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장기레이스 ‘긍정 마인드’ 필요해
경기 전 피츠버그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강정호는 기자들과 다양한 내용으로 수다를 떤다. 기자들에게 클럽하우스가 오픈되면 자리를 비우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강정호는 자리를 지키고 앉아 취재진을 기다린다. 대부분 한두 명의 한국 기자들이다. 한국어로 대화 나누는 걸 즐기는 듯한 강정호는 어느 날 친정팀 넥센 히어로즈의 상승세를 거론하며 자신이 돌아가도 뛸 자리가 없다는 말로 웃음을 선사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진짜 힘드네요. 경기 때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그게 쉽지 않아요.”
강정호의 가장 큰 불만은 경기 출전 여부가 불투명한 현실이다. 한두 경기에 선발로 출전하면 어김없이 다음 경기에선 라인업에 빠지는 일이 잦다. 이번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원정 경기를 앞두고, 피츠버그를 떠나기 전 진행된 인터뷰에서 강정호는 “아마 디트로이트전에선 내가 뛰지 못할 것 같다. 두고 봐라”며 부정적인 예상을 전하기도 했다.
강정호의 추측과 달리 디트로이트전 1, 3차전에는 선발로, 2차전은 아예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1차전에선 6타수 1안타를, 3차전에선 5타수 1안타에 그쳤다. 5월 말 0.302였던 강정호의 시즌 타율은 3일 0.260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장타율도 0.453에서 0.370으로 내려갔다. 추신수와 마찬가지로 5월에는 방망이에 불이 붙다가 6월 들어 급격히 식는 바람에 6월 월간 타율이 0.221로 곤두박질 쳤다.
이유가 뭘까. 강정호는 스스로 “아직도 배울 게 많아서 그렇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투수를 상대하는 법, 타격 센스, 주루 플레이, 도루, 수비 등 모든 면에서 배워야 할 것 투성이라며 솔직한 고백도 곁들였다.
그러나 유격수 강정호의 경쟁자로 꼽혔던 조디 머서가 시즌 초반의 슬럼프를 딛고 현재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는 점이 강정호를 자극하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1할대의 타율에 머물던 머서가 최근 무서운 타격감을 보이며 7월 3일 현재 타율을 0.248까지 끌어 올렸다.
머서가 살아나면서 강정호는 더 이상 유격수를 맡지 못하고 있다. 6월 14일 이후 단 한 차례도 유격수로 선발 출전하지 못했다. 클린트 허들 감독은 “강정호의 유격수 수비를 신뢰하지만 지금 당장은 머서가 더 낫다”고 평가했다. 슬로우 스타터로 유명한 조디 머서가 타격 부진 속에서도 자리를 지킨 이유는 수비력 덕분인데, 지금은 타격감까지 끌어올린 터라 유격수는 조디 머서로 정리된 셈이다.
대신 허들 감독은 강정호를 3루수에 고정시키는 중이다. ‘유틸리티 플레이어’이자 기존의 3루수였던 조시 해리슨과 강정호를 번갈아 3루에 세우고 있고, 강정호가 3루 선발로 나가면 조시 해리슨한테는 외야를 맡기면서 포지션 변동을 이룬다. 이에 대해 송재우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은 강정호에게 긴 호흡을 주문했다.
“시즌 전과 초반에는 레그킥이 문제가 됐지만, 그걸 극복하고 나니 이번엔 타격 밸런스가 무너지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추신수한테는 자신만의 스트라이크 존이 있다. 이 존에서 벗어난 공이 들어오면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는다. 그러나 강정호는 지금 이 존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공을 맞히려고 마음을 앞세우다 보니 헛스윙이 속출한다. 강정호는 이제 메이저리그 1년차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잘해낸 것이다. 주전 자리를 꿰차기 위해 서두르다보면 이도저도 아닌 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 타순도 자주 바뀌고, 넣었다 뺐다 하는 라인업에 선수 자신이 지칠 수 있겠지만, 평정심을 잃지 말고 멀리 보고 시즌을 치르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강정호도 이런 지적을 모를 리가 없다. 그래서 경기 때마다 자신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내고, 반성하고, 다음 경기에선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강정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그가 자주 언급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다. ‘스포츠는 멘탈’이라는 그 말이, 그래서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