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석 “친분 있던 사이” 정동영 “그 전엔 몰랐다”
▲ 철도공사의 유전 의혹 사건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허문석씨와 만난 사실이 드러나 구설에 올랐다. (오른쪽)철도청 유전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 허문석씨. MBC-TV 화면 촬영. | ||
이번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여권에서는 이광재 의원과 이기명씨 정도가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인 허문석 KCO 대표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정 장관도 허씨를 두 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져 두 사람의 관계와 누구의 ‘끈’으로 둘이 연결됐는지를 두고 많은 말들이 오고 간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최초 기획한 권광진 쿡에너지 대표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이광재 의원이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개발 투자에 처음부터 개입돼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일관되게’ 하고 있어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허문석씨가 어떤 배경으로 매출 9조원 거대 공기업 한국가스공사 사장 자리에도 큰 관심을 보였던 것인지도 논란거리다. 유전의혹에 과연 ‘큰손’이 작용했는지 집중 조명해보았다.
정문헌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4월18일 국회 통외통위가 열리기 일주일 전 통일부에 서면 질의서를 보낸 바 있다. 내용 중에는 “통일부와 HNK에너지와의 접촉현황”을 묻는 질문도 있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04년 11월 초 철도를 통한 예성강 모래 반입 가능여부를 문의하기 위하여 허문석이 통일부 남북교역과를 직접 찾아왔음. -이후 북한과의 협의 진행상황 등을 파악하기 위하여 통일부 실무자와 남북교역과에서 한 차례 더 만난 것으로 파악되며 허문석과 전화로 수차례 접촉한 사실이 있음”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 이기명씨 | ||
정문헌 의원측은 정 장관 발언과 서면답변서의 내용이 다르자 통일부측에 강하게 항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장관이 허씨를 직접 만난 사실을 숨기고 실무자 선에서 만남이 이루어진 것처럼 ‘허위보고’를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통일부 실무 담당자는 “장관의 스케줄 전체를 어떻게 다 알 수가 있느냐”고 항변했다고 한다.
통일부 고위관계자도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실무자들이 장관의 모든 일정을 다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착오가 생긴 것 같다”며 궁색한 변명을 했다. 하지만 정 의원실 한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사상 처음 철로를 통해 모래를 운반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다. 이런 특수한 사업을 추진하는데 개발자 허씨가 정 장관을 만난 사실을 담당자가 모른다는 것이 납득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석연치 않은 대목은 이뿐만이 아니다. 통일부는 정 장관이 누구를 통해서 허씨를 만났는지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못하고 있다. 정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을 겸하고 있고, 차기 대권주자로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면식도 없던 허씨를 장관실에서 만났다는 사실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정 장관의 한 측근은 “장관 일정 상 하루에도 여러 명을 만나게 된다”면서 “당시 어떤 경로를 통해 장관이 그 사람을 만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약 통일부 실무자들이나 측근들이 정 장관과 허씨의 만남을 모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문제다. 허씨가 통일부 담당자들과의 사전 약속도 없이 정 장관 집무실을 자유롭게 드나들 정도라면 두 사람 사이가 보통은 아닐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허문석씨의 발언도 아리송하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 장관과) 2~3년 전쯤 처음 만나 알고 지낸 사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정 장관측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허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을 연결시켜준 또 다른 인사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 이광재 의원 | ||
유전의혹과 관련해 이광재 의원의 역할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번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사업을 최초 기획했던 권광진 쿡에너지 대표는 이번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이 의원은 관계없다”고 말하다가 최근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4월1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초 이 문제가 정치 쟁점화 하는 것을 우려해 그가 관련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보고 화가 났다. 이 의원은 왜 ‘사업성이 있어서 이 사업을 추진했으나 여러 문제가 생겼다’고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측은 권씨를 상대로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그런데 최근 권 대표는 이 의원의 이런 ‘압력’에도 불구하고 검찰 조사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출입 한 기자는 “권씨가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이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개발 투자에 처음부터 개입돼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최근 청와대가 유전의혹 사건을 지난해 11월9일 국정원 보고를 통해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청와대 보고 하루 전인 11월8일경은 철도청이 자금난을 겪고 있을 시기로 신광순 철도청장이 이광재 의원을 만나 유전사업 협조 요청을 했던 때다.
이 과정에서 이 의원이 국정원의 청와대 보고를 사전 인지했는지 여부는 불명확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당시 보고를 받았던 박남춘 국정상황실장은 이광재 의원이 실장으로 근무할 때 상황1팀장을 맡으며 호흡을 맞춰오던 사이. 이런 점에서 이 의원이 청와대 ‘기류’를 사전에 감지했을 수도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한편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유전개발 특검이 과거 썬앤문 사건 등 측근비리 특검의 재판이 될 가능성도 있다. 특검이 당시 수사를 열심히 했음에도 정작 밝혀진 내용은 별로 없어 오히려 야당이 궁색한 처지가 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제2의 썬앤문 특검이 될 가능성이 있는데 그냥 국정조사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나라당이 재보궐을 의식해 잘못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밝혔다. 검찰 주변에서도 이번 사건이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해석이 계속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