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한 배 타기는 이미 끝났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에서 호남 물갈이론, 중진의원들 용퇴론 등이 거론되자 비노계 의원 사이에서 “탈당도 불사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지난 5월 8일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발언에 분을 못 참은 주승용 최고위원이 문재인 대표의 만류를 뿌리치고 퇴장하는 모습. 연합뉴스
4월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문재인 당대표가 총선 승리를 위해 대폭 물갈이를 예고하자 비노계 중진 의원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공천 여부에 따라 분당과 신당 창당 등의 물밑 움직임 또한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서는 김상곤 혁신위가 혁신안을 본격적으로 들고 나오는 9월께 탈당이나 신당창당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박지원 의원을 포함한 호남 중진 의원 그룹의 공천 위기감이 가장 높다. 4월 재·보궐 선거에서 광주에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당선되면서 ‘호남 쇄신’으로 인한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재·보궐 선거 직후 박주선 의원(광주 동구·3선)이 먼저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호남권 정치의 위기를 역설하며 지도부에 날을 세웠다.
지도부 내의 호남권 인사들 또한 문재인 대표의 책임론을 주장하며 갈등을 일으켰다. 김한길계와 호남계 표를 등에 업고 당선된 주승용 최고위원(전남 여수시을·3선)이 친노 패권주의를 지적하며 선거 책임론을 주장하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또한 조국 서울대 교수가 “호남 의원 40% 이상 물갈이”와 “4선 이상 중진 의원 용퇴·적지 출마” 등을 주장하자 호남권 의원들은 “혁신은 공감하지만 일괄적용은 옳지 못하다”며 반발했다. 지난 2일 워크숍 자리에서 호남 물갈이론과 관련된 농담들이 나오자 이윤석(전남 무안·신안·재선) 원내수석부대표도 “벼락 맞을 소리 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혁신위원 구성에 호남 물갈이를 주장한 조국 교수를 포함해 대부분 강경파 인사들이 해당된 것도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최근 박지원 의원은 언론 등을 통해 “현재 새정치연합 내 최소 4개 그룹에서 분당이나 신당창당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며 분당설에 공식적으로 불을 지폈다.
현재 당내에서는 호남 물갈이가 피해갈 수 없는 과제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18대 총선 당시에도 호남 물갈이가 주장되자 정세균 의원(서울 종로구·5선)이 호남 지역을 내주고 종로 지역으로 지역구를 옮긴 바 있다. 이에 대해 호남 출신의 한 새정치연합 당직자는 “재·보궐 선거에서 김동철(광주 광산구갑·3선) 박주선 의원 등 광주 지역 중진 의원들이 지역을 맡아 선거를 도왔다. 그런데도 패배했다는 건 호남권 중진 의원들도 그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호남 중진 의원들의 물갈이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중진 의원들도 물갈이론 위기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민집모(민주당집권을위한모임)를 기반으로 하는 김한길 의원(서울 광진갑·4선)이 재·보궐 선거 이후 지도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유와도 맞물린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궐 선거 패배로 인해 공동대표직을 책임 사퇴한 김한길 안철수 의원은 대권주자인 문재인 대표를 수장으로 하는 친노 그룹과 라이벌 관계에 서 있기도 하다.
그동안 공식 발언을 자제하던 김한길 의원은 문 대표의 재보궐 참패 후 정치 행보를 시작하는 분위기다. 김 의원은 지난 4월 재·보궐 선거 이후 “이겨야 할 선거에서 졌다”며 본인의 책임 사퇴 당시의 발언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후 김 의원은 “문 대표 사퇴주장은 아니다”라면서도 SNS를 통해 “문 대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내년 총선이 걱정스럽다”는 등 공식 의사를 개진했다. 또한 최근 김경협 의원의 “비노 새누리당 세작” 발언과 범친노계인 최재성 사무총장설 등에 대해 “총선과 대선 승리에 도움 되는 일인지 항상 지켜보고 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동시에 안철수 의원의 행보도 본격화 되고 있다. 비노계의 정대철 상임고문과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 회동을 가져 ‘비노계’ 결집이 이뤄질지 눈길을 모았다. 지난 2일 당 워크숍에 참석하지 않고 인터뷰를 통해 대권주자 도전을 인정한 것도 차후 탈당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새정치연합 분당설과 맞물려 안철수 의원과 김한길 의원의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2014년 2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가운데)의 출판기념회에 민주당 김한길 대표(오른쪽)와 무소속 안철수 의원(왼쪽)이 참석한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새정치연합 탈당에 대한 동참 가능성이 있는 인사들 중 딱히 계파에 속하지 않는 ‘나홀로파’ 의원들도 해당된다. 하지만 중진의원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입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은 민집모 소속으로 김한길 의원과 결을 같이하기도 한다. 부산 조경태 의원(부산 사하구을)도 신당 창당시 부산 지역을 대변할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 저격수’로 이름을 알린 조 의원은 친노 혁신위에 대해 비판하며 연일 각을 세우고 있다. 김영환 의원(경기 안산시상록구을·4선) 또한 수도권 중진 의원으로 혁신위의 공천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호남의 김동철 주승용 의원 또한 민집모 소속으로 호남권과 김한길계 의원들과 함께할 가능성이 있다.
민집모 소속이자 호남권인 황주홍 의원(전남장흥군강진군영암군)은 지난 2010년 전남군수 지방 선거에서 정당공천제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바 있다. 현재 전남도당위원장인 황 의원이 만약 분당에 동참할 경우 그 여파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고민이 깊어지는 비노계 의원들도 있다. 계파색이 없는 한 비노계 국회의원은 “지금 지도부에 반발하는 비노계 의원들은 대부분 공천이 어려운 의원들이다. 혁신위에서 중진 물갈이식의 공천 잣대를 들이대면 탈당 러시가 이어질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들이 모두 나가 신당이나 무소속 연대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지역구를 보면 호남과 수도권, 부산까지 나름대로 전국 정당이 된다. 공천에서는 입지가 약할 수 있지만 중진 의원들이기에 당을 깨고 나가면 원심력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정치권에서는 친노계와 비노계의 싸움에서 중간에 뜬 중간계층의 의원들은 10여 명의 친노와 20여 명의 비노를 제외하고 90여 명 정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정세균계와 김근태계 등 범친노계를 포함해 독자적 정치철학을 주장하며 홀로파들로 남아있는 의원들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은 ‘문재인’이냐 ‘신당’이냐를 두고 득실을 저울질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문 대표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다. 한 비노계 의원은 “중간계층인 우리들까지 나선다면 당내 3개의 계파가 싸운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 같아 조용히 있는 것”이라며 “이대로 가면 분당이 되거나 비노계에 의해 혁신이 도루묵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총선은 100% 지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우려 속에 나머지 비노계 의원들 사이에서 새로운 대안이 제안되고 있다. 탈당파들과 선을 그으면서 문재인 당대표와 김상곤 혁신위원장과 한배를 타는 ‘대안’이 물밑에서 제안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의 비노계 의원은 “지난 15일 6명의 의원들과 식사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한 의원이 혁신위원 2명씩 하나의 분과를 만들자고 하더라. 총 4개의 분과를 만들 수 있는데 그 안에 90여 명의 의원 중 괜찮은 인사들이 들어가 친노 비노 계파를 없애고 90명 의원들과 문재인 대표,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참여하는 새로운 통합 체제를 만들자는 안이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다음 말에 더 힘을 실었다.
“실현 가능 여부는 문재인 대표가 설득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