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볼·파이어볼 30년 만에 ‘동반 입성’ 보인다
두산 유희관과 삼성 알프레도 피가로가 나란히 팀 경기수가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11승 고지를 밟았다. 사진출처=두산 베어스·삼성 라이온즈
# 역대 20승 투수
1982년부터 2014년까지, 33시즌 동안 한 시즌 20승 이상을 거둔 투수가 나온 것은 총 16회뿐이다. 그 가운데 해태 선동열이 세 차례(1986년 24승, 1989년 21승, 1990년 22승), 롯데 최동원(1984년 27승, 1985년 20승)과 삼성 김시진(1985년 25승, 1987년 23승)이 두 차례씩 각각 기록했다. 결국 투수의 숫자로만 치면 단 12명만 20승을 경험해본 셈이다. 또 투수들의 보직이 선발, 중간, 마무리로 분업화되지 않았던 1982년부터 1990년까지 11번의 20승이 집중됐다. 1991년 이후로는 20승이 다섯 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범위를 선발 20승으로만 좁히면 숫자는 33년간 7회로 더 줄어든다. 1983년 삼미 장명부가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무려 60경기에 등판해 30승을 따냈는데, 이 가운데 28승이 선발승이었다. 1985년 김시진도 47경기에서 전천후로 던지면서 25승 중 21승을 선발등판 경기에서 따냈다. 같은 해 역시 25승을 따냈던 삼성 김일융도 34경기에서 25승을 올리면서 20승을 선발승으로 올린 케이스다. 김시진이 1987년 33경기에 나서 올린 23승 중 21승이 선발승이었다.
한 시즌의 승리 전부를 선발승으로 올린 투수는 1995년에야 처음으로 나왔다. LG 이상훈(20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어 2007년 두산 용병 다니엘 리오스(22승)와 2014년 넥센 앤디 밴 헤켄(20승)이 구원승 없이 선발승으로만 20승 고지를 밟았다. 분업화가 정착된 1991년 이후 20승을 따낸 국내 투수 역시 이상훈과 1999년 현대 정민태(20승)뿐. 1997년 쌍방울 김현욱은 구원승으로만 20승을 기록하는 특별한 사례를 남겼다.
# 선발 20승 왜 줄어드나
현대 야구는 이제 투수 분업화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중간투수들조차 롱릴리프와 원포인트릴리프, 셋업맨 등으로 쪼개지고, 그 안에서도 승리조와 추격조 등으로 역할이 구분될 정도다. 자연스럽게 선발투수가 등판할 기회는 한정돼 있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예전처럼 선발투수가 경기 도중 구원 투입되는 일은 거의 보기 힘들다. 이 때문에 한 명의 선발투수가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133경기 체제의 한 시즌을 치른다고 가정한다 해도, 한 투수의 선발등판 기회는 평균 27~28경기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경기가 우천 취소되거나 시즌 막바지 휴식일이 중간에 낀 잔여 일정을 소화하면서 1·2선발의 등판 기회가 조금씩 늘어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최대 30경기 안팎에 그친다. 실제로 지난 시즌 규정이닝을 채워 방어율 순위에 오른 투수 23명 가운데 30경기 이상 선발 등판한 투수는 밴 헤켄과 롯데 크리스 옥스프링(이상 31경기), 두산 유희관(30경기)이 전부였다.
한 야구 관계자는 “투수들의 승수 쌓기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패’가 아니라 노 디시전 게임(No Decision Game·승패가 기록되지 않는 경기)”이라고 증언했다. 평균적으로 많은 투수들이 한 시즌 등판 일수의 25% 정도는 승패 없이 물러난다. 투수들의 평균 투구이닝이 점점 줄어들면서 선발투수가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간도 그만큼 적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외에도 투수들의 20승을 방해하는 요소는 많다. A 투수코치는 “일단은 타고투저 현상 때문에 20승이 더 어려운 것 같다”면서 “타자들이 기술개발을 하는 속도에 투수들의 구종 개발이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실제로 타고투저가 심했던 2009년과 2013년에는 한 시즌 최다승이 14승에 그칠 정도로 승수 디플레가 심했다.
역시 투수 출신인 B 야구인은 “예전 선발투수들은 마운드에 올라가면 무조건 끝까지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요즘은 5~6이닝만 던지면 이후는 중간계투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투수들이 많다. 그게 승수를 쌓기 힘든 이유인 것 같다”고 했다. 프로야구 초창기에 팔이 빠져라 던져가며 20승을 두 번이나 했던 김시진 전 롯데 감독은 “내가 1985년에 25승을 했을 때는 등판 경기수(47경기)가 많았다. 난 25승뿐만 아니라 10세이브에 5패까지 기록했다. 전반기에만 16승을 땄다”며 “투수 분업화가 된 요즘은 그렇게 던질 수가 없다. 6패를 넘어가면 20승은 힘들다”고 말한 적도 있다.
# 혼자서는 못하는 20승
‘이닝 이터’가 되는 것은 20승 투수의 선결조건이나 다름없다. 국내 선수로는 마지막 20승 투수였던 정민태가 가장 좋은 예다. 정민태는 1999년 33경기에 나서 무려 230.2이닝을 던졌다. 그 가운데 29경기에 선발등판해 평균 7.51이닝을 투구했다. 한 번 선발로 나서면 거의 8회 1사 혹은 2사 후까지 던졌다는 얘기다. 20승 가운데 19승이 선발승, 1승이 구원승이다.
