은 사할린에 있었는데 그곳에는 가지도 않았고 모스크바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그냥 회의만 했다. 동행한 우리 직원도 회계사였지 광구개발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실사 같은 것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이 관계자는 “항간에서는 우리가 유전 매장량 확인 보고서까지 냈다고 소문이 나오는 모양인데 전부 거짓이다. 우리는 어떤 실사 보고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더구나 직원이 모스크바에 출장을 갔다온 뒤 전씨의 회사가 부도가 나 한푼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 전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하지만 부도난 사람에게 돈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밝히면서 “이번 사건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이 ‘삼일이 했다’라고 좀 과장해서 떠들고 다닌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 “러시아에 출장 간 직원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삼일측은 이번 실사건에 대해 미팅에 한두 번 참석한 것 외에 착수금도 못 받고 손해만 입은 것이다.
그런데 허씨는 삼일측이 작성하지도 않은 실사 보고서를 읽고 나서 이번 사업이 더욱 탐이 나서 자신도 5% 참여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놓고 보면 허씨가 뭔가 말못할 사정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실사보고서 운운 하며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전대월씨가 실사 보고서 만드는 ‘시늉’만 한 뒤 자신이 ‘가짜’ 실사보고서를 만들어 허씨에게 보여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에너지 전문가인 허씨가 사할린 유전 개발 현장에 직접 가보지도 않고 작성한 가짜 실사 보고서를 그대로 믿고 지분참여까지 결심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한편 허씨의 진술 녹취록을 직접 만들어 배포한 이광재 의원측은 삼일의 실사 보고서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질문에 대해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이번 사건이 책임 떠넘기일 것 같아서 지난 3월25일경 관련자들과 통화해 그것을 녹취해두었던 것일 뿐이다. 진실 규명은 조사 결과를 기다려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허씨는 지난해 설립된 KCO의 지분 5%를 보유한 주주로 참여한 뒤 그 회사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런데 사업 과정에서 부도를 낸 전대월씨 등의 지분 60% 전부가 철도청에 흡수되었음에도 그의 지분만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철도청측이 그와 정치권의 관계를 고려해 그의 지분을 ‘배려’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철도청은 “그가 유전개발의 전문가인 점이 고려됐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허씨는 감사원의 조사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시점이었던 지난 4월4일 갑자기 인도네시아로 출국해 그 배경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고 가고 있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가 만약 귀국하지 않는다면 사건 진실 규명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야당에서는 또 다른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먼저 철도청이 한국석유공사 등이 타당성 없다며 ‘버린’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던 배경에 대해 의구심이 일고 있다. 전문영역도 아닌 유전개발에 굳이 뛰어든 이유가 여권 실세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여권 실세들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사업제안을 받고 덜컥 추진하겠다며 ‘과잉충성’을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계약 과정에서 ‘커미션’이 있었을 것이고 이 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 진상조사단으로 여러 제보가 들어오고 있는데 그 중에는 계약 과정에서 생긴 커미션이 여권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아직 확증이 없어 공개할 수 없지만 이름만 들어만 금방 알 수 있는 ‘실력자’들의 이름도 거론된다”고 밝혔다.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사업 참여는 실패했다. 앞으로 이것이 단순 사기 사건으로 끝날지, 아니면 대형 권력형 비리로 비화될지 검찰의 칼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