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따로 놀아도…노는 저어야 산다
김상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장이 5월 27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문재인 대표. 이종현 기자
“지금 둘의 관계는 오월동주다.”
한 새정치민주연합 핵심 당직자가 이번 인선 논란에 대해 문재인 당대표와 김상곤 혁신위원장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했다. 오월동주는 원수끼리도 한 배에서는 서로 돕게 된다는 의미다. 내부 의원들을 추슬러야 하는 당대표와 혁신을 성공시켜야 하는 혁신위원장의 입장은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서로 같이 가야 한다. 지난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김문수 혁신위원장이 혁신위 통과 과정에서 미묘한 입장차를 보이면서도 타협을 가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서로 주도권을 다투면서도 당 혁신에 있어서는 한 배를 탈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새정치연합에게 이번 혁신은 더욱 절박하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궐 선거 패배로 김한길 안철수 공동 대표가 책임 사퇴했다. 그 후 들어선 문재인 당대표 체제에서는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에서는 한 석도 얻지 못하는 등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여기에 광주 지역에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당선되는 등 호남의 위기감마저 고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 대표가 들고 나온 해답은 김상곤 혁신위였다.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을 필두로 조국 서울대 교수 등이 동참해 혁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여기에 문 대표는 “혁신위에 전권을 위임하겠다”고 나섰고 김 위원장이 광주에서 “문 대표가 혁신안 집행을 위해 ‘본인을 밟고 가도 좋다’고 했다”고 말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지난 6월 22일 김 위원장이 광주를 방문해 혁신을 약속한 지 이틀 만에 문 대표가 범친노계인 최재성 사무총장의 임명을 강행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사무총장은 공천을 총괄하는 실무자 역할을 하기에 당내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비노계 측 인사가 되지 않겠냐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최 의원이 당선되면서 비노계 이종걸 원내대표가 당무를 거부하는 등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6월 12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1차회의에서 김상곤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비노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문 대표의 이 같은 인사가 정세균계와 손을 잡은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 크다. 한 비노계 관계자는 “비노계 의원들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정세균 전 대표 아래서 선관위 부위원장을 지낸 최재성 의원이 당시 시민배심원제를 통해 당시 특정계파에게 이익을 줬다고 보고 있다. 비노계는 하필 그 자리가 최재성 의원이기 때문에 더 반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노계 인사들 사이에서 최 의원에 대한 불신이 크기에 이번 공천 위기감이 한층 더 커졌다는 것이다.
문 대표의 당직 임명에 ‘전권’을 위임받은 혁신위의 위상도 한풀 꺾인 모양새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6월 15일 김상곤 위원장이 문 대표를 만나 “사무총장 등 정무직 당직자 인선에서 혁신을 최우선에 두시길 부탁드린다”며 “혁신위는 문재인 대표와 최고위원의 깊은 고뇌와 무거운 결단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던 것도 사실상 문 대표의 결정에 대한 우려를 밝힌 것 아니겠느냐고 보고 있다.
지도부와 혁신위 사이의 미묘한 기류에 대해 앞서의 핵심 당직자는 “혁신위가 혁신적 인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맥락으로 본다면 불쾌한 게 있을 수 있다. 혁신을 해야 하는데 계파 갈등으로 비춰지는 논란을 왜 자초하느냐고 여길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둘의 관계는 지금 같이 갈 수밖에 없다. 호흡이 안 맞아도 누구 하나 여기서 뛰어내리면 (혁신) 배가 가라앉기 때문에 지금 누구 하나 관둘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혁신위 입장에서는 당장 누구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혁신위가 문 대표 측 편에 선다면 ‘문재인 들러리’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게 되고 이번 인사에 반발하게 되면 비노계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상진 건국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번 문 대표의 인사는 혁신위의 힘보다는 자기중심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자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여기서 혁신위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지가 중요하다. 지금 지지나 반대 등의 입장을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혁신위의 존재감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만다”고 평가했다.
혁신위의 앞날은 7월을 기점으로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혁신위는 7월 중앙위원회를 열어 혁신안 등을 의결하도록 하는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진통은 따른다. 아직까지 중앙위원회 개최 여부에 대한 논의가 없지만, 진행된다 해도 시기적으로 자칫 역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의 핵심 당직자는 “혁신안은 이미 당에서 다 준비된 것이고 혁신위 주장의 골자는 중앙위원회를 열어 바로바로 혁신안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전국 단위로 모이는 중앙위원회에서 다시 지도부 책임 문제와 혁신위 존재 필요성 문제, 그리고 친노 인사 문제 등이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분란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 대표가 혁신안 통과와 관련해 재신임 문제를 내거는 등 본인의 책임으로 돌려놓은 만큼, 혁신안 통과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 아직 움직이지 않는 김 위원장의 스탠스가 결정될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이는 혁신위가 혁신안 의결을 지도부가 아닌 전국 조직인 중앙위원회를 선택했다는 점과도 맞물린다.
김 위원장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의 러브콜을 받아 온전한 친노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비노계 이종걸 원내대표도 김상곤 전 교육감을 위원장 자리에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 아직 검증받지 못한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혁신위를 살려내는 데 발휘될 수 있을지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