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밥상’에 숟가락 얹기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YG엔터테인먼트가 YG푸드를 통해 홍대에 오픈한 프리미엄 돼지고기 전문점 ‘삼거리 푸줏간’, 신세계푸드가 오픈한 강남 크래프트 비어 전문점 ‘데블스도어’, 한화그릅 계열사 호텔앤드리조트가 이태원에 오픈한 프렌치&이탈리안 레스토랑 오레노. 일요신문 DB
한바탕 소란을 겪은 대기업들은 보다 조심스럽게 외식업계의 문을 두드렸다. 중소기업적합업종을 피해 고민 끝에 선택한 업종은 한식뷔페였다. CJ의 계절밥상, 이랜드의 자연별곡, 신세계의 올반까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한식을 뷔페 형식으로 제공한다는 콘셉트의 한식뷔페는 소비자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으며 전국적으로 열풍을 일으켰다.
그렇게 ‘입맛’을 되살린 대기업은 폭발적인 식욕을 자랑했다. 뜨는 업종이 있으면 일단 숟가락을 얹기 바빴다. ‘재벌 빵집’ 사태를 교훈 삼아 철저한 사전준비를 한 덕분에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제기돼도 교묘히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급기야 대기업들은 소자본창업의 대표 업종이었던 ‘호프집’까지 탐냈다. 소규모 공방에서 만들어진 맥주가 인기를 끌자 ‘수제 맥주 전문’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사업에 나선 것이다.
대기업 가운데서는 롯데가 가장 먼저 ‘펍(Pub)’ 사업에 나섰다. 지난해 7월 롯데는 자사의 맥주 ‘클라우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서울 잠실에 ‘클라우드 비어스테이션’을 오픈했다. 영세 공방과 달리 1652㎡(500평)에 이르는 대형 매장을 갖춘 뒤 신선한 맥주를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워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러자 신세계는 그해 11월 강남에 크래프트 비어 전문점 ‘데블스도어’를 열며 맞불을 놓았다. 롯데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다양한 에일 맥주를 맛볼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져 단숨에 강남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여기에 지난 1월 SPC그룹 계열사인 삼립식품이 독일식 펍 ‘그릭슈바인’까지 선보이며 삼파전 구도를 형성했다. 그 사이 영세 맥주 전문점들은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아야 했다. 소규모 맥주 공방 운영자 김 아무개 씨(46)는 “불과 6개월 만에 강남 지역에 3개의 대규모 수제맥주 전문점이 생기면서 인근에 있던 영세사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대기업들이 자본으로 밀고 들어오면 버틸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사실 외식사업은 대기업 입장에선 진입장벽도 낮고 초기 투자비용도 적게 드는 편한 사업이다. 그럼에도 연구와 투자 없이 막대한 로열티를 지급해가며 손쉽게 돈을 벌려 한다. 이런 대기업들의 행태는 국내 외식업계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대기업의 ‘외국 브랜드 모셔오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지난달 이태원에 프렌치&이탈리안 레스토랑 ‘오레노’를 오픈한 한화가 대표적이다. 한화그룹은 계열사인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재벌 빵집’ 논란 당시 프랑스 베이커리 브랜드 ‘에릭케제르’ 사업을 중단 및 철수한 바 있으며 한화갤러리아 역시 카페브랜드 ‘빈즈앤베리즈’를 선보였으나 논란이 일자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후 약 3년 만에 외식사업에 다시 손을 댔는데 이번엔 일본 레스토랑 브랜드인 ‘오레노’의 현지 인테리어와 메뉴, 조리법 등을 그대로 가져와 매장을 열었다. 오레노는 일본 현지에서 고급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독특한 영업방식을 고수한다.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요리사들이 직접 요리를 만들지만 좌석 대신 서서 먹는 방식을 택해 회전율을 높여 소비자들의 가격부담을 확 줄여주는 것. 한화 역시 소규모의 좌석과(이를 이용할 경우 추가 비용 지불) 스탠딩 테이블을 갖췄다.
앞서의 컨설턴트는 “보통 대기업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일 땐 계열사 건물 등에서 테스트를 거치기 마련인데 한화는 바로 요식업계 격전지인 이태원에 진입했다. 자신감인지 자만심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태원은 특색 있는 음식점이 많은 만큼 자리 잡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개성 강한 이태원에 대기업이 진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곳에서도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의류회사 동광인터내셔날도 해외 디저트 브랜드를 통해 사업다각화에 나설 예정이다. 동광인터내셔날은 올 하반기 아이스크림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를 전담할 법인 디케이앤글로벌 설립도 마무리하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들이 택한 브랜드는 뉴질랜드 감성의 요거트 아이스크림 ‘키위요(KIWIYO)’로 국내에선 이미 요거트 아이스크림 열풍이 휩쓸고 지난 상황인데다 비슷한 브랜드가 많아 어떤 성적표를 쥐게 될지는 미지수다.
한편 논란을 피하려는 듯 주변의 이목을 끌지 않고 조용히 외식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대형 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 계열사인 YG플러스는 식품업계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노희영 전 CJ브랜드전략 고문을 영입해 YG푸드 대표 자리를 맡겼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홍대에서 삼거리포차를 운영하며 경험을 쌓아온 YG는 노 대표를 필두로 지난달엔 프리미엄 돼지고기 전문점 ‘삼거리 푸줏간’까지 오픈하며 본격적으로 외식사업에 뛰어든 모습이다. 더욱이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YG 소속 연예인들이 다녀갔다는 것만으로도 입소문이 번져 벌써부터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어 홍대 상권이 긴장하고 있다.
막강한 자본과 인적 네트워크로 무장한 대기업들이 ‘베끼기’ 수준으로 외식사업으로 진출하면서 대표적인 서민업종 경계도 무너지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