2007년의 리오스도 한 시즌 동안 234.2이닝을 역투하면서 경기 평균 7이닝을 책임졌다. 게다가 리오스는 그해 두산의 우천 취소 경기가 유독 많이 나오는 행운까지 겹쳐 무려 33번이나 선발등판하는 기회를 잡았다. 장마철에는 두산의 선발 로테이션을 놓고 ‘리오스-맷 랜들-비-비-비-리오스’라는 우스갯소리가 등장했을 정도다. 지난해 20승 투수로 등극한 앤디 밴 헤켄도 전례 없이 극심한 타고투저 시즌을 보내면서도 187이닝을 버텨내 9개 구단 투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로 기록됐다.
물론 투수의 승리는 혼자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C 해설위원은 “공격력과 수비, 그리고 뒤를 받치는 불펜이 강한 팀에 소속돼 있어야 20승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당연한 얘기다. 타선이 점수를 많이 내줘야 경기에 이길 수 있고, 한 경기에 한두 번 정도는 수비가 어려운 타구도 잡아줘야 고비를 넘길 수 있다.
불펜의 중요성은 두 번 강조할 필요도 없다. 한화 류현진과 SK 김광현이 자웅을 겨루던 2000년대 후반, 많은 야구 관계자들은 투수로서 류현진의 우위를 인정하면서도 ‘20승이 가능해 보이는 투수’로는 김광현을 더 많이 꼽곤 했다. 당시 한화와 SK의 전력 차이가 그 근거였다. 실제로 투수 분업화 이후 20승을 거둔 이상훈과 정민태, 리오스와 밴 헤켄은 모두 강팀에 소속돼 있었다.
특히 2007년의 두산과 2014년의 넥센은 모두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강력한 타선이 그들의 뒤를 받쳤다. 올해 순위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삼성의 피가로와 두산의 유희관에 대해 더욱 기대의 시선이 쏟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가장 완벽한 20승 투수는 다나카 완전 ‘사기 캐릭터’ 일본 프로야구는 한국보다 먼저 한 시즌 144경기를 치러왔다. 그러나 6선발 체제를 운영하는 팀이 많아서 선발투수의 한 시즌 등판 경기수는 133경기 체제의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만큼이나 20승 투수를 구경하기 힘든 이유다. 2013년 24승 무패를 거둔 라쿠텐의 다나카 마사히로. 그는 시즌이 끝난 뒤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전초전에 불과했다. 이와쿠마의 20승이 서서히 잊혀져가던 5년 뒤, 퍼시픽리그에서는 역대 가장 ‘완벽한’ 20승 투수가 탄생했다. 2013년 24승 무패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거둔 라쿠텐의 다나카 마사히로다. 다나카는 사실 그 이전에도 20승을 올릴 기회가 있었다. 그는 2011년 시즌 마지막 선발등판에서 9이닝 5안타 11삼진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올리면서 19승을 달성했다. 당시 방어율은 퍼시픽리그 역대 2위에 해당하는 1.27. 그때도 무시무시했다. 라쿠텐은 내친 김에 시즌 최종전에 다나카를 구원등판시켜 20승 고지를 밟을 기회를 주려고 했다. 최강의 모습을 보여준 에이스에 대한 배려였다. 그러나 정작 다나카가 사양했다. “선발투수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구원등판으로 승수를 쌓지는 않겠다. 나보다는 다른 신인급 선수들에게 등판 기회를 주는 게 낫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2년 뒤 더 화려한 역사를 썼다. 다나카는 2013년 마지막 등판에서 7이닝 2실점(1자책)을 기록하면서 한 시즌 동안 단 1패도 없이 24번째 승리를 따냈다. 2012 시즌의 마지막 4연승을 포함해 무려 28연승 행진. 게다가 20승 이상을 거둔 투수가 패배 없이 시즌을 마친 사례는 일본은 물론 한국과 미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메이저리그의 역대 기록들조차 넘어선 후였다. 1912년 루브 마쿼드(뉴욕 자이언츠)가 세운 개막 19연승 세계 기록과 칼 허벨(뉴욕 자이언츠)이 1936~1937년 두 시즌에 걸쳐서 기록한 24연승 세계 기록을 모두 경신했다. 야구 만화나 소설에 등장했다면 오히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웃어 버렸을 듯한,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한 시즌. 다나카는 그 시즌이 끝난 뒤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팀 뉴욕 양키스와 7년간 1억 5500만 달러(약 1713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의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은] |
음주운전의 악몽 이용찬 한번 실수로 ‘구원왕’까지 놓쳤다 안 그래도 힘겨운 시즌을 보내고 있는 LG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핵심 불펜투수 정찬헌이 음주운전으로 접촉사고를 내 경찰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사고의 경중과 관계없이 음주운전은 재고의 여지가 없는 징계 사유다. 구단은 곧바로 3개월 출장정지와 벌금 1000만 원이라는 철퇴를 내리고 이 사실을 언론에 공표했다. 물론 정찬헌은 당장 눈앞의 징계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됐고, LG 역시 팀 전력과 구단 이미지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KIA 김민우와 SK 신현철도 넥센 시절이던 2013년에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김민우는 음주에 무면허 상태로 자신의 차를 후진하다 뒤에 있던 택시와 추돌했고, 신현철은 그보다 앞서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고발됐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커졌다. 먼저 밝혀진 김민우는 3개월, 좀 더 후에 알려진 신현철은 잔여경기 출장이 각각 금지됐다. 그리고 그해 시즌이 끝난 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각각 이적했다. 이 밖에도 삼성 외야수 정형식은 2군에 있던 지난해 8월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하다 건물 벽을 들이받았다. 구단에 이 사실을 숨기다 언론을 통해 알려져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삼성은 결국 정형식에게 임의탈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