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은 웃고 유정복은 울고
수도권매립지 연장 사용 협상이 타결되면서 정치권은 “박원순 시장의 판정승”이라는 평가다. 사진은 인천광역시 서구 백석동 수도권매립지로 향하는 차량. 양 옆은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유정복 인천시장. 최준필 기자
수도권매립지 협상은 ‘2016년 사용 종료’ 방침을 고수하는 인천시와 ‘30년 연장’ 사용을 주장한 서울시의 입장 차이가 커 협상에 난항을 겪어 왔다. 이번 합의로 서울시는 안정적인 쓰레기 처리를, 인천시는 수조 원대 경제적 실리를 챙겼다고 자평한다. 정치권은 박원순 시장의 ‘판정승’이라는 평가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난해 6·4 지방선거 당시 ‘수도권매립지를 기존 약속대로 2016년 사용 종료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유 시장은 당선 이후에도 취임 100일 인터뷰를 비롯해 여러 차례 공개석상에서 이 같은 원칙에 ‘변함없음’을 강조했다. 지난 20여 년간 수도권 배출 쓰레기를 일방적으로 처리하며 악취·소음에 시달린 인천시민의 고통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천시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겉으로는 사용 종료를 주장하면서도 조금씩 길을 터주는 방식으로 협상에 임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12월, 유 시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제안한 ‘선제적 조치’였다. 선제적 조치란 서울시·환경부가 가진 수도권매립지 소유·면허권의 인천시 이양,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인천시 이관, 테마파크 설립 등 수도권매립지 주변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정책 추진을 말한다.
4자 협의체는 올해 1월, 유 시장이 제안한 ‘선제적 조치’를 전폭 수용하기로 합의했다. 수도권매립지는 1690만㎡(510여만 평)의 세계 최대 규모로 자산 가치로만 1조 8000억 원을 웃도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는 서울시에서 지분을 그냥 넘겼을 리 없다며 ‘이면 합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때마다 유 시장과 인천시는 수도권매립지 ‘2016년 종료’ 원칙을 재천명했다.
하지만 이번 협상 결과에 비춰 유 시장의 제안은 환경부·서울시에 매립지 연장 사용을 조건으로 건네받는 대가가 됐다. 실제로도 서울시는 협상 과정에서 ‘선제적 조치를 수용했으니 3매립장 전체를 추가 사용하자’는 카드를 맨 먼저 들고 나왔다. 최근 연장 기간을 놓고 협상이 지체되자 ‘고작 6∼7년 더 사용하려고 1조 8000억 원 가치의 지분을 통째로 넘긴 것이 아니다’라고 인천시를 압박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명분 역시 서울시 쪽으로 기울었다. 1995년 쓰레기종량제 시행 이후 반입량이 크게 감소하면서 매립지의 절반가량 남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인천시조차 2016년 사용 종료에 따른 대체매립지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서울시의 압박에 대항할 반전 카드가 없었다.
서울시는 사실상 지역 안에 대체매립지를 조성하는 것이 불가능한 도시다. 때문에 이번 협상에서 ‘3-1매립장을 추가 사용하되 사용 종료 때까지 대체매립지가 확보되지 않으면 매립지 잔여부지의 최대 15%(106만㎡)를 추가 사용한다’는 단서조항을 넣은 것 역시 서울시의 승리라는 평가다. 이 조항을 근거로 3-2매립장, 나아가 4매립장까지 모두 쓰레기를 묻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인천시로서는 ‘독소조항’을 받아들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인천시는 ‘공중전’에서도 박원순 서울시장에 밀렸다. 서울시는 지난 2013년부터 ‘수도권매립지 사용이 종료된다면, 2016년 쓰레기 대란은 피할 수 없습니다’라는 홍보전단지를 만들어 서울시민에 배포하며 상황을 알리고 자체 쓰레기 감축 정책을 수립하면서 단계적으로 대응했다. 반면, 인천시는 송영길 전 시장에서 유정복 시장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효과적인 전술전략을 구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협상을 가까이 지켜봐왔던 한 여권 관계자는 “새누리당 안에서조차 수도권매립지 사용 종료에 대한 공감대가 전혀 형성돼 있지 않았다. 서울 지역구 의원들과 환노위 소속 여권 의원들 대부분 박원순 시장을 응원하고 있었던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관계자는 수도권매립지가 있는 인천 서구강화갑 이학재 의원에 관해서는 “이 의원 비서관 출신이 거기(수도권매립지공사) 2급 특채로 뽑혀서 간 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19대 국회 들어 가장 황당했던 일”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또 “유 시장이 선거가 끝난 직후 사용 종료가 불가능하다고 인천시민에 솔직하게 고백했어야 했는데, 시기가 너무 늦어버렸다. 실제 인천시에 엄청난 경제적 실리를 안겨줬음에도 약속을 저버렸다는 이미지만 강하게 남아버렸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2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발표한 2015년 상반기 전국 시·도지사 여론조사에서 유 시장에 대한 긍정 응답률은 32%로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유 시장에 대한 부정 응답률 역시 37%로, 홍준표 경남지사(49%) 다음으로 높았다. 최근 ‘성완종 리스트’ 관련 불기소 처분을 받아 한시름 넘겼으나 지역 민심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같은 조사에서 박원순 시장은 긍정평가율이 56%로 평균(51%)을 웃돌았다. 다만 박 시장은 부정 평가율이 30%에 육박하는 등 광역단체장 가운데 ‘호불호’가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박 시장이 메르스 사태를 잘못 대처한 정부를 상대로 어부지리를 얻은 것에 이어 수도권매립지 협상의 실제적 이득마저 챙겼다. 손 안 대고 코 풀고 있는데 여당에서 뭐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라고 하소연